글,문학/책 속의 향기

엑또르씨의 사랑여행

淸潭 2007. 3. 10. 09:53
  • 사랑의 묘약에 의한 사랑도 진정한 것일까
  •  

  • 김광일 기자의 책 읽어주는 남자
  •  

    • 결별을 통고하는 연인의 눈동자를 들여다 보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만약 전 생애를 부인하는 거짓 참회를 확인하게 된다면 그때의 연민은 걷잡을 수가 없거든요. 또 ‘진정한 사랑’은 일생에 한번만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것인지, 그 구태의연한 주제에 짓눌려 아직도 고뇌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이번 주는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프랑수아 를로르(Lelord)의 장편 ‘엑또르 씨의 사랑 여행’(랜덤하우스)을 권해드립니다. 작가는 우리 주변의 익숙한 이야기들을 전혀 새로운 문체, 새로운 유머로 풀어가며 독자를 즐겁게 해줍니다.

      주인공 엑또르는 파리의 정신과 의사입니다. 연인 클라라는 일류 제약회사의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이고요. 어느 날 엑또르와 클라라는 제약회사가 주최하는 중요 회의에 참석해달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그곳에서 제약회사의 고위 간부인 군테르는 엑또르에게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수천만 달러를 쏟아 부어 연구 중이던 ‘사랑의 묘약’을 갖고 잠적한 코어모렌 교수를 찾아달라는 부탁입니다. 두 사람은 오랜 동안 친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엑또르는 코어모렌을 찾아 캄보디아로 떠나고 이때부터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한번 마시기만 하면 사랑에 빠지고 만다는 이 묘약을 둘러싸고 등장인물들의 남녀관계도 X자를 그리면서 엇갈립니다. 엑또르의 연인인 클라라가 제약회사 간부인 군테르와 새로운 연인이 되고, 엑또르는 현지 여인인 바일라와 묘약을 마신 후 사랑에 빠집니다.

      지금 상영중인 영화 한스 카노사 감독의 ‘낯선 여인과의 하루’(Conversations with Other Women·2005)를 혹시 보셨습니까. 12년 전 이혼했던 남녀가 뉴욕의 한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우연히 만나는 이야기인데요, 만약 사랑의 묘약이 있다면 그것은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또 만나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윤활유 같을 것이라는 힌트를 줍니다. 마치 엘케 하이덴라이히의 단편집 ‘세상을 등지고 사랑을 할 때’(이레)를 읽는 기분도 드실 겁니다.

    • 또 한 권의 책은 일본 작가 가쿠타 미쓰요가 지은 ‘프레젠트’(문학동네)란 단편집입니다. 모두 12개의 소재를 갖고 쓴 짧은 작품들을 모았습니다. 작가는 2005년 ‘대안의 그녀’로 나오키상을 수상했고, ‘담백한 문체와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내용 전개, 섬세한 심리묘사’로 여성 독자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각각의 작품이 흥미진진하고 따뜻한 이야기지만 결국은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지는 말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멈추면 세상이 편해진다. 평화로워진다.”는 말을 건네는 것만 같습니다. 하루코(春子)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소녀시절부터 자신의 이름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는 이야기 ‘이름’,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으로부터 영원히 잊지 못할 생일선물로 뽀뽀를 받았다는 이야기 ‘첫키스’가 그렇습니다. 8년을 사귀다 쿨하게 헤어지려고 노력하는 젊은 남녀 이야기 ‘비상열쇠’, 그리고 딸의 결혼식이 끝나면 곧바로 이혼하자고 약속한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인 ‘곰인형’도 비슷한 감동을 주는데요,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사랑의 속성 말입니다. 헤어지려는 마당인데, “요 몇 년 동안 우리는, 자신에게는 보이고 상대에게는 보이지 않는 풍경을 서로 단지 열심히 설명하고 있을 뿐이었어.”(118쪽·‘비상열쇠’중에서)라는 변명은 왠지 공소할 뿐입니다.
  •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