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향랑 글·그림|창비|52쪽|1만원
입력 : 2007.03.02 21:41
- 경복궁 자경전 뒤뜰에 자리한 ‘십장생 굴뚝’을 보았으면 모를까. ‘오래 살거나 변하지 않는 10가지 물상’을 뜻하는 십장생(十長生)에 대해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그림책 작가 최향랑의 기획력은 탁월하다. 둘도 없는 단짝인 할아버지와 손녀딸이 이별하는 이야기를 토대로 십장생이 무엇인지, 우리 민족이 왜 십장생을 중시해왔는지 꼼꼼히 설명한다.
- 한여름 아이스크림을 함께 나눠먹고, 마당에 쪼그려 앉아 개미 구경도 하고, 등 위에 올라타 인디언 놀이도 했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병원에 실려가면서 아이는 시무룩해진다. 텅 빈 할아버지 방에 혼자 남아 쓸쓸해하는 아이에게 특별한 친구가 나타난다. 반짇고리 속 빨간 비단주머니에 수 놓아져 있던 학 한 마리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깨어나 아이에게 날아온 것이다.
학과 함께 아이는 십장생을 찾아 떠난다. 십장생을 모아 할아버지에게 갖다 드리면 예전처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학에 이어 해와 사슴, 바위와 불로초가 차례차례 등장하는데 이들을 표현한 소재가 오감을 자극한다. 학은 솜과 깃털, 자수 실을 이용해 멋진 오브제로 표현했고, 베갯모 형상을 딴 해는 붉은 색과 노란 색으로 염색한 천 위에 자수실로 표정을 넣어 마치 진짜 눈부신 해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하얀 자개 조각들을 따붙여 구현한 사슴도 오밀조밀한 맛이 일품. 아파트 단지에 버려진 자개 장롱의 문짝에서 얻어온 조각들로 작가가 솜씨를 발휘했단다.
결국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손가락을 베이고 무릎이 까졌을 때처럼 마음도 그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아이는 아픔만큼 한 뼘 성장하고,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아이와 함께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비는 십장생을 그려 벽에 붙여보는 건 어떨까. 6세~초등 3학년.
'글,문학 > 책 속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엑또르씨의 사랑여행 (0) | 2007.03.10 |
---|---|
’분홍 리본의 시절’ (0) | 2007.03.10 |
행복하고 번영된 사회 만들려면 (0) | 2007.03.03 |
내 마음은 흰색입니다 (0) | 2007.03.03 |
대박을 꿈꾸며 인생에 베팅하다 (0) | 2007.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