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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을 꿈꾸며 인생에 베팅하다

淸潭 2007. 3. 3. 14:50
  • 대박을 꿈꾸며 인생에 베팅하다
  • 슬롯

  • 신경진 장편소설│문이당│327쪽│9800원
  • 박해현 기자
    입력 : 2007.03.02 21:34
    • ‘이 이야기는 도박과 여자에 관한 것이다’라고 시작하는 소설이다. 그 여자는 주인공 ‘나’의 옛 여자였는데, ‘수진’이라는 이름의 그녀가 어느날 나타나 10억원을 함께 카지노에서 탕진하자고 제안한다. 올해 1억원 고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그래서 도박과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도박은 불확실한 확률의 게임인데, 인생은 예상치 못한 우연이 빚는 도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느 날 옛 애인이 함께 카지노에 가자고 연락해 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확률은 미미하다. 하지만 분명히 일어날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나’와 이혼 직후 상태인 ‘수진’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카지노라는 또다른 차원의 세계 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간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나’의 시점에서 카지노는 실재와 가상 현실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 그런 ‘나’의 묘사를 통해 전개되는 이 소설은 독자들을 게임의 세계에 동참시키는 효과를 일으킨다. ‘작정을 하고 학습을 통해 배운 베팅 전략을 실행해 보기로 했다. 제일 처음 시도한 것은 ‘빅 넘버’ 전략이었다. 간단히 설명하면, 빅 넘버란 룰렛 테이블 전광판에 있는, 이전에 이루어진 38번의 스핀에서 나온 숫자들 중에서 가장 많이 출현한 숫자를 가려내어 그 숫자에다 베팅을 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작가<사진>는 “이 소설을 본격 도박 소설이라고 한다면, 도박 전문가들이 실망할 것”이라며 “이 소설은 도박이란 프리즘을 통해 우리 사회를 보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카지노는 불합리한 구조적 모순을 축소해 보여줄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다수가 잃고 소수가 이득을 취하는 곳이다. 양극화 현상이 극심해지는 우리 사회와 닮았다. 세상이 복잡 다양해지면서 미래에 대한 어설픈 예측은 심각한 재난으로 이어진다.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이 불투명해졌다.’

      외국어대 헝가리어과를 나온 작가는 캐나다에서 영문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해서 귀국한 뒤 1년 동안 카지노를 출입하면서 이 소설의 밑그림을 그렸다. “카지노에서 도박이 멈추지 않는 것은, 도박을 하는 순간, 이것이 공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박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패배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승리하는 것은 시스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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