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지음│방민호 박현수 허혜정 엮음│예옥│350쪽│1만5000원│
입력 : 2007.03.02 21:31
- 미당(未堂)이 돌아왔다. 미당 서정주 시인(1915~2000)이 시의 향연을 베풀기 위해 한 권의 책으로 부활했다. 미당이 생전에 시인 지망생들을 위해 펴낸 책 ‘시창작법’ ‘시창작교실’ ‘문학을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등에서 알갱이만 골라 한 권의 책이 다시 만들어졌다.
- 하지만 미당의 시창작 강의를 재편집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미당의 시론에 부합하는 한국의 현대시 101 편도 함께 실었다. 젊은 문학평론가 방민호 박현수 허혜정이 미당의 글과 시를 고르고 거기에 걸맞는 해설을 썼다. 한국현대시의 거목인 미당을 중심으로 삼고, 정지용 백석 김지하 조오현 최동호 오세영 신대철 김혜순 안도현 김기택 도종환 송찬호 문태준 김경주 이병률 등등의 시를 실었다. 미당을 좌장으로 삼은 시의 잔치판이 벌어졌다.
‘언어는 적으면서 사상은 더 큰 것! 이것이 시의 본도(本道)요 시의 자랑이란 말입니다’라고 미당은 강조했다. 이 책의 엮은이들은 김지하의 시 ‘중심의 괴로움’을 예로 들었다.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이란 김지하의 시행들은 봄에 꽃이 피기 직전 꽃대가 흔들리는 풍경을 보면서, 단순하고 투명한 언어로 존재의 심연을 포착했기 때문에 큰 울림을 남긴다. ‘언어는 적으면서 사상은 더 큰 것!’이란 미당의 일갈은 언어 낭비가 심한 산문시가 유행하는 오늘의 한국 시단에 일침을 가한다.
‘애욕 많고 이빨 좋은 젊은 사람이여, 사과를 꼭 하나만 먹고 더 먹고 싶은 것을 절제하고 보라’고 미당은 젊은 시인들에게 충고했다. 이미지 과잉에 빠지기 쉬운 젊은 시인들일수록 ‘이미지를 포식하지 말라’는 뜻이다. 역시 오늘의 젊은 시인들이 귀담아 들을 소리다.
‘우리는 단 한 마디의 직유의 형용어를 찾기 위해서 밥 먹을 때도, 뒷간에 가서도, 길 걸을 때도 그 많은 언어들을 골랐다간 버리고 골랐다간 버리고 하는 짓을 언제까지나 되풀이하고 사는 자 아닌가’라며 미당은 시인의 창조적 고통을 찬미했다. 미당은 시를 쓴다고 하지 않고, ‘시를 한다’고 표현했다. ‘나는 시를 하는 일을, 자기가 숨쉬고 생명 영위하기에 적합한 세계를 정신과 언어와 언어의 율동으로서 꾸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미당이 역설한 시와 시인의 합일에 가장 충실했던 후배 시인이라면 최승자를 꼽을 수 있다. 그녀는 ‘악순환’이란 시에서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겐 공포였다/ 나는 독 안에 든 쥐였고/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는 쥐였고…’라고 일상 속에서 겹겹으로 쌓인 실존의 불안을 처절하게 노래했다.
시를 음악에 가까운 것으로 절감했던 미당은 리듬에 민감했다. ‘시의 운율을 덮어놓고 무시하는 무지와 아울러 우리가 또 경계해야 할 것은 ‘닐리리’의 가락에의 무조건 항복이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의 유형·형식·언어·리듬·수사·이미지 등을 미당이 강의하는 창작 교과서이자, 좋은 시만 모아놓은 사화집(詞華集)이다. 미당이 쓴 책들 중에서 ‘시창작법’ ‘시창작교실’은 현재 절판된 상태라, 굳이 국립 도서관에나 가야 읽을 수 있다. 다행히 그 책들의 핵심이 다 이 책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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