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숙 지음 | 서해문집 | 327쪽 | 1만1900원
입력 : 2007.03.02 22:26
- 영조 때 사람 장오복은 이부(吏部)의 아전이었다.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싸우는 걸 보면 약자를 얕보거나 잘못한 것을 옳다고 우기는 자는 반드시 이치를 분명하게 바로잡아 굴복을 받고 나서 갔다. 한번은 취해서 광통교를 걸어가고 있었다. 마주오던 화려한 가마와 부딪쳐 시비가 붙자 칼로 가마 아래를 찔렀다. 알고 보니 그 가마에 탄 사람은 포도대장의 애첩이었다. 포도대장이 장오복을 죽이려 하자 그는 껄껄 웃더니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장군은 장부답지 않소이다”고 말했다. 그는 곧 풀려났다.
조선 후기 평민 문학가였던 정래교의 시 ‘풍설탄(風說歎)’의 정서는 결코 낯설지 않다. ‘조정에 나아가 배운 것을 펴고 싶지만/ 말 타고 문 나서니 갈 곳을 모르겠네.(騎馬出門迷所之)’ 뜻을 펴지 못하는 요즘 청년백수들의 답답함과 그대로 맞닿아 있는 것이다. 예인(藝人)과 협객, 기생과 중인, 불우한 선비에서 거지에 이르는 수많은 ‘마이너리티’들의 생애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그 삶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조선 후기에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전(傳)이 많이 쓰여졌기에 가능했다. 고전문학 전공자인 저자는 사려 깊은 해석을 통해 먼지묻은 전적 속에 숨겨져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꺼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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