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자크 장편소설|성귀수 옮김|문학동네|전4권 각권 1만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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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가 대마법사였다? 황당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가 연금술 같은 신비주의 사상에 경도됐던 비밀 결사대의 일원이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28세에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단원이었다. 모차르트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은 대부분 영화 ‘아마데우스’에 기대고 있어서, 잇몸을 드러내며 해괴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선 도대체가 ‘정치’나 ‘이상’ 따윈 읽어볼 수 없다. 실제 영화 속에선 왕이 금지한 ‘피가로의 결혼’에 대한 공연의 정당성을 설명하면서 모차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그냥 코미디고, 정치랑 아무 상관도 없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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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의 저자 크리스티앙 자크(‘람세스’의 저자이기도 하다)는 모차르트에 대한 우리들의 ‘이미지’를 180도 뒤집는다. 프리메이슨의 교리에 따라 우주적 조화를 음악에 안착시키기 위해 고뇌하는 모차르트, 혹독했고 사치스러웠다고 알려졌던 아버지와 아내를 극진히 사랑한 모차르트로 말이다. 물론 신을 저주하며 모차르트의 재능을 질투하던 영화 속 살리에르와는 전혀 다른 밉살맞고 무심해 보이는 살리에르도 나온다. 그뿐인가. 프리메이슨의 유력자로 괴테가 스윽 등장했다가 입단의식에 지각해 모차르트의 간장을 녹이는 하이든이 나오고, 피아노 솜씨가 시원찮다는 평을 받은 베토벤도 등장한다. 역사 속 ‘주연’들이 소설 속에선 ‘엑스트라’가 되어 등장하고 사라지는데, 이런 사소한 즐거움들이 이 소설 여기저기 부비트랩처럼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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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소설의 백미는 프리메이슨의 핵심적 사상을 고대 이집트의 이시스와 오시리스 비전에서 찾은 저자 크리스티앙 자크의 독창성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마술피리’와 ‘돈 지오바니’, ‘피가로의 결혼’을 프리메이슨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는데, 소설에선 모차르트가 주인공 피가로를 프리메이슨 도제로 설정하고, 그의 약혼녀 로잔나를 ‘지혜의 화신’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여성성을 앞세우고, 계급을 부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왕조차 금지한 희곡을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의 이상을 구현하는 데 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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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프리메이슨 단원들의 대화 중엔 이런 말이 나온다. “육체노동자도 프리메이슨에 받아들이는 겁니까?” 이에 대해 한 고위단원은 이렇게 답한다. 옛날 대성당들의 건축가 조합들은 수공업 장인들로만 이루어졌다. 어떤 지원자이든 기본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고, 빛과 진실에 진지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성전에 발을 들이려는 그 누구의 걸음도 막을 이유가 없다, 고 말이다. 이것은 곧 여성의 입단도 막지 않았단 뜻이다. 이 비밀스런 결사대가 당시 얼마나 혁명적이며, 진보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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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미스터리를 증폭시키는 것은 모차르트의 죽음이다. 그의 죽음은 역사상 몇 가지 버전으로 존재하는데 이 소설에선 프리메이슨을 해체하려는 자들이 모차르트를 서서히 독살시킨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식스센스’를 두고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다!” 라고 말하면 경을 칠 노릇이지만, 이 소설에선 이것이 스포일러가 아니다. ‘범인’ 자체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고, 피바람이 몰아칠 것 같은 냄새를 사방에 피우는 저자의 솜씨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음식이 과정 없이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 게 아니라, ‘오픈 키친’에 서 있는 셰프가 고깃덩어리를 텅, 하니 내려놓고 스윽스윽 칼로 살을 저미는 것에서부터 으깨고, 자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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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할 것도 없이 이 소설을 읽기 위한 최상의 독서법은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들으며 읽는 것이다. 사족 같아서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조차 필요 없어 보인다. 시간이 난다면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며 모차르트의 해괴망측한 웃음소리를 다시 한 번 재생해 보는 것도 비교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것이다. 책을 덮고 나면 모차르트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전혀 달라져 있다는 건 덤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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