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남미 출신의 한 남자 아이가 화물열차 지붕 위에 올라타고 멕시코를 가로질러 미국으로 가고 있다. 사진 제공 다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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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기차’ 타고… 엄마 찾아 오만리
“현재 미국에는 생활고에 내몰린 중남미의 싱글맘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들이 고향에 두고 온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 위험한 기차 여행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무미건조한 기사 한 줄.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 정도일 것이다. 이어 미국의 이민자 통계를 보이고 이민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전문가의 코멘트로 처리한 기사가 있다 치자. 한국 독자들은 십중팔구 콧방귀를 뀔 것이다. ‘나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미국 이민자 문제까지 관심 가질 이유는 없잖아.’
그러나 그 아이들이 2574km나 되는 거리를 화물열차 지붕 위에 탄 채 여행한다면, 그 화물열차가 총을 든 갱과 무장강도가 득실거리는 지옥이라면, 수많은 아이들이 폭행당한 채 달리는 기차 위에서 내던져져 죽어간다면, 그 여정을 좇아 생생하게 보여 준다면…. 현실보다 더 감동적인 드라마는 없다. ‘엔리케의 여정’은 이 명제를 증명한다.
저자 소냐 나자리오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기사를 20년간 써 온 기자다. 저자는 사선을 넘나들며 엄마를 찾아 미국으로 간 온두라스 소년의 비참한 여행을 담은 연재기사로 2003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책은 이 연재기사의 연장선이다.
아이들에게 아무런 희망도 줄 수 없는 온두라스. 엄마는 아들 엔리케를 살리기 위해 아들을 떠났다. 아메리칸 드림. 그러나 엄마 라우데스의 꿈은 15년을 아들과 떨어져 살게 만들었다. 엔리케가 원하는 것은 오직 엄마였다. 그렇게 열일곱 살 엔리케의 여정이 시작된다.
긴 여정 동안 엔리케는 죽음의 기차라 불리는 화물열차 강도들의 살해 위협을 피해 달아나고 하수도 배수구에서 잔다. 엔리케 같은 중남미 아이들이 매년 4만8000명에 이른다.
여행을 시작한 지 122일 만에 엔리케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인 리오그란데 강을 건넜다. 여행 중간 경찰에 붙잡혀 수도 없이 고향으로 보내지다 8번 만에 성공했다. 엔리케가 이동한 거리를 합하면 무려 5만리다. 엄마와의 행복한 재회. 그러나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오랜 별거가 가져온 가족 해체, 가족을 위해 가족을 떠났다가 가족을 잃고 마는 역설이 이들의 운명이다.
이 기록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도 이민자 수입국이 됐다.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아빠들이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국으로 온다. 불법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해 우리가 진심으로 관심을 보인 적이 있을까.
저자의 호소에 귀 귀울이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오래지 않아 비참한 여정 끝에 엄마 아빠를 찾는 동남아시아 어린이의 슬픈 얼굴을 봐야 할 것이다. 주인공의 여정을 미화하지 않고 기자의 엄격한 눈으로 그려낸 것이 인상적이다. 원제 ‘Enrique’s Journey’(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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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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