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의 비밀?...예산 수덕사
예산 ...대구에서는 한 참이나 가야만 나올까 말까 하는 지도상 위치한 예산...지도찾기 놀이라도 하듯이 손가락을 따라 올라가고 올라가서 만날 수 있는 곳...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20번지에 위치한 수덕사..내 생에 몇번이나 갈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어느 풍문에서 전해 들은 대로 한때 춘원 이광수와 연애하던 여류문인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평생을 살다 죽은 유명한 여승들의 절이 바로 수덕사라고 하는 애매한 소문도 있다.
최인호 작가의 소설 "길 없는 길"이란 책 1권에는 첫 페이지"거문고의 비밀"이란 소제목이 나온다.읽다가 보면..마치 사실인양 빠져드는데 그 책속에는 만공선사의 거문고를 보관하는 사찰로 수덕사가 등장하게 된다.정말 그 거문고가 수덕사에 있을까?하는 웃으꽝 스런 생각을 잠시 가졌다.소설일 뿐인데...정말 거문고가 있을 것 만 같았다.
가는 길이 멀기만 하다. 마음이 조급해서 기차에 올라야만 그 조급함을 덜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한 걸음에 달려갔다.
대구에서 대전까지 가는 시간은 기차를 이용했을 경우 두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대전은 이번이 세 번째 인 것 같다.엑스포 때문에...그리고 동학사로 가는 코스에서 한번..그리고 지금..엑스포로 유명한 大田...둘러볼 시간의 여유도 없이..다시 동대전 터미널로 향했다.
동대전 터미널에서 요금8,600원을 내면 홍성 까지 2시간 30분을 소요하여 도착하게 된다.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첫차는 6;40에 20분 30분 간격으로 한 대씩 있다고 하고 막차는 17;00시에 있다고 한다.
교통편은 그리 썩 좋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둘러 볼 것도 많고 할 경우에는 차 시간에 쫒겨 제대로 답사를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막차 시간이 좀 길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다.
길고도 긴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면서 계속 머리 속에는 온통 만공선사의 거문고 뿐이었다.정말 거문고가 있을까?
머나먼 곳..충청남도 예산 수덕사 까지 내가 도착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믿을수 가 없었지만..수덕사 일주문을 본 후에야 그 믿음이 실감으로 이어졌다.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설화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첫째는‘덕산향토지(德山鄕土誌)’에 실려 있는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고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德崇山 修德寺"덕숭산 수덕사 라 적혀 있는 일주문의 글자를 보니 실로 수덕사는 선지종찰 이라는게 느껴졌다.
"이곳을 경허가 지나 갔고..그의 제자 만공 또한 지나 갔으니 어찌 선지 종찰임이 아니겠는가.."누군가의 말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간다.
한참을 걷고 걸어야 했다.지리 위치상 수덕사는 높은 산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계단식형 사찰 배치가람 이란 생각을 했다.부산 범어사나 영주 부석사 처럼..높은 지대에서 낮은 지대로 계단식으로 건물을 세워 놓았다.그 예 한 단면이 석축 인데 수덕사의 석축의 높이는 실로 대단했다.석축 옆 석조계단은 옛 석조계단을 다시 건축 한 것인데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적 답사기 책에서 얼핏 본 기억이 난다.
옛 석조계단의 아름다움이 사라져서 조금 아쉽기는 하다.
높은 계단을 한 걸음씩 올랐을 때 사찰 경내에 펼쳐진 그 모습은 그야말로 관광객들 이었다.답사를 온 사람들,등산 온 사람들..관광객이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마치 경내에 선의 향기가 짙게 배어 나오기라도 하는 듯 사람들이 그 향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이 삼층석탑은 도에서 지정한 유형문화재 103호로 보호 받고 있다.
이 탑은 신라 문무왕 5년에 건립되었고, 원효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지나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한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기단은 2층으로 위층은 4매의 돌로 면석(面石)을 조립하였으며,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가 표현되어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보륜(寶輪)만이 남아 있었으나, 찰주(擦柱)와 보개(寶蓋), 복발(覆鉢), 노반(露盤)을 새로 만들어 놓은 상태이다. 상대갑석(上臺甲石) 및 지붕돌 및 3층 몸돌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전체적으로 균형미를 갖춘 석탑이다.
경내에 한 복판에는 수덕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오래되고 낡은 석탑 한구와 근래에 세워놓은 듯한 새 석탑(금강보탑) 한구가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부서지고 깎인 흔적이 너무도 많아 보여 애처러워 보이기 까지 하는 그 석탑 옆에 새 석탑(금강보탑)이 서 있으니 너무도 외로워 보였다.
많은 세월을 참고 견뎌온 순박한 모습을 지닌..그다지 볼품은 없지만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석탑 같았다.
석탑 뒤에 있는 바로 보이는 건물은 대웅전이었다.저녁 햇빛에 비추어진 대웅전의 모습은 마치 황금으로 지어진 건물 처럼 보였다.
수덕사 대웅전은 백제적 곡선을 보여주는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건축물로 고려 충렬왕 34년 (1308)에 건립되었다. 현재는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고려충렬왕34년(1308)에 세워진 수덕사 대웅전은 연대가 확실하고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대웅전은 정면3칸 측면 4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기둥의 중간부분이 부풀려진 배흘림기둥 위에만 공포를 올린 주심포 양식의 건물이다.
간단한 공포구조와 측면에 보이는 부재들의 아름다운 곡선은 대웅전의 건축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특히 소꼬리모양의 우미량(牛尾양)은 그 중 백미로 꼽을 수 있다.
내부에는 천장을 가설하지 않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고 과거에는 바닥에 전돌이 깔렸으나 현재는 우물마루가 깔려있다.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 가구에 새로 단청을 입히지 않아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수덕사 대웅전은 건물의 기능미와 조형미가 잘 조화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 건축물 중 하나이다.
그리고 특히 측면 맞배지붕의 선과 노출된 목부재가 만들어내는 구도는 수덕사 대웅전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수 있겠다.
이러한 조형미와 역사적 가치로 인해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은 현존하는 건물 중 백제적 곡선을 보여주는 유일한 목조건축물이다.
대웅전 외에도 수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명부전,심우당,염화실,백련당,청련당,만월당,무이당.등일주문에서부터 시작하여 대웅전 까지의 층계별 구조 건물들이 빼곡히 수덕사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마치 덕숭산 하나 자체가 수덕사 인 것 만 같았다.
여기 저기 둘러 보고 도대체 거문고는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에..한참을 서성 거렸다.
정말 있을까?
그에 대한 의문의 답은 바로 성보박물관에 있었다.수덕사에 관련된 모든 문화재는 박물관에 모셔져 있었다.정말 ..내 눈앞에 보이는 그 거문고가..정말 만공의 것일까?
가방속에 넣어둔 길없는 길을 꺼내서 접어둔 페이지를 열어보았다.소설이라지만..마치 사실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혼란 스럽기 까지 했다.어느 독자는 그 거문고를 확인하려고 이 먼 곳 수덕사 까지 발걸음을 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만공스님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사랑하는 노국공주를 위해 공민왕은 이 거문고를 만들고 그 소리를 들으며 울었을 지도 모른다.
그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를 직접 들을순 없지만 본 것 만으로도 충분히 나의 의문은 풀렸다.거문고는 거기에 있었고 계속 남아 있을테지...
그렇게 수덕사의 답사는 끝이 났다.해가 어둑어둑 해 지고 땅꺼미가 어느새 내 발 밑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만공선사와 거문고를 생각하며, 가슴가득 신비로움을 지닌체 다시 대구로 돌아간다..
차원희 (불교타임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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