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수사모

[스크랩] 나를 찾는 법--<참선법(參禪法)>~2

淸潭 2006. 9. 17. 20:33

3.나를 찾는 법--<참선법(參禪法)>~2



41. 말이 입에서 나오기 전에 그르쳤다 함은 물건 이전의

    마음을 지적한 것이니라.



42. 공부가 잘 된다고 느낄 때 공부와는 벌써 어긋난 것이니라.



43. 꿈속에서 공부해 가는 것을 증험(證驗)하여 선생으로 삼을 것이니라.



44. 꿈도 없고 생시도 없이 잠이 푹 들었을 때에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를 어디에 두는지 알아야 하나니라.



45. 꿈이라 하는 것은 업신(業身)의 동작인데,

    깨어있을 때는 생각만으로 헤매다가 잘 때

    업신이 제 몸을 나투어 가지고 육신이 하던 행동을 짓는 것이니라.



46. 꿈과 생시(夢覺)가 일여(一如)하게 공부를 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하나니라.



47. 산 몸이 불에 탈 때에도 정상적 정신을 가질 수 있겠나?

    헤아려서 미치지 못한다면 사선(死線)을 넘을 때

    자기 전로(前路)가 막막하게 될 것을 알아야 하나니라.



48. 공부인(工夫人)이 공부를 아니하는 공부를 하여야 하는데,

    공부 아니하기가 하기보다 더욱 어려우니라.



49.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문제보다도 이 공부밖에 할 일이 없다는

    결정적 신심(信心)부터 세워야 하나니라.



50. 오전(悟前)이나 오후(悟後)나 한 번씩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하나니라.



51. 참선은 모든 업장(業障)과 습기(習氣)를 녹이는 도가니(甕)니라.



52. 사람을 대할 때에는 자비심(慈悲心)으로 대하여야 하지만,

    공부를 위하여서는 극악극독심(極惡極毒心)이 아니면

    八만 四천 번뇌마(煩惱魔)를 쳐부수지 못하나니라.



53. 사형이 집행될 시간 직전에도 오히려 여념(餘念)이 있을지 모르지만,

    정진(精進) 중에는 털끝만한 어른거림이라도 섞여서는 아니 되나니라.



54. 공부하는 데는 망상보다도 수마(睡魔)가 두려운 것이니,

    수마를 먼저 조복(調伏)시켜야 하느니라.



55. 인신(人身)을 얻기가 극히 어려운 일이니

    사람 몸 가졌을 때 이 때를 놓치지 말고 공부에 힘쓰라.



56. 공부에 득력(得力)을 못하였을 때 안광(眼光)낙지(落地)하게 되면

    인업(人業)만 남아 짐승도 미남·미녀로 보여서 그 뱃속에 들기 쉬우니라.



57. 참선하는 사람의 시간은 지극히 귀중한 것이라,

    촌음(寸陰)을 허비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58. 변소에 앉아 있는 동안처럼 자유롭고 한가한 시간이 없나니,

    그때만이라도 일념에 든다면 견성(見性)할 수 있나니라.



59. 공부가 늦어지는 까닭은 시간 여우가 있거니 하고

    항상 미루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라.

    자고 나면 오늘은 죽지않고 살았으니,

    살아있는 오늘에 공부를 마쳐야 하지 내일을 어찌 믿으랴!

    하고 매일매일 스스로 격려해 가야 하나니라.



60. 밤 자리에 누울 때 하루 동안의 공부를 점검하여

    망상과 졸음으로 정진 시간보다 많이 하였거든

    다시 큰 용기를 내어 정진하되, 매일매일 한결같이 할 것이니라.



61.공부하다가 졸리거나 망상이 나거든

   생사 대사(大事)에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전정(前程)을 다시 살펴본다면

   정신이 저절로 새로워질 것이니라.



62. 사선을 넘을 때 털끝만큼이라도 사심(私心)의 여유가 있다면

    참선하는 기억조차 사라져 없어지느니라.



63. 생사 윤회의 생활을 면하려고 출가(出家)한 중이니만큼

    참선법을 여의고 하는 일은 모두가 생사법(生死法)을 익히는 것이니라.



64. 도라는 것이 따로 있는 줄 알고 구하는 마음으로 참선한다면

    외도(外道)에 떨어지게 되나니라.



65. 설사 도인이 온갖 신통(神通)·변화(變化)를 부리고,

    죽을 때에도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이적(異蹟)을 보일지라도

    이는 상법(相法)이니, 이런 상법이란 하나도 가히 취할 바는 아니니라.



66. 믿음은 부처를 찾아오르는 발판이기 때문에

    몰아적(沒我的) 믿음의 발판을 딛고

    부처를 넘어 각자의 자기 正體를 찾아야 하나니라.



67. 선학자(禪學者)는 선학자의 행위를 엄숙히 가져서

    입을 열지 않고서라도 남을 가르치게 되어야 하나니라.



68. 공부의 과정(課程)에는 지무생사(知無生死)·계무생사(契無生死)·

    체무생사·용무생사의 네 가지 단계가 있는데 용무생사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무애·사무애하게 되는 대자유인(대자유인)이 되나니라.



69. 공부를 할 때에 짐짓 알려는 생각을 말고,

    정진력만 얻으면 공부는 저절로 성취되나니라.



70.공부가 완성되기 전에 미리 알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진을

   게을리하다가는 불법인연(佛法因緣)마저 떨어지기 쉬우니라.



71. 물체에 의존하지 아니하는 정신은 한 모양도 없는 자리에서

    일체 행동으로 능히 현실화할 수 있나니라.



72. 정신은 물질의 창조자이지만,

    물질이 아니면 정신의 존재와 효과가 나타나지 못하나니라.



73. 물질은 각자 그 이름에 따르는 한 가지 책임을 할 뿐인데,

    정신은 이름도 형상도 없지만 萬有의 근본(바탕)이라,

    어디서 무슨 일에나 절대 능력자이니, 이 정신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이 정신만 도로 찾으면 萬能의 人이 되나니라.



74. 정신이라는 殿堂 안에는 생사와 선악이라는 두 배우가 順番으로

    森羅萬象이란 배경 앞에서 희비극을 무한한 形態로 연출하고 있나니라.



75.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 나라라 하더라도 도인이 없으면 빈 나라요,

    아무리 빈약한 나라라 하더라도 도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나라는 비지 않은 나라이니라.



76. 道人은 도인이라는 代名詞에 지나지 않는 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名相이 생기기 이전 소식을 證得하여,

    도인이라는 偶像도 여의고, 戒니 修行이니 하는 구속에서 벗어나

    완전 독립적 인간이 되어야 육도에 巡歷하면서 苦를 면하게 되나니라.

 

출처 : 수덕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글쓴이 : bany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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