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시집 제29권 / 시류(詩類)
부질없이 이루다 / 서거정(徐居正)
조물주가 사람에게 어찌 사심을 두리오 / 造物於人豈有私
예로부터 득실은 사람 하기에 달린 거지 / 由來得失在人爲
공명은 요행히 젊은 시절에 이루었건만 / 功名僥倖遭時早
신세는 늘 망설여라 사세 판단 더디어서 / 身世依違見事遲
기나긴 날을 서수처럼 마시지 못할쏘냐 / 長日可無犀首飮
소년 때부터 원래 호두처럼 어리석은걸 / 少年元有虎頭癡
시를 짓는 덴 글자 놓는 법칙이나 배울 뿐 / 作詩要學安排法
슬피 읊어 수염 꼬아 끊을 필요 없고말고 / 不用悲唫撚斷髭
[주-D001] 기나긴 …… 못할쏘냐 :
서수(犀首)는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변사(辯士) 공손연(公孫衍)의 관명(官名)이다. 당시 초(楚)나라의 변사였던 진진(陳軫)이 일찍이 위나라에 들러 서수를 만나려고 했으나 서수가 만나주지 않으므로, “내가 공의 일을 위해서 왔는데 공이 나를 만나주지 않으니, 내가 곧 떠나고 나면 후일은 기대할 수 없으리라.”라고 하였다. 서수가 그제야 그를 만나주니, 진진이 “공은 어찌하여 술 마시기만 좋아하는가?〔公何好飮也〕” 하자, 서수가 말하기를 “일이 없기 때문이다.〔無事也〕”라고 하였다. 《史記 卷70 張儀列傳》
[주-D002] 호두(虎頭)처럼 어리석은걸 :
호두는 진(晉)나라 때 문인 화가(文人畫家)로 일찍이 호두장군(虎頭將軍)을 지낸 고개지(顧愷之)를 말한다. 고개지가 환온(桓溫)의 막부(幕府)에 있을 때, 환온이 항상 말하기를 “고개지의 몸속에는 어리석음과 교활함이 각각 반반씩이니, 합해서 평론하면 정히 그 평정함을 얻을 것이다.〔愷之體中 癡黠各半 合而論之 正得平耳〕”라고 하였으므로 세속에서 그를 재절(才絶)ㆍ화절(畫絶)ㆍ치절(癡絶)의 삼절(三絶)로 일컬었던 데서 온 말이다. 치절은 곧 졸렬함을 감추어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겸사(謙辭)나 시속에 잘 부합하지 못하는 무능함의 뜻으로 쓰인다.
[주-D003] 슬피 …… 없고말고 :
당나라 노연양(盧延讓)의 고음(苦吟) 시에 “시 읊어 한 글자를 안배하느라, 두어 가닥 수염을 꼬아 끊었네.〔吟安一個字 撚斷數莖鬚〕”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시구를 퇴고하면서 괴로이 읊조리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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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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