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낭산(사적), 선덕여왕릉이 있는 신라인이 신성시 여겼던 숲
경주 낭산(사적 163호)는 도심 동남쪽 보문동.구황동.배반동 일대에 누에고치모양처럼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는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5세기 실성왕대부터 신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으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선덕여왕과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과 관련이 많은 곳이다. 낭산에는 많은 유적지들이 있는데 북쪽편에는 신라 왕실의 기복신앙과 관련되어 있으며,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황복사가 있다. 낭산 남쪽 언덕에는 선덕여왕릉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칠처가람 중 하나이자 문무왕과 관련된 호국사찰인 사천왕사가 있었다. 또한 낭산 허리에 해당되는 부분에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화장터로 알려져 있는 능지탑지가 있다. 낭산에는 거문고의 명인 백결선생이 살았으며, 문창후 최치원이 공부하던 독서당도 있었다고 한다.
낭산 북쪽으로는 황룡사와 분황사가 있고 서쪽편으로는 경주의 궁궐이 월성이, 동쪽편으로는 명활산성 아래 신라 6촌 중 하나로 설씨성을 받은 명활산 고야촌이 있다. 남쪽으로는 울산으로 연결되는 도로와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다. 울산에서 경주로 연결되는 길은 신라와 적대적 관계를 이루었던 왜(倭)가 침입할 수 있는 가장 편하고 가까운 경로이다. 아마도 신라왕실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하여 낭산을 신성시 여겼던 것으로 보이며, 삼국을 통일한 이후 일본의 침입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였던 문무왕과 관련된 유적들이 많은 것과 이런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낭산 남쪽으로는 문무왕의 뒤를 이었던 통일신라 전성기 왕들인 신무왕, 신무왕, 성덕왕, 효소왕 등의 무덤들이 위치하고 있다.
<경주 낭산(사적) 남쪽>
낭산에서 구름이 일어나다 ( 413년 08월(음) ), 12년(413) 가을 8월에 낭산(狼山)에서 구름이 일어났는데 바라보니 누각과 같았고 향기가 가득 퍼져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왕이 말하기를, “이것은 반드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노는 것이니 마땅히 이곳은 복 받은 땅이다.”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3 신라본기 제 3 실성 이사금,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선덕왕이 죽다 ( 647년 01월08일(음) ), 〔16년(647) 1월〕 8일에 왕이 돌아가셨다.시호(諡號)를 선덕(善德)이라 하고, 낭산(狼山)에 장사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5 신라본기 제5 선덕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경주 낭산은 신라 왕성이었던 월성 동쪽편으로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도심과 북쪽 자락에는 황복사와 미탄사가, 남쪽에는 선덕여왕릉과 사천왕사가 자리잡고 있다. 울산에서 경주로 연결되는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왜(倭)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신성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낭산 남쪽으로 문무왕을 이어 통일신라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들의 무덤들이 있다.
<구글 위성사진으로 본 낭산 일대>
<경주와 울산을 연결하는 국도 옆에 사천왕사와 선덕여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
<2기의 거북받침돌이 남아 있는 사천왕사 입구>
<사천왕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문무왕 비(碑)>
이 것은 비석의 하단부로 조선 정조 20년(1796)에 경주부윤 홍양호가 발견하였다고 한다. 비석의 상단부는 2009년 경주 민가에서 새로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 남쪽 기슭 아래에 남아 있는 사천왕사 절터>
사천왕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처음 세운 사찰로 당나라 세력을 물리치려는 호국의 염원이 담긴 사찰이다.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그 맥을 끊기 위해 낭산과 사천왕사 절터 사이에 철도를 부설하였다고 한다.
<사천왕사 절터에서 출토된 건물 지붕을 장식했던 치미>
치미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 궁궐건물이나 사찰 불전 건축에 많이 사용된 것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에 주로 사용한다.
<사천왕사지에서 발견된 유물중 가장 인상적인 녹유사천왕상>
동시대에 활약한 조각가이 양지스님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서 그 조각수법이 매우 사실적이고, 중앙아시아 간다라 미술품의 조각수법과 유사하다.
<낭산 선덕여왕릉 아래에서 내려다 본 사천왕사지. 그 남쪽으로는 망덕사지가 자리잡고 있다.>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 남쪽편 일제가 부설한 철도>
<사천왕사 뒷편 선덕여왕릉으로 올라가는 길>
<경주 낭산 남쪽 능선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는 선덕여왕릉>
선덕여왕릉은 진흥왕릉이나 무열왕릉 등과 마찬가지로 봉분만이 남아 있고 별다른 장식이나 석물 등을 두고 있지는 않다. 주위에는 전형적인 경주지방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낭산 허리에 해당하는 능지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길>
<기단부만 복원되어 있는 능지탑>
원래는 5층탑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탑신부는 남아 있는 석재들을 모아서 올려놓은 것으로 원래의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이곳을 발굴할 때 소조불상 파편이 나왔기 때문에 탑묘라고 보는 이도 있다고 한다.
<능지탑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주 남산>
<낭산 뒷편으로 연결되는 길>
<낭산 동쪽 진평왕릉에서 본 능지탑 반대편 마을>
<능지탑 근처에서 출토된 석조관음보살 입상>
이 보살상의 머리는 오래전에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고, 1975년에 몸체가 발견되었고, 1997년에 연꽃대좌가 발견되어 전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십일면관음보살입상, 경주 낭산 출토, 8세기>
이 불상은 경주 낭산 중생사 터 부근에 있던 삼존불 가운데 오른쪽 협시보살로 여겨지는데 현재 본존불과 왼쪽 협시보살은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낭산 북쪽>
낭산 동쪽에는 신라왕실과 관련이 있었던 황복사가, 서쪽에는 미탄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황복사는 652년 의상대사가 출가한 사찰로 잘 알려져 있으며, 절의 내력을 보면 신라황실과 관련이 많은 사찰이었던 것 같다. 황복사는 불교가 처음 도입되던 시기에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기던 숲에 세워진 흥륜사, 황룡사, 분황사 등과 함께 낭산 북동쪽 끝 자락에 세워졌던 사찰로 보인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중인 옛 경주 모형 중 낭산 주변>
<황복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황복사 절터에는 석탑으로 2개의 탑이 세워졌던 감은사나 불국사와는 달리 1개의 석탑만이 있다. 이전의 석탑은 10m가 넘었던 것에 비해 이 석탑은 높이 7.3m로 삼층석탑이 정형화되어가던 전환기 석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금동 아미타불좌상(국보)와 부처입상(국보호)>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각각 넣은 것으로 보인다.
<황복사 절터에서 출토된 글자가 적힌 비석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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