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전
필사본으로 표제는 <까치젼>으로 되어 있으며 <장치젼>과 함께 1책으로 합본되어 있다. 작자는 작품 배경이 황해도 안악군으로 되어 있는 점과 함경도 사투리가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북한 지방에 연고가 있는 인물로 추정되며, 창작 시기는 작품 말미의 간기에 “정유 10월 12일 필셔 우남창하”로 되어 있어 영조·정조 때로 추정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까치가 나무 끝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학두루미·까마귀·꾀꼬리 따위의 온갖 우족(우족)들을 초청하여 낙성연(낙성연)을 베풀어 즐긴다.
그러나 초청받지 못한 비둘기가 불만을 품고 까치를 찾아가 다투다가 까치를 죽이게 된다. 과부가 된 암까치는 군수에게 고변하게 되고 낙성연에 참석한 우족들의 증언을 하게 되는데, 비둘기의 뇌물을 받은 두꺼비가 까치의 실족사라고 위증을 하여 비둘기가 풀려나게 한다. 까치의 삼년상이 지난 후, 할미새가 암행어사인 난춘(鸞鳥)에게 이 사실을 하소연하여 진상을 밝힌다.
이로 인해 거짓 증언을 한 두꺼비는 정배당하고, 살해자인 비둘기는 암까치에게 보복을 당하게 된다. 그후에 암까치는 남편의 영혼과 교접하여 1남 1녀를 얻고 많은 자손을 거느리며 부귀를 누린다. 이 작품은 연회의 불참 문제가 살인 사건 발단의 주요한 요인으로 등장하는데, 비둘기는 ‘도처에 행악하매 비금 중에 그놈한테 아니 맞을 이 없’을 정도로 본심이 불측한 위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여 송사가 제기되어도 비둘기의 뇌물로 인해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되지 못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향촌 사회 내에서 관속과 결탁하여 향촌민을 핍박하던 한 부류를 비판하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비둘기가 이미 연회에 와서 즐기고 있던 꾀꼬리·두견·박새·할미새와 심지어 두민(頭民) 섬동지에게까지 온갖 毁辱을 하는 행실과, 나아가 까치의 집을 강탈하기 위해 흉계의 일환으로 까치에게 행패를 부리는 행실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지방 관리와 결탁하여 향촌민을 핍박하는 부류에 대한 징치는 향촌사회 내에서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암행어사를 통한 징치라는, 다분히 설화적이면서 관습적 구성을 취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우족들은 30여종의 관직을 저마다 가지고 있으면서 당시의 관속 성격을 잘 보여주는데, 관속과 결탁하여 시비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주쉬(主倅) 보라매, 권력의 비호 아래 뇌물을 즐기는 책방 구진, 비둘기 처가 사촌이라 아양떠는 모습에 넘어가는 앵무새 따위가 대표적이다. 암까치가 죽은 남편의 혼령과 교접하여 생자(生子)하는 내용은 설화적 모티프를 수용한 것으로 현실의 부당한 횡포에 좌절한 한 부부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결구한 것으로, 소설 향유층의 소박한 바람의 결과이다. 김영한(金英漢) 소장본을 김수환(金秀煥)이 교주한 것이 알려져 있다.
줄거리(사이버 문학광장 제공)
날씨가 화창한 봄이 돌아오자 까치 부부는 이곳저곳에서 나뭇가지를 물어와 높은 나무 위에 화려한 집을 지었다. 그리고 집들이를 하기 위해 잔치를 열고 모든 새들을 초대했다.
그러나 잔치 준비에 바쁘다 보니 비둘기만 초청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원래 비둘기는 마음씨가 나빠서 비둘기에게 얻어맞지 않은 새들이 없었다. 비둘기는 자기를 초대하지 않는 까치에게 원한을 품고 초청하지도 않았는데 잔칫날에 찾아왔다. 그리고 까치에게 시비를 걸 뿐만 아니라 잔치에 참석한 여러 새들에게 트집을 잡아 모두 돌아가게 했다.
이에 화가 치민 까치가 비둘기에게 달려들어 꾸짖자 비둘기는 까치를 발로 차서 수십 길 나무 아래에 떨어져 죽게 했다. 암까치와 다른 새들이 비둘기를 결박하여 관아로 끌고 가 재판을 받게 했다. 군수가 그 잔치에 참석한 새들을 불러 물었으나 모두들 비둘기의 보복이 두려워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잘 모른다고 했다.
더욱이 비둘기의 처로부터 뇌물을 받은 두꺼비는 까치가 제 스스로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었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 그리하여 고을 사또인 보라매 군수는 이러한 송사를 귀찮아하며 수하 관리들에게 처리하라 이르고는 비둘기를 죄가 없다고 놓아준다.
암까치는 억울한 마음을 풀 길 없어 죽은 남편 까치를 장사지내고 원수 갚기를 축원한다.
3년상을 마친 어느 날, 이 고을에 암행어사가 와서 동네의 할미새로부터 까치가 억울하게 죽은 진상을 듣고 다시 암까치와 비둘기며 두꺼비 등을 모두 불러들여 문초했다. 이리하여 진상이 드러나 비둘기는 사형을 받고 거짓 증언을 한 두꺼비 등은 곤장을 맞고 멀리 무인고도로 귀양을 가게 된다.
한편 남편의 억울함을 풀게 된 암까치는 죽은 남편의 혼령에 의하여 아들과 딸을 낳아 대를 이어가며 행복하게 살다가 나이 칠십이 되어 남편이 기다리는 황천으로 갔다.
날씨가 화창한 봄날이 돌아왔다. 짐승들도 겨우내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따뜻한 봄이 돌아오자 밖으로 나와 즐겁게 뛰놀고 새들도 겨우내 살던 집을 수리하거나 새로 짓고 알을 낳을 준비를 한다. 황해도 구월산 동쪽에 사는 한 까치 부부가 있었는데 봄이 돌아와 알을 낳으려고 높다란 나무 위에 마른 풀잎과 나뭇가지들을 물어다 궁궐처럼 크고 화려한 집을 짓고 여러 새들을 집에 초대했다.
그런데 바쁘게 잔치를 준비하다 보니 그만 남산골에 사는 비둘기를 초청하는 것을 깜빡 잊었다. 그 남산골 비둘기는 원래 마음씨가 비뚤어진 성격이어서 남을 해코지하는 것을 즐겨하는 새였다. 비둘기는 까치가 자기를 초대하지 않은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고 앙심을 품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까치에게 분풀이를 할까 생각하며 무슨 빌미를 잡아서라도 까치가 새로 지은 집을 송두리째 차지해버릴 궁리를 했다. 이윽고 비둘기는 외출할 차림을 하고서 집들이 잔치가 열리는 까치의 집으로 불쑥 찾아갔다.
까치는 초청도 하지 않은 비둘기가 찾아온 것을 보고 거짓으로 반가운 체하면서 정중하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비둘기를 높은 자리에 앉도록 했다. 그러나 비둘기는 화가 나서 까치를 호되게 나무랐다.
"이처럼 성대한 잔치를 벌여놓고 모든 새들은 다 초청하였는데 나만 초청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분명히 나에게 무슨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잔치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보니 그만 깜빡 잊었소. 제 허물을 너른 마음으로 용서하시고 마음껏 술과 음식을 드시오."
비둘기는 맛있는 고기와 술을 먹고는 얼근히 취하여 까치를 꾸짖기 시작했다. "오늘은 새들의 임금이신 봉황새님이 돌아가신 날인데 집들이를 한다는 핑계로 잔치를 베풀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다니 그게 어디 있을 수 있단 말인가!"하고 잔치에 참석한 여러 새들을 돌아보며 꾸짖었다.
"분별없는 까치가 초대를 하였다고 와서는 노래를 부르고 술과 음식을 먹으니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잔치에 참석하였던 모든 새들은 무안을 당하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비둘기가 이처럼 모든 새들을 책망하니 하나 둘씩 자리를 떠서 잔치는 이내 썰렁해졌다. 그러자 주인인 까치가 화를 참지 못하여 비둘기를 후려치며 꾸짖었다.
"너는 잔치에 초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불쑥 찾아와서는 남의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며 훼방을 놓는 것이냐! 내가 차린 음식을 먹고 내가 내준 술을 마시고서 이렇듯 트집을 잡으니 너 같은 심술쟁이가 어디 있으며 염치없는 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나는 고사하고 마을의 어른들에게까지 욕을 해대니 너같이 예의도 없는 놈이 또 있더란 말이냐!"이 말을 들은 비둘기가 벌떡 일어나 까치를 노려보며 말했다.
"뭐라구! 네가 지금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더냐!"
비둘기는 까치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두 발길로 까치를 냅다 걷어찼다. 까치는 갑자기 발길질을 당하였기 때문에 피하지 못하고 그만 높은 가지에서 아래로 떨어져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암까치는 남편 까치가 떨어져 죽자 비둘기의 소매를 잡고 흔들며 목을 놓아 크게 울었다.
"아무리 마음씨가 고약하다고 하나 어찌 아무 잘못도 없는 나의 남편을 죽인단 말이오! 이 세상에는 법도 없단 말이오!'"여편네도 남편과 같을 것이니 더 말하기 싫다!"
비둘기는 서럽게 우는 암까치의 손을 뿌리치며 말하고는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묵묵히 앉아 있던 다른 새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아무리 마음씨가 고약한 놈이라지만 이런 자를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새들은 술에 취해 건들거리는 비둘기를 잡아 꽁꽁 묶어 관가로 끌고 갔다. 안악 군수인 보라매 사또는 사연을 듣고 즉시 증인들을 관아로 불러들였다.
"먼저 꾀꼬리에게 묻겠다. 너는 그 잔치에 참석하였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사실을 알 것이다. 당시에 일어났던 일들을 숨김없이 바른 대로 아뢰어라."꾀꼬리가 아뢰었다. "소생은 한가한 때를 틈타서 간간이 슬피 울어 서로 애타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외로운 꿈이나 깨우는 새일 뿐이 온데 어느 날 까치의 집들이에 초대를 받아서 잔치에 참석했는데 손님들이 저에게 노래를 한 곡조 부르라 권하기에 한 곡조 빼어 부른 후 떠났기 때문에 제가 떠나간 이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사옵니다."
군수는 다시 두견새를 비롯하여 까마귀, 할미새를 불러들여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모두 모른 체하며 발뺌을 했다. 훗날 비둘기의 보복이 두려웠던 것이다.
이렇게 여러 증인들을 모두 불러 문초하였으나 사실을 제대로 알 수가 없어 고민했다. 마침내 형리로 있는 따오기의 말을 듣고 풍헌으로 있는 솔개미를 불러 물어보았다.
"그대는 까치의 죽음에 대하여 아는 바가 있는가?"
솔개미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소생은 풍헌의 직책을 맡은 지 불과 몇 개월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나라에 바칠 세금을 거두어들이기에 밤낮으로 분주하였사옵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혹 병아리 마리나 얻으면 소생이 먹지도 않고 관청에 바쳤사옵니다. 그리하여 삼사월 긴긴 봄날에 굶고 지내는 날도 종종 있나이다. 그러므로 까치의 잔치에는 가보지도 못했사오나 소생이 짐작하기로는 두꺼비를 문초하시오면 진상을 알 수 있을지 모르겠사옵니다."
군수는 솔개미 풍헌의 말을 그럴 듯이 여겨 즉시 두꺼비를 잡아들이라 하였다.
그런데 마침 비둘기의 아내가 자기 친동생을 한밤중에 두꺼비에게 보냈다. 그리고 금과 비단을 뇌물로 주면서 남편 비둘기가 벌을 받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달라고 했다. 두꺼비가 뇌물을 받고서는 기뻐서 눈을 껌벅이며 말했다.
"관가에서 사무를 맡아보는 책방 구진과 기생인 앵무새가 군수 영감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들었네. 그러하니 그들에게 금은보화를 듬뿍 주어 벌을 받지 않도록 일을 잘 수습하도록 하게. 그리고 각 청의 두목과 고을의 여러 관리에게도 뇌물을 주게. 그 후에 이리저리하면 암까치 한 마리가 아무리 죽은 남편 까치의 원수를 갚겠다고 이리 날고 저리 뛰어도 별수 없을 터이니 그렇게 하게."비둘기 아내의 친동생은 두꺼비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돌아갔다. 그 후에 두꺼비가 관가에 붙들려왔다. 두꺼비는 배를 불룩불룩하면서 눈을 껌벅거리며 대령했다.
"너를 보니 본디 나이도 많고 점잖은 백성이라, 조금도 거짓말을 하거나 보태지 말고 사실대로 아뢰어라."
"이 늙은 것이 사또님께 감히 남의 원한이 있는 일에 어찌 조금이나 거짓을 아뢸 수 있겠사옵니까. 사실은 이러하였사옵니다. 소생이 까치의 낙성연에 참석하여 본즉, 모든 새들을 다 초대하였으나 오직 비둘기만 초대하지 아니하여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사옵니다. 아무래도 전부터 까치와 비둘기는 서로 원한을 가지고 있었던가 보옵니다. 그런데 마침 비둘기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까마귀가 청하여 잔치의 제일 끝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때 비둘기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임금이신 봉황대군께서 돌아가신 날인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은 안 될 일이다. ' 그러자 까치가 술에 취하여 벌떡 일어나 이렇게 비둘기를 꾸짖었습니다. '남의 잔치에 왔으면 주는 음식이나 고분고분 받아먹고 갈 것이지, 초대하지도 아니한 자리에 와서 묻지도 아니하는 말을 하느냐!'
그리하여 까치와 비둘기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한참 말다툼을 벌이다가 까치가 달려들어 비둘기를 걷어찼사옵니다. 그러나 까치가 비둘기에게 달려들어 걷어찰 적에 높은 가지에서 발을 잘못 디뎌 제 스스로 떨어져 죽었사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비둘기가 발로 차서 떨어져 죽었다고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사옵니다."
군수가 이 말을 곧이듣고 두꺼비를 내보낸 후 책방 구진에게 처리 방안을 물었다.
구진은 비둘기로부터 잘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뇌물을 받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저도 소문을 들어보니 비둘기가 애매한 것이 분명합니다. 성미가 급한 까치가 제 스스로 잘못하여 떨어져 죽고는 비둘기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나이다."
이때 옆에 있던 앵무새가 여쭈었다. "비둘기의 처가 소녀의 사촌이오니 사또님은 처지를 널리 살펴주옵소서."
하고 간청했다. 이에 군수는 즉시 비둘기를 잡아들여 다시 문초했다.
"증인으로 나온 새들이 모두 너의 무죄를 주장하니 과연 사실인가?"
그러자 비둘기가 억울하다는 듯이 울면서 아뢰었다. "소생이 최근에 점을 보았사옵니다. 그런데 그 점괘에 이르기를 운수가 불길하여 관재 구설수에 오를 것이므로 연락하는 곳에는 가지 말라 했다. 하오나 소생은 이를 정녕 믿지 않고서 우연히 지나다가 까치의 잔치에 참석하여 이 지경을 당하였사옵니다. 오는 화는 피하기 어렵다는 말이 옳사옵니다. 저 암까치가 사리판단을 못하고 소생을 의심하고 있사오니 사또나으리의 현명한 판단만을 바랄 뿐이옵니다."
군수는 비둘기의 말을 듣고서는 관아의 관리들에게 일을 알아서 처리하라 지시했다. 그리고 증인으로 불려나왔던 새들이며 비둘기도 모두 죄가 없다고 하여 내보내었다. 그러자 비둘기는 기뻐하며 이렇게 으스대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하인처럼 부릴 수 있다는 말이 옳구나!"
사또의 판결이 이러하자 까치는 원통함이 뼈에 사무쳤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남편의 죽은 몸을 붙들고 통곡하며 말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듯 원통한 죽음을 당하였나! 어찌하여 나이 열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젊은 몸이 남의 손에 죽는단 말인가! 백년이나 살자 하고 평생에 있는 힘을 다 써가며 근근이 집을 짓고 집들인지 낙성연인지 하다가 불에 나비가 끌려 들어가듯 이 모양이 되었으니 참으로 원통해서 못 살겠네."
암까치는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죽은 남편의 얼굴에 자기 볼을 비비며 정신을 잃을 정도로 서럽게 울었다. 암까치는 남편의 원한을 풀어주지 못하고 여러 새들에게 부탁해 남편의 시신을 거두어장례를 치렀다. 암까치는 문상을 온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후에 남편의 영정을 지키며 삼년상을 채울 때까지 하늘에 대고 남편의 원수를 갚게 해달라고 밤낮으로 하늘에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하루는 하늘이 도왔는지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난춘이란 양반이 암행어사로 민정을 살피려고 안악 고을에 내려왔다.
어느 날 할미새가 어사를 만났다. 할미새는 어사를 보자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손님은 이 고을 분이 아닌 것 같은데 이 할미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세상에 이처럼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러시오?""삼 년 전에 까치 부부가 새로 집을 짓고서 집들이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비둘기가 나타나 자기를 초대하지 않았다고 하여 까치를 발길로 차서 수십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증인들이 비둘기로부터 돈을 받고서는 거짓말을 하였기 때문에 벌을 주지 못하였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니, 그게 사실입니까?""어느 분 앞이라고 이 노파가 거짓을 말씀드리겠습니까?""그렇다면 관아에서 다시 조사를 해봐야겠군요."
어사 양반은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자 고을의 관아로 갔다.
어사는 임금의 명을 받고 왔기 때문에 고을 사또인 보라매 군수는 즉시 자리를 내 주었다. 어사는 암까치를 비롯하여 두꺼비 등을 잡아들여 다시 문초를 시작했다.
어사가 먼저 암까치를 보고 물었다. "네 남편이 남의 손에 맞아죽은 것이 분명하다 하는데 어찌하여 살인한 자를 벌주지 못하였는가."
암까치가 통곡하면서 어사에게 아뢰었다. "사실은 비둘기가 연회에 참석하여 술에 많이 취한 후 여차여차하여 소녀의 서방을 죽였사옴은 사실이옵니다. 그러하였으나 증인으로 나온 새들이나 관아의 관리들이 모두 뇌물을 받고 거짓을 아뢰어 살인한 비둘기를 벌주지 않고 있나이다."
암까치는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두꺼비가 비둘기한테 뇌물을 많이 받고 본관사또께 무고하여 아뢴 말이며, 책방과 수청기생 앵무새 또한 뇌물을 받아먹고 본관사또에게 애걸한 일들을 낱낱이 아뢰니 어사가 크게 노하여 비둘기를 결박하여 대령시키고 호령했다.
"이놈아 듣거라! 너는 두꺼비에게 뇌물을 주어 간악한 흉계를 내어 국법을 어겼으니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 또한 두꺼비에게도 엄하게 말했다.
"네놈은 네 개인의 욕심을 채우고자 금과 비단을 뇌물을 받고 거짓을 고하도록 하였으니 너도 죽여 후세에 다시는 이와 같은 짓을 하지 않도록 본보기를 삼으리라!"
두꺼비가 머리를 들지 못하고 황급히 여쭈었다. "밝은 대낮에 어찌 추호도 거짓을 아뢰오리까? 소생은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소소한 돈푼이나 받아먹고 국법을 어겼사오니 죽어 마땅하와 처분만 바랄 뿐이옵니다."
하니 어사는 두꺼비는 일단 감옥에 가두고 비둘기를 다시 문초했다.
"너는 들어라. 법전에 일렀으되,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라 했다. 그런데 너는 한갓 재물이 많은 것만 믿고 하늘의 뜻을 어기고 하늘이 명하는 대로 살기를 바랐으니 얼마나 가소로운 일이냐. 세상에 너 같은 자들만 있다면 법관이라는 자들이 어찌 법을 집행할 수가 있겠느냐. 네 죄로 인하여 죽게 된 것을 원망하지 말라."
하고 당장 때려서 죽게 했다. 그리고 다시 책방 구진과 앵무 기생을 잡아들여 계단 아래 끓어 있게 하고 분부를 내렸다.
"너희는 관가에 매여있는 몸으로서 위로는 국정을 살피고 아래로는 백성을 보살피는 것이 도리거늘 한갓 뇌물을 받아 나라의 정치를 흐리게 하였으니 사형에 처함이 마땅하나 처지를 불쌍히 여겨 귀양을 보내리라."
하고 두꺼비는 곤장 구십 도를 쳐서 아무도 살지 않는 섬으로 귀양을 보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각각 곤장 삼십 도를 때려 내보내었다.
이때 암까치, 동헌에 들어가 어사또에게 아뢰었다. "소녀 16세에 출가하여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이처럼 참혹한 일을 당했습니다. 소녀는 일가친척 하나 없는 몸으로 밤낮으로 통곡하면서 죽은 남편의 뒤를 따르지 못함을 원통히 여기고 있었사옵니다. 하오나 어사또님께옵서 원통함을 풀어 주시니 그 은혜는 저 넓은 바다와 같사옵니다. 어사또님은 만수무강하옵소서."
하고는 비둘기의 간을 꺼내가지고 남편의 산소에 이르러 그 간을 무덤 앞에 놓고 제문을 지어 읽으며 통곡하니 주위의 초목들도 함께 서러워했다.
암까치가 잠시 정신을 잃어버리고 있을 때 죽은 남편 까치가 나타나 말했다.
"그동안 고생이 어떠하였소. 나는 황천에 돌아가 부모를 모시고 잘 있으니 잠시 함께 지내다가 훗날 황천에서 다시 만납시다."
하고 잠시 함께 지냈다. 그 후 암까치가 알을 낳으니 사내아이 하나와 딸아이였다. 암까치는 남매를 귀하게 길러 좋은 혼처 자리를 만나 장가를 들이고 시집을 보내었다. 암까치의 나이가 칠십이 되고 손자 까치들이 번성했다.
어느 날 암까치는 갑자기 하늘로 올라갔다. 후에 암까치의 아들과 딸은 여러 자식들을 낳았다. 이 까치의 자손들은 모두 부모에게 효성하고 남편을 정성으로 받드니 효자와 열녀가 대를 이어 끊어지지 아니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까치전 (네이버고전문학사전, 2004. 2. 25.,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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