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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도 범죄자가 대통령 후보?

淸潭 2024. 6. 2. 17:28

[현장]트럼프 유죄에 “감격” “분노” “투표 안해”…혼돈의 美 대선판

뉴욕=김현수 특파원2024. 6. 2. 14:58
20대 대학생 “우리는 보수 이대남…항소후 판결 바뀔 것”
40대 뉴요커 “지난 대선 때 처럼 기뻐…트럼프 불출마해야”
무당층 시민은 “투표하기 싫다…유죄 후보 불편”
여론조사 “무당 층 49%가 트럼프 사퇴해야”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한 뉴욕 시민이 트럼프 자택 ‘트럼프타워’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 평결을 받은 소식이 실린 신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오전 11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뉴욕 맨해튼 거주지 ‘트럼프 타워’ 위로 방송 헬기가 날아다녔다. 전날 미국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중범죄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받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히자 주변 상황을 취재하러 헬기까지 동원된 것이다. 트럼프타워가 위치한 뉴욕 명품 쇼핑거리 5번 애비뉴는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수 백 명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죄 판결에 대한 지지와 반대를 표시하며 몰려들었다.

현장 생중계 방송 취재진, ‘항복하지 말라’는 깃발을 들고 나선 트럼프 지지자, ‘감옥에 가라’비판하는 시위대가 뒤섞였다. 곳곳에서 말싸움을 벌이거나 방송 취재진에게 “편향된 언론”이라고 욕설을 던지는 등 분노와 기쁨을 표출하는 현장은 전례 없는 ‘중범죄자’ 대선후보가 나온 미 대선 혼란상을 보여줬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 뉴욕 맨해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자택이 있는 ‘트럼프 타워’ 앞에 트럼프 지지자와 반대 시위자 수 백명과 방송사 생중계 취재진이 몰려들고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감옥에 가둬라(Lock him up)’는 사인펜으로 쓴 종이를 들고 나온 뉴욕시민 로버트 존스 씨에게 트럼프 유죄 판결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어제 뉴스를 보고 미국의 사법 시스템이 살아 있음을 느껴서 매우 기쁘고, 감격스러웠다”며 “조지아주와 플로리다주에도 남은 재판이 있지만 우리 뉴욕시에서 뉴요커들이 제대로 평결을 내렸다. 그는 범죄자이고, 11월 대선에 분명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시민인 로버트 존스 씨는 트럼프 유죄 평결 소식을 듣고 “미국 사법 시스템이 살아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옆에서 존스 씨의 발언을 듣고 있던 대학생 제레미 씨(23)가 끼어들었다. 그는 “조지아주에서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겠나. 특검에 불륜과 부패가 있지 않았냐”고 언급했다. 트럼프 선거 전복 혐의를 수사했던 조지아주 특검이 검사장과의 불륜으로 3월에 사임했던 사건을 말한 것이다.

뉴저지주에서 온 트럼프 지지자 제레미 씨는 친구를 만나러 맨해튼에 왔다가 트럼프 실물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트럼프 타워로 왔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라는 그는 “결국 항소법원에서든 대법원에서든 (성추문 입막음 문서조작) 유죄 판결은 뒤집어 질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진실을 알고 있다”며 “우리 20대 남자들은 미국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젊은 세대다. 나라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고, 내 주변 친구들 대부분 트럼프로 돌아섰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졸업생들은 취업도 안되고 학자금 갚느라 고생인데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이용해 학자금을 나라가 갚아주겠다고 젊은 표를 세금으로 사려 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죄 판결을 듣고 바이든이 승리했던 2020년 대선 때처럼 기뻤다는 데이비드 윌시(45) 씨는 “이번 선거는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대선이 될 것”이라며 “중범죄자 미국 대통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출마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구호인 ‘미국을 위대하게(MAGA)’ 모자를 판매하는 지지자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11시 20분 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타워 안 로비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는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재판이 “사기(scam)”이고 “조작된(rigged)” 것이라며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했다. 밖에서 거대한 앰프로 트럼프의 연설을 듣던 극렬 지지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뉴욕시의 골칫거리가 된 불법 이민 문제를 거론하며 “불법 이민자들이 럭셔리 호텔에서 잘 때 우리 참전군인들은 노숙자로 길거리에서 자고 있다. 내가 이를 바로잡아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발언에도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반면 반(反) 트럼프 시위대는 노란색 바탕에 선명한 검정색 글씨로 ‘유죄(guilty)’ 표시로 대선에 출마하지 말라고 외쳤다. 트럼프 유죄 판결이 바이든과 트럼프 각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낸 것이다. 이날 트럼프 기자회견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도 직접 나서 “어제 뉴욕시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몇마디 하고 싶다”며 “250년을 이어 온 미국 사법 시스템은 존중 돼야 한다. 평결이 마음에 안 든다며 ‘조작됐다’고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경박한 일”이라고 비판에 나섰다.

31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원 앞에서 트럼프 반대 시위자들이 ‘유죄’, ‘조심해요 여기 중범죄자가 있어요’, ‘틱톡, (당신의) 시간은 끝났다’는 푯말을 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다만 트럼프 타워를 찾아 올만큼 적극적인 지지자나 극렬한 반대 시위자 외에 지나가다 온 미국 관광객들은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출신이라는 관광객 애비 씨는 “아직 누구를 뽑을지 결정은 못했다. 대선후보가 범죄자라면 솔직히 불편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유죄 평결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무당층과 공화당 지지자 일부에서 트럼프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이 시사됐다. 모닝컨설트가 유죄평결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실시해 1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무당층 응답자의 49%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유죄 평결이 나온 30일과 다음날인 31일 실시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서는 공화당 지지 유권자의 10%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응답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