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노인들이 요양원 대신 선택한 것
취리히·김진경 입력 2022. 08. 06. 08:22 댓글 297개[김진경의 평범한 이웃, 유럽] 스위스 노인들은 삶의 마지막을 돌봄 시설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변화가 생겼다. 방문 돌봄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었다. 노령 사회의 돌봄 과제를 해결하는 중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스페인에 사는 시어머니가 몇 달 전 스위스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가족이 다 함께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내 팔을 붙들고 걷던 시어머니가 일부러 속도를 늦추는 게 느껴졌다. 당신 아들과 손주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옆에 나만 남게 되자 시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내가 너한테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었어. 네 남편한테 말해두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해서 너한테도 약속을 받아내려고 한다.” 심각한 분위기였다.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나는 절대 요양원은 안 간다. 죽더라도 내 집에서 죽고 싶어. 반(半)송장들이 온종일 무표정한 얼굴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곳에 들어가기는 죽어도 싫다.” 시어머니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며느리에게 본인 뜻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 ‘반송장’ 흉내까지 냈다.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입을 살짝 벌리며.
“어머니가 싫다는데 누가 요양원에 강제로 집어넣을 일 없으니 걱정 마세요.” 내 말에도 시어머니의 불안한 기색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집을 방문해 시어머니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사회복지사가 ‘곧 요양원에 들어가야 한다’고 이미 여러 번 말했다고(시어머니 표현에 따르면 강요했다고) 한다. 남편은 외아들이다. 시아버지는 몇 년 전 돌아가셨다. 혼자 사는 고령의 여성에게 사회복지사의 말이 압박으로 느껴질 법도 하다. 시어머니가 몸 이곳저곳이 성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알츠하이머 초기라는 진단도 받았다. 한 달에 두세 번씩은 병원 갈 일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요양원에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는 못 된다. 시어머니는 버거워하면서도 여전히 혼자 요리와 청소를 하고, 주말이면 노인학교에 간다. 키우는 강아지와 산책도 한다. 요양원에 가면 노인학교와 강아지를 포기해야 한다. 입 짧은 시어머니에게 남이 해주는 음식은 달가운 게 못 된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사적인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다. 내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나만의 시공간을 지배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 생각하니 끔찍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떠나, 인간적으로 그의 뜻을 지지해주고 싶었다. 나는 시어머니 손을 잡고 말했다. 설령 당신 아들이 당신을 요양원에 보내려고 해도 내가 막을 테니 걱정 말라고. 다른 돌봄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고.
예전보다 덜하다고는 하나 여전히 한국은 자녀가 부모의 노년을 책임지는 문화가 강하다. 그에 비해 유럽 노인들은 삶의 마지막 시기를 돌봄 시설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시어머니가 사는 스페인이나 내가 사는 스위스나 마찬가지다. 요양원에서의 삶에 만족하는 노인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요양원행을 택한다.
아무리 서비스가 좋은 곳이라 해도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공동생활을 하는 것을 즐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요양원 비용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가진 재산을 요양원 비용으로 다 쓰고 떠나는 경우가 흔하다. 스위스에서는 요양원 입소자가 사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2년6개월 정도다. 평생 일군 재산을 생의 마지막 몇 해에 돌봄 비용으로 지불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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