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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일은

淸潭 2022. 2. 19. 20:09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일은

         

대장부의 이름은 마치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

 

사관이 책에 기록해두고 넓은 땅 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구차하게도 원숭이나 너구리가 사는 수풀속 돌에 이름을 새겨 썩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아득히 날아가 버린 새의 그림자만도 못한 것이니,

 

후세 사람이 과연 무슨 새였는지 어찌 알겠는가?

 

大丈夫名字 當如靑天白日

太史書諸冊 廣土銘諸口

區區入石於林莽之間 狸之居 求欲不朽

邈不如飛鳥之影

後世果烏知何如鳥耶

 

- 조식(曺植, 1501-1572), 『남명집(南冥集)』 권2, 「유두류록(遊頭流錄)

 

남명 조식은 1558 4 10일부터 26일까지 지리산 청학동을 유람하였다. 그가 찾아간 청학동은 현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불일폭포 일대를 일컫는다. 4 19, 아침 일찍 청학동으로 오르던 남명 일행은 큰 바위에 새겨진이언경(李彦憬)홍연(洪淵)’이라는 이름을 보았다. 호랑이도 나온다는 이 험하고 깊숙한 골짜기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후세에 전하려 한 것을 보고, 남명은 그때의 불편한 심기를 위와 같이 표출하였다. 실질이 아닌 허명(虛名)을 전하려는 속인들의 헛된 욕망을 냉철하게 꼬집은 것이다.

 

   현실인식이 투철했던 남명은 일생 출사하지 않고 퇴처(退處)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결코 현실을 잊지 않고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였으며, 정치의 폐단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때로는 목숨을 건 과감한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남명에게 숲속 바위에 이름을 새겨 후세에 남기려 한 이런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로 다가왔을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러한 촌철살인의 비판은 지역의 후인에게 전승되어, 지금도 커다란 울림이 되고 있다.

 

   근년에 온 세상이 듣도 보도 못한 대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불안한 상태로 삶을 견뎌내고 있다. 마치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부평초를 연상케 한다. 20-30대 젊은 세대가 더욱 흔들리고 있다. 준엄한 시선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자기 안의 확신을 다진큰 어른이 그리운 시절이다.

 

글쓴이강정화

경상국립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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