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명법문 명강의

양(梁) 지공화상(誌公和尙) 12시송(時頌)

淸潭 2018. 3. 25. 10:30

양(梁) 지공화상(誌公和尙) 12시송(時頌)

 


1. 동틀녘(오전 3-5시; 인시(寅時))

 

미친듯 날뛰는 속에 도인(道人)의 몸이 있다.

가난하고 고생스럽게 무수한 세월을 살아 오면서,
늘 여의주(如意珠)를 들고 있으면서도 믿지 않는구나.
만약 사물을 붙잡고 헤매는 길로 들어서는 일이,
가는 털끝만큼만 있어도 바로 티끌세계이다.
옛날의 모습 없음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선지식을 찾으니 참된 일이 아니다.

 

平旦寅 : 狂機內有道人身.
窮苦已經無量劫, 不信常擎如意珍. 若捉物入迷津, 但有纖豪卽是塵. 不住舊時無相貌, 外求知識也非眞.

 

2. 해가 뜸(오전 5-7시; 묘시(卯時))

 

쓰는 곳에서 반드시 좋은 솜씨를 발휘할 필요는 없다.

설사 신령스런 빛이 있고 없음을 비추더라도,
뜻을 일으키면 바로 마구니와 만나 일이 구부러져 버린다.
만약 공덕(功德)을 베풀어서 끝내 그만두지 않는다 하더라도,
밤낮으로 저 남이니 나니 하는 분별에 꺽여 버린다.
분별할 필요 없이 이대로 따르면,
언제 마음에 번뇌 생길 때가 있겠는가?

 

日出卯 : 用處不須生善巧.
縱使神光照有無, 起意便遭魔事撓. 若施功終不了, 日夜被他人我拗. 不用安排只麽從, 何曾心地生煩惱.

 

3. 밥 먹을 때(오전 7-9시; 진시(辰時))

 

무명(無明)의 어리석음이 본래 석가의 몸이다.

앉고 눕는 것이 원래 도(道)임을 알지 못하니,
이렇게 허둥지둥 매운 고통을 받는구나.
소리와 색깔 경계를 보고 가깝고 먼 것을 찾지만,
그런 것들은 사람을 더럽히는 바깥일일 뿐이다.
만약 마음을 가지고 불도(佛道)를 찾으려 한다면,
허공(虛空)에게 물어 보아야 비로소 티끌에서 벗어나리라.

 

食時辰 : 無明本是釋迦身.
坐臥不知元是道, 只麽忙忙受苦辛. 認聲色覓疏親, 只是他家染汚人. 若擬將心求佛道, 問取虛空始出塵.

 

4. 정오에 가까워짐(오전 9-11시; 사시(巳時))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은 가르쳐도 알지 못한다.

비록 조사(祖師)의 말을 두루 알아차렸다고 하여도,
마음에 그 모든 뜻을 넣어 두지 말아라.
현묘함을 지킬 뿐 문자는 두지 말아야 하니,
이전과 같다고 알면 도리어 옳지 않다.
잠깐이라도 스스로 긍정하면 다시는 쫓아가 찾지 말지니,
영원토록 마구니의 삿된 경계를 만나지 않으리라.

 

禺中巳 : 未了之人敎不至.
假饒通達祖師言, 莫向心頭安了義. 只守玄沒文字, 認著依前還不是. 暫時自肯不追尋, 曠劫不遭魔境使.

 

5. 해가 남쪽 하늘에 높이 떠 있음(오전 11- 오후 1시; 오시(午時))

 

사대색신(四大色身) 속에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 있다.

아지랑이 헛꽃을 기꺼이 내버리지 않고,
뜻을 내어 수행(修行)하면 더욱 고달프고 괴롭다.
일찍이 어리석은 적 없으니 깨달음을 찾지 말고,
아침 해가 몇 번이나 저녁이 되건 내버려 두어라.
모습 있는 몸 가운데 모습 없는 몸 있고,
밝음 없는 길 위에 남이 없는 길 있다.

 

日南午 : 四大身中無價寶.
陽焰空華不肯抛, 作意修行轉辛苦. 不曾迷莫求悟, 任爾朝陽幾迴暮. 有相身中無相身, 無明路上無生路.

 

6. 해가 기울어짐(오후 1시- 오후 3시; 미시(未時))

 

마음에 어찌 여러 가지 견해를 세워 둔 적이 있으랴?

저 바깥의 문자(文字)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으니,
분명한 의미(意味)를 찾느라고 공부하지 말라.
마음대로 왔다갔다 하며 꺼릴 것이 없으니,
언제나 사람 사이에 있으면서도 세속에 머물지는 않는다.
이리저리 사용함에 소리와 색깔 속을 벗어나지 않으니,
영원토록 잠시라도 내버린 적이 있었던가?

 

日昳未 : 心地何曾安了義.
他家文??沒親疏, 莫起工夫求的意. 任縱橫絶忌諱, 長在人間不居世. 運用不離聲色中, 歷劫何曾暫抛棄.

 

7. 해저물녘(오후 3시- 오후 5시; 신시(申時))

 

도(道)를 배우려면 먼저 가난을 싫어하지 말아야 한다.

모습 있는 것은 본래 잠시 모여 있는 것이니,
모습 없는 것을 어떻게 사용하여 진리를 세우랴?
깨끗하게 되려 하면 도리어 정신(精神)을 피로케 하니,
어리석음을 인정하여 이웃이라 하지 말라.
말 끝에 문득 찾기를 버리고 머물 곳이 없으면,
그 즉시 출가한 사람이라 부르리라.

 

晡時申 : 學道先須不厭貧.
有相本來權積聚, 無形何用要安眞. 作淨潔卻勞神, 莫認愚癡作近鄰. 言下不求無處所, 暫時喚作出家人.

 

8. 해질녘(오후 5시- 오후 7시; 유시(酉時))

 

허망한 말은 결국 오래 가지 못한다.

선(禪)의 기쁨이라는 진귀한 음식도 오히려 탐하지 않는데,
누가 또 어리석음이라는 술을 마시겠는가?
버려야 할 것도 없고 지킬 물건도 없으니,
두루 막힘 없이 거닐며 있다고 여긴 적이 없네.
비록 많이 보고 들어 고금(古今)에 통달한다 하여도,
역시 어리석게 날뛰며 밖으로 달려가는 사람이다.

 

日入酉 : 虛幻聲音終不久.
禪悅珍羞尙不餮, 誰能更飮無明酒. 沒可抛無物守, 蕩蕩逍遙不曾有. 縱爾多聞達古今, 也是癡狂外邊走.

 

9. 해가 져 어둑어둑할 무렵(오후 7시- 오후 9시; 술시(戌時))

 

미친놈이 공로자(功勞者)로 발탁되니 어두운 방으로 들어간다.

가령 마음에 통달하여 무수한 세월이 지나더라도,
영원토록 오늘과 다른 적이 있었던가?
분별로 헤아려 보려 하면 도리어 와글와글 시끄러워서,
더욱 마음을 깜깜하고 어둡게 만든다.
밤낮으로 빛을 내어 있고 없음을 비추어 보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도리어 바라밀(波羅蜜)이라 부르네.

 

黃昏戌 : 狂子興功投暗室.
假使心通無量時, 歷劫何曾異今日. 擬商量卻啾喞, 轉使心頭黑如漆. 晝夜舒光照有無, 癡人喚作波羅蜜.

 

10. 통행을 금하는 무렵(오후 9시- 오후 11시; 해시(亥時))

 

용맹하게 정진(精進)하는 것이 게으름 피우는 것이다.

털끝만큼이라도 배우고 닦는다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모습 없는 빛 속에서 늘 자재(自在)하다.
석가를 뛰어넘고 역대 조사를 벗어났으니,
마음에 작은 티끌이라도 있으면 도리어 막혀 버린다.
텅 비고 일이 없으면 문득 맑고 한가로우니,
그것이 바로 통달한 사람이 본래 좋아하는 것이다.

 

人定亥 : 勇猛精進成懈怠.
不起纖豪修學心, 無相光中常自在. 超釋迦越祖代, 心有微塵還窒閡. 廓然無事頓淸閑, 他家自有通人愛.

 

11. 한밤중(오후 11시- 오전 1시; 자시(子時))

 

마음이 생멸 없음에 머물면 곧 생멸이 있다.

나고 죽는 일이 어찌 있고 없음에 속하랴?
쓸 때에는 바로 쓸 뿐 문자(文字)를 두지 않는다.
조사(祖師)의 말도 바깥의 일이니,
알겠다 하는 때에는 바로 옳지 않게 된다.
뜻을 세워서 찾으면 진실은 간곳이 없고,
생사(生死)의 마구니가 찾아와 마음대로 시험해 볼 것이다.

 

夜半子 : 心住無生卽生死.
生死何曾屬有無, 用時便用沒文字. 祖師言外邊事, 識取起時還不是. 作意搜求實沒蹤, 生死魔來任相試.

 

12. 새벽닭이 울 무렵(오전 1시- 오전 3시; 축시(丑時))

 

한 조각 둥근 구슬이 밝은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안팎으로 이리저리 찾아 보아도 도무지 없더니,
경계 위에서 움직이고 행함에 하나되어 분명히 있구나.
머리도 보이지 않고 손도 없으나,
세계가 부서질 때에도 그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이 한 마디 말을 들을 때,
오직 이 순간 누가 입을 움직이는가?

 

雞鳴丑 : 一顆圓珠明已久.
內外接尋覓總無, 境上施爲渾大有. 不見頭又無手, 世界壞時渠不朽. 未了之人聽一言, 只遮如今誰動口.

 

『경덕전등록』 제29권에 실려 있음
- 無事人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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