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쿠데타라도 났나
입력 : 2017.11.21 03:17 | 수정 : 2017.11.21 07:58
안보·정보 수장 잇단 구속
대외 정보 신뢰도 추락하고 안보 상황에 악영향 끼쳐
뒤를 캐고 과거 들쑤시는 문화혁명 같은 숙청 멈추고 앞을 보며 미래 준비해야
최고 국방기관의 장(長)이었던 사람이 구속되는 사태는
마치 이 나라에 쿠데타라도 일어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언필칭 법치국가에선 누구건 죄가 있으면 잡혀가고,
잘못이 있으면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대통령도 탄핵되고 교도소에 갇히는
나라에서 그깟 전직 국정원장이나 국방장관의 구속이 대수이겠는가.
하지만 대통령의 잘못은 이른바 지휘 책임이지만 그 부하들의 '잘못'은 명령 복종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대통령의 탄핵은 헌법적이고 정치적이고 그래서 민주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부하들의 구속은 보복적이고 힘자랑이고 그래서 치졸하기까지 하다.
검찰이 이들을 구속하면서 내건 사유를 보면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의 돈(특수활동비)을 청와대에 줬고,
군(軍)의 사이버 기능을 정치 댓글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돈을 먹었거나 횡령을 했거나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은 없다.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는 법정에서 판가름나겠지만 그들은 과거 전임들이 오랫동안
관행처럼 해온 대로 한 것뿐이고, 댓글 문제도 전체 사이버 활동의 0.5%에도 미치지 않는 수준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 구속-수사 놀음을 '적폐 청산'의 쇼로 포장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이것이 대외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했다.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까지는 '대한민국이 현직 대통령도 끌어내릴 수 있는 나라구나'하는
외경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안보·정보 수장의 구속에 이르러서는
'대한민국이 저렇게 엉망이고 개판이었던 나라였나'라는 멸시와 조롱을 불러올 수 있다.
'저런 나라를 어떻게 믿고 함께 일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군사를 의논할 수 있겠나'하는 것이 주변국,
특히 동맹·우호 국가들의 반응일 수 있다. 전 국정원장 이종찬씨는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정보 신뢰도가 떨어질까 걱정된다"고 했다.
특히 북한의 처지에서는 회심(會心)의 미소를 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볼 때 한국의 정보 기능과 국방 능력은 편협한 정치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고
저래 가지고는 대외적 신뢰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에 크게 고무됐을 것이다.
자신들의 정보 유지와 군사 보안에 국력을 걸다시피 해온 북한 지도층으로서는
대한민국의 정보와 군사 보안이 훼손되는 듯한
이번 사건에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특히 그들이 북한의 '공적(公敵)'처럼 다뤄왔던
김관진 전 국방장관의 구속은 '손 안 대고 코 푼'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구속-수사는 우리가 처한 안보 상황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전력투구하는 시점에 있다.
전쟁 위기로 논쟁하고 있는 미국, 안보 지상주의로 가는 일본,
한국을 발아래 꿇리려는 중국 등에 둘러싸여
나라의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일의 선후(先後)를 따지고 경중(輕重)을 가려야 하며 완급을 조절해야 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런 마당에 사리사욕의 죄(罪)도 아니고
기관의 잘못된 관행과 사소한 실책을 가지고 정보·안보 수장의 인신을 구속하는 것은
중국의 '문화혁명'식 숙청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그 과잉 액션을 두고
시중에서는 그들이 타깃이 아니라 그 위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죄를 덧씌우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복수(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를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효성그룹 재수사도 MB를 노린 것이란 말까지 있다.
이런 말들이 사실이라면 전임 정권 잡는 것이
그리도 시급한 일인가? 그만하면 박·이 두 전 대통령은 이미 잡을 만큼 잡은 것 아닌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을 처벌하려면 검찰로부터
매년 100여억원의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법무부도
같이 처벌해야 한다"고 나왔다.
문 대통령은 전 정보·군사 책임자들의 수사를 접고
제도적 개선으로 '적폐 청산'의 방향을 바꾸기 바란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불구속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누구의 '뒤'를 캐고 '과거'를 들쑤시는 일은
그만하고 앞을 바라보며 미래를 준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적폐라는 덫을 치우려다
요즘 상황을 보면 문 대통령이 충분히 통제권을 쥐고 국정을 운영하는지에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권력의 핵심부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문 대통령으로서 지금과 같은 구속-수사의 일례(日例) 행사가 과연
이 국가의 장래에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모를 리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0/2017112003117.html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0/20171120031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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