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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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어떤 여성이 내 집에 전화를 걸고, 자기 자신은 이화대학 출신인데 “김활란 박사를 친일파로 모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하면서 나더러 방송에 나가서 그런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부탁을 내게 하는 까닭은 내가 말을 잘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내가 나서서 이러쿵저러쿵 할 일은 아닙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고 어지럽다고 하여도 책임의 소재는 밝혀야 하고 일의 순서는 옳게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엉뚱한 사람이 나서서 “김활란 박사는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외친다고 해서 김활란 박사의 누명이 벗겨지지는 않습니다. 역사가들이 다루어야 할 문제들을 오늘의 정권을 담당한 자들이 나서서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은 역사 이해에 큰 차질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데 ‘적폐 청산’을 들고 나오는 현 정권이나 그 정권을 둘러싼 ‘특권층’이 교체되기 전에는 ‘친일파 논쟁’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 정권은 헌법이 명시한 대로 하자면 5년은 갑니다. 역사가들의 할 일을 가로채 가지고 과거를 파헤치고 멋대로 평가하는 악습은 한참 더 계속될 것이 뻔합니다. 그러나 김활란이 일제의 핍박 속에서 피와 땀으로 지켜낸 이화대학의 총장과 교직원, 학생과 졸업생이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기만 하면 이화대학은 앞으로도 오늘의 부끄러운 생존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제시대에 창씨개명(創氏改名)하여 아마기(天城)라는 성(姓)을 가졌다고 해서 김활란을 친일파로 몬다면 그 시대를 살며 일본의 구박을 받고 강요에 못 이겨 성을 바꾸고 일본어를 사용한 조선인의 90퍼센트는 오늘 무덤 속에서 뒤채며 잠들지 못할 것입니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이 조국의 시련 속에서 통분을 금치 못했던 유능하고 양심적인 수많은 인사들을 ‘일본인들의 종노릇’을 했다고 매도하는 것이니 일본인들은 어깨춤을 출 것입니다. 내가 아는 한 가지 사실만은 이 자리에서 밝히겠습니다. 김활란 박사는 친일파·민족반역자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애국자였습니다. 잘 모르면 가만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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