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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역사가 판단하게 하라.

淸潭 2017. 6. 19. 09:56
백남기 농민 쓰러진 이날, ‘물대포 추방의 날’ 제정

시민사회단체 백남기 농민 쓰러진 지 1년 “물대포 추방해야” “집회와 시위 자유도 보장해야” 국회에 청원


◇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 현장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끝내 숨진 백남기 농민을 기리는 의미로 시민사회단체가 이날을 ‘물대포 추방의 날’로 제정했다.<△ 사진:>백남기투쟁본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물대포 사용 금지를 촉구하는 행위극을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14일 오후 백남기투쟁본부와 공권력감시대응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서울 종로구 보신각공원 백남기 농민 추모의 벽 앞에서 ‘물대포 공격 1년, 물대포 추방의 날 선포대회'를 열었다. 백씨는 1년 전 이날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의 직사 살수에 맞고 쓰러져 중태에 빠졌다가 지난 9월25일 숨졌다.


◇ 이들 단체는 백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 사인은 물대포이며, 이는 결국 국가 폭력에 의한 살인이 명백한데도 국가는 지금까지 사죄나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사진:> 백남기투쟁본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물대포 사용 금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르메이에르 빌딩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이어 “1987년 고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것을 계기로 6월18일이 ‘최루탄 추방의 날'로 지정되고 최루탄은 이 땅에서 추방됐다”며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같은 불행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오늘을 ‘물대포 추방의 날'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백남기투쟁본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물대포 사용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 이들은 백씨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까지 행진해 선언문을 읽고, 풍선으로 만든 모형 물대포를 부수는 퍼포먼스로 물대포 추방 선포대회를 마무리 했다. 이날 국회에 물대포 사용을 금지하고 집회행진장소를 제한하는 법 조항 개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청원서도 제출했다.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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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11월14일의 사람,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1947~2016) 농민

페이스북트위터공유스크랩프린트크게 작게1년 전 그날, 백만촛불의 씨앗이…1968년 중앙대 입학. 1971년 위수령에 항의하다 첫 번째 제적. 유신에 맞서다 1975년에 두 번째 제적. 한동안 명동성당에 피신을 했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 1980년에 늦깎이 대학생으로 복교. 조용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서울의 봄’ 때 중앙대 총학생회를 재건하여 활동하다 세 번째 제적. 정치계로 빠질 수 있었지만 역시 그러지 않았다. 청년 백남기는 농민의 삶을 택한다.<△ 사진:>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보성의 부춘마을에서는 그를 ‘착실한 농사꾼’으로 기억한다. 멧돼지가 올까봐 밤에 남의 밭을 지켜주던 다정한 이웃. 사라져가는 우리밀 종자를 되살리는 사업도 했다. 가톨릭농민회 활동도 열심이었다. 1986년에 농민회 사람들이 시위를 하다 체포되자, 함께 잡혀가겠다며 자기 발로 닭장차에 오른 일화도 있다. 농민 백남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 사진:>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 2015년 11월14일, 서울에서 민중총궐기에 참여한다. 농민들의 주장은 과격한 것도 아니었다. 박근혜가 공약한 대로 쌀 수맷값을 지키라는 요구였는데. 경찰은 물대포를 직사했고 백남기 농민은 쓰러졌다. 생전에 신문을 꼼꼼히 읽으셨다고. 영전에 바치는 마음으로 당신 모습을 빚었으니, 즐겁게 받아주시길.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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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가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 바친 슬픈 ‘농민가’

6일 오후 광주 금남로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열려 유족 대표해 백민주화씨 인사…시민 5천여 명 몰려 눈시울


6일 오후 광주 금남로에서 고 백남기 농민의 운구차를 따라 시민들이 만장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고 백남기(69) 농민은 펼침막 속에서 징을 치며 미소짓고 있었다. 네델란드에서 온 손주 지오(4)가 연단에 섰다. 백씨의 막내 딸 민주화(30)씨가 아들 지오의 손을 잡고 <농민가>를 불렀다. 평생 농민으로 살았던 백씨가 좋아했던 노래이다.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수줍게 노래하는 손주의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까?



◇ “317일동안 마음껏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6일 오후 12시50분 광주시 동구 금남로에서 시민 5천여 명이 참석해 열린 ‘고 백남기 농민의 노제’ 행사에서 백씨의 딸 민주화씨는 그동안의 소회를 담담하게 밝혔다. 민주화씨는 “317일동안 한번도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지금껏 마음껏 슬퍼할 수도 없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진:>6일 광주 금남로 고 백남기 농민의 노제 행사에서 백씨의 딸 민주화(30)씨와 손주 지오(4)군이 농민가를 부르고 있다.

▷*…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와중에도 불안에 떨어야 했고, 무서워해야 했고, 분노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 곁에 함께 해주신 많은 국민들 덕분에 그 시간을 다 이겨냈고, 부검이라는 그 끔찍한 현실에서 아버지를 구해냈고, 다행히 이렇게 아버지께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백씨의 아내 박경숙(63)씨는 딸이 건네는 유족인사를 듣다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고인의 주검은 5일 밤 서울에서 고향인 전남 보성의 한 장례식장으로 옮겨져 안치됐다가, 이날 오전 웅치면 부춘마을 생가에서 노제를 지낸 뒤 광주 금남로에 운구됐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고인은 5·18민주화운동 직전인 80년 5월17일 계엄을 확대한 신군부에 의해 기숙사에서 체포돼 영어의 몸이 돼 고초를 겪었다.

광주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는 백씨의 5·18관련 보상자 인정 여부를 심의하고 있다.이날 고인의 광주 금남로 노제는 문경식 고 백남기농민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상임위원장의 인사로 시작됐다. 문 위원장은 “고인을 살인 물대포로 쓰러뜨린 뒤 수사도, 단 한마디의 사과도, 책임자 처벌도 거부한 채 사인 조작용 부검을 강행하려던 살인정권은 이제 국민의 총궐기로 붕괴되고 있다”며 “이제 살아있는 저희들이 어르신이 주신 유산을 계승해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민주주의정의를 회복하자”고 호소했다. 김명섭 신부(천주교 광주대교구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는 “생명 평화의 삶을 살아온 고인은 죽지 않고 부활해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 고인의 죽음에 대해 침묵하는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국제적 연대의 목소리도 나왔다. 히다얏 그린필드 국제식품연맹 아태지역위원회 사무총장은 “고인의 죽음에 대해 이 정부가 침묵하는 것은 우리의 투쟁을 침묵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한 뒤 “127개국 노동자가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25개국 언어로 고인의 죽음과 희생과 타살에 대해 알리고 공유했다”고 밝혔다.<△ 사진:> 6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의 노제에서 유족들이 운구차를 따라 행진하고 있다.

▷*…이날 바리톤 정찬경씨가 생전 고인이 좋아했던 노래 <직녀에게>를 불렀다. 고인의 부활을 기원하는 씻김굿 공연도 올려졌다. 광주전남교육문화원 솟터 회원들과 놀이패 신명의 오숙현씨 등 문화예술인들이 고인의 넋을 모셔 고를 풀고, 길을 닦아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이들은 고인이 천주교신자라는 점을 고려해 ‘극락세계 가시라’는 사설을 ‘천주님전 모시세’라고 바꿔 불렀다.



금남로 운구 행진이 시작되기 전 참석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유족들은 ‘살인정권 퇴진하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운구차의 뒤에 섰다. 광주지역 노래패들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과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의 노래를 고인에게 바쳤다.

▷*…금남로에 운집한 시민들도 노래를 함께 부르고, 고인의 장례차에 손을 얹고 눈을 지긋이 감은 채 묵념을 올리며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양재석(59)씨는 “슬퍼서 노제에 참석했다. 이제 편안히 잘 쉬시기를 바란다.우리들이 고인의 뜻을 꼭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한 시민의 눈물.

저작권 있음| 상 하부 절단 사용 불허. 작성: '한국 네티즌본부'



◇ “백남기가 쓰러진 아스팔트로 가자/핏자국 선명한 자리에서 신발끈 동여매자…백남기여 부활하라/산자여 함께 가자~” 이날 오후 1시24분 운구 행렬이 시작됐다.

▷*…연단에선 들꽃처럼 살아 온 백남기 농민의 삶을 추모하는 조시가 울려 퍼졌다. 은은하게 미소짓고 있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그린 대형 영정이 앞섰고, ‘생명 평화 일꾼 백남기’라고 적힌 펼침막을 관을 삼아 든 상여꾼들이 뒤를 섰다.

‘특검을 실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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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구차를 따라 지친 걸음을 뗀 유족들 뒤로 ‘국가폭력 끝장내자’, ‘특검을 실시하라’고 적힌 100여 개의 만장을 든 시민들이 긴 줄을 섰다. <△ 사진:> 6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의 노제가 끝난 뒤 운구행렬이 중앙로를 지나고 있다.

▷*… 운구행렬은 금남로~대인시장~계림오거리~광주고 앞을 거쳐 북구 서방시장까지 이어졌다. 고인의 주검은 화장된 뒤, 이날 오후 5시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인 5·18 구 묘역에 안장된다.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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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 5·18 민주열사 묘역에 잠들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숨진 농민 백남기씨가 광주 5·18 옛묘역에 잠들었다. 6일 오후 하관의례 열고 5·18 옛묘지에 안장 유족 시민,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며 눈시울 붉혀


◇ 생명과 평화의 일꾼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6일 오후 5시 광주시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천주교 의례로 하관식을 열고 유해를 안장했다.하관의례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이영선 신부의 집전으로 진행됐다..<△ 사진:> 백남기씨의 유족들이 6일 광주 5·18 옛묘지에 만들어진 고인의 묘비를 살피고 있다.

▷*…정현찬 가톨릭농민회장은 조사에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백남기님을 숨지게 만든 박근혜 정권을 반드시 쫓아내고, 폭력과 불의가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했다.백씨의 친구인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우리밀밭 걱정도, 나락 논 걱정도 이제 다 내려놓고 편히 쉬시라”고 추모했다.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 옛묘지에 조성된 고인의 봉분

▷*…추모객들은 어둠이 깃든 뒤에야 백씨의 봉분이 만들어졌는데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국화를 바치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장례위원회는 백씨의 묘비 뒤쪽에 “평생을 학생운동 농민운동 우리밀살리기운동으로 활화산처럼 살다가 희생된 백남기 선생 여기에 잠들다”라는 글귀를 새겼다.



◇ 고인의 유족과 지인들은 납골함을 모신 뒤 성수를 뿌리고 붉은 흙을 덮으며 눈시울을 붉혔다.추모객 500여명은 ‘부활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합창하며 숙연하게 안장의례를 지켜봤다<△ 사진:> 백씨의 자녀인 민주화·도라지·두산씨가 조성된 묘비를 쓰다듬으며 이별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앞서 전남 보성역과 광주 금남로에서는 백씨의 들꽃처럼 향기로운 삶을 기리는 노제와 운구행진이 열렸다.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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