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김삿갓 대표시

淸潭 2017. 5. 29. 11:03

김삿갓 대표시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논정가산충절사 탄김익순죄통우천)

정가산(가산군수 鄭蓍)의 충절한 죽음을 칭송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통함을 탄한다.

* 김삿갓이 22세때 영월 관헌에서 실시한 백일장에서 급제한 科題

曰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將軍桃李隴西落 烈士功名圖末高

왈이세신김익순 정공불과경대부 장군도이농서락 열사공명도말고

대대로 국은을 입어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은 하찮은 벼슬로도 충사하였다.

이농은(한나라) 흉노에게 항복해 두고두고 욕을 먹지만 열사공신의 기린각에는 공과 이름이 높기도 하더라.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唆 宣川自古大將邑 此諸嘉山先守義

시인도차역강개 무검비가추수사 선천자고대장읍 차제가산선수의

이일을 생각할 때 시인의 가슴은 터질듯 떨려 가을 못가에 앉아 칼 매만지며 슬픈 노래를 읊는다.

선천은 자고로 대장이 지키던 읍이라 가산에 비하면 더 의를 지켜야 할곳인데

淸朝共作一王臣 死地寧爲二心子 升平日月歲辛未 風雨西關何變有

청조공작일왕신 사지영위이심자 승평일월세신미 풍우서관하변유

청명한 조정에 한 임금 밑의 신하였건만 죽는 마당에 어찌 두려움을 품었느냐?

태평세월 신미년에 반란이 서관에서 일어남은 웬일일까?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葛亮 同朝舊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士

존주숙비노중련 보한인다제갈량 동조구신정충신 저장풍진입절사

주나라에 변이 일어남에 노중연같은 충신이 많았고 망해가는 한의 부흥에는 제갈량같은 충신이 많았는데

이 나라에도 정가산같은 충신이 많아 맨주먹으로 싸우다가 충사했으니

嘉陵老吏揚名旌 生色秋天白日下 魂歸南畝伴岳飛 骨埋西山傍伯夷

가릉노리양명정 생색추천백일하 혼귀남무반악비 골매서산방백이

가산에서 쓰러진 노리가 구국의 깃발을 드높여 추천 백일하에 그 빛을 떨쳤도다.

그 혼은 남쪽들에 묻혀도 그 절개는 악비에 비할 것이요. 뼈는 서산에 묻혀도 기개는 백이에 비할 수 있으리오.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祿臣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서래소식개연다 문시수가식녹신 가성장동갑족김 명자장안항열순

서쪽에서(선천) 항복했다는 소식 있었으니 바로 국록을 도식한 불충한 신하가 아닌가?

너의 가문은 이름 높은 안동김씨요. 이름은 장안에서 세도 있는 순자 항렬이고 보면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가문여허성은중 백만병전의불하 청천강수세병파 철옹산수괘궁지

가문이 이처럼 성은이 두터워서 백만 병력이 온다 해도 어찌 그 의

를 저버릴 수 있겠느냐? 하물며 청천강물에 고이 씻은 병마와 철옹산같은 활과 칼을 가지고도

吾王庭下進退膝 背向西城凶賊脆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大王

오왕정하진퇴슬 배향서성흉적취 혼비막향구천거 지하유존선대왕

임금 앞에서나 꿇던 무릎을 서쪽의 흉적에게 머리 돌리고 무릎 꿇었으니

네 혼은 죽어서도 황천에 못가리니 지하엔 선대왕의 영혼이 계신 까닭이다.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망군시일우망친 일사유경만사의 춘추필법이지부 차사유전동국사

임금을 져버린 동시에 조상을 잃어버린 너는 한번은 고사하고 만번은 죽어야 마땅하다.

도대체 역사의 준엄한 기록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튼 치욕적인 이일은 역사에 길이 남으리라.






「詩僧과 共作」

* 김삿갓이 금강산 입석암 노스님과 詩才를 겨루는데, 모두 16구를 共作

朝登立石雲生足(조등입석운생족) 아침에 입석봉에 오르면 구름은 발밑에서 일어나고(스님)

暮飮黃泉月掛脣(모음황천월계순) 저녁에 황천수를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렸도다.(김삿갓)

澗松南臥知北風(간송남와지북풍) 물가의 소나무가 남쪽으로 누었으니 북풍이 부는 것을 알겠고

軒竹東傾覺日西(헌죽동경각일서) 마루위 대나무 그림자가 동쪽으로 기우니 해저문 것을 알겠노라.

絶壁雖危花笑立(절벽수위화소입) 절벽이 비록 위태로우나 꽃은 웃으며 피어 있고

陽春最好鳥鳴歸(양춘최호조명귀) 양춘은 가장 좋은 때련만 새는 울며 돌아가네.

天上白雲明日雨(천상백운명일우) 하늘에 흰구름은 내일에 비가 될 조짐이요

岩間落葉去年秋(암간낙엽거년추) 바위틈에 떨어진 잎은 지난 가을의 흔적이네.

兩姓作配己酉日最吉(양승작배기유일최길) 양성(남녀)이 혼사를 지내려면 기유일이 최고 좋고

半夜生孩亥子時難分(반야생해해자시난분) 밤중에 아이를 낳으려면 해시가 어렵도다.

影浸綠水衣無濕(영침녹수의무습) 그림자 녹수에 젖었어도 옷은 젖지 아니하고

夢踏靑山脚不苦(몽답청산각불고) 꿈결에 청산을 거닐었으나 다리는 고되지 아니하다.

群鴉影裏千家夕(군아영리천가석) 무리진 갈까마귀 그림자속에 천호의 저녁이 저물고

一雁聲中四海秋(일안성중사해추) 외기러기 울음소리에 천지는 가을에 잠겼도다.

假僧木折月影軒(가승목절월영헌) 가승나무 가지가 꺾이매 달그림자가 난간에 어른거리고

眞婦菜美山姙春(진부채미산임춘) 참미나리 제맛이 드매 산은 봄을 잉태하였도다.

石轉千年方倒地(석전천년방도지) 산위에 돌은 천년이나 굴러야 땅에 이를 듯 하고

峰高一尺敢摩天(봉고일척감마천) 산봉우리 한자만 더하면 감히 하늘을 만질듯 하구나.

靑山買得雲空得(청산매득운공득) 청산을 사들이니 구름은 공짜로 따라오고

白水臨來魚自來(백수임래어자래) 맑은 물 끌어오니 고기는 스스로 따라오네.

秋雲萬里魚鱗白(추운만리어린백) 가을 구름이 만리에 뻗었으니 고기 비늘처럼 하얗고

枯木千年鹿角高(고목천년록각고) 천년 묵은 고목은 사슴 뿔 인양 높구나.

雲從樵兒頭上起(운종초아두상기) 구름은 나무하는 아이 머리위에서 일고

山入漂娥手裏鳴(산입표아수리명) 산은 빨래하는 계집아이 방망이 쥔 손에서 우는구나.

登山鳥萊羹(등산조래갱) 산에 오르니 새들이 쑥국쑥국 하며 울고(萊 : 쑥래, 羹 : 국갱)

臨海魚草餠(임해어초병) 바다에 가니 고기가 풀떡풀떡 하고 뛰더라.(草 : 풀초, 餠 : 떡병)


水作銀杵舂絶壁(수작은저용절벽) 폭포는 은 절구공이가 되어 절벽을 찧고(杵 : 공이저, 舂 : 찧을용)

雲爲玉尺度靑山(운위옥척도청산)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인 양 청산을 재도다.

月白雪白天地白(월백설백천지백) 달빛도 희고 눈빛도 희니 천지가 모두 희고

山深夜深客愁深(산심야심객수심) 산도 깊고 밤도 깊고 나그네의 수심도 깊도다.

燈前燈後分晝夜(등전등후분주야) 등불을 켜고 끔으로써 밤과 낮을 구분하고

山南山北判陰陽(산남산북판음양) 산은 남쪽과 북쪽으로 음지와 양지를 알게 한다.



「破字詩」모음

파자법(破字法)이란, 말 그대로 글자를 깨뜨려 시를 짓는 법을 말하는데, 글자를 합쳐 보면 나타내고자 하는 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글자를 모으기도 하고, 독음으로 뜻을 나타내기도 하는, 정상적인 한시 작법으로 쓴 것이 아닌 것입니다.

김삿갓이 진주 원당리에서 천대를 받은 바로 다음 날 밤, 어느 유식한 사람의 집 사랑에서의 일이다. 주인과 함께 시도 짓고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해가 기울어 저녁때가 지났으나 손님인 자기의 밥상은 고사하고 주인의 밥상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윽고 그 집 하인이 문 앞에 와서, “人良且八(인량차팔) 하였나이다.”→食具하였나이다(밥상 준비가 되었나이다) 하며 주인의 눈치를 본다. 주인이 답하기를, “月月山山(월월산산) 하거든.”→朋出하거든(이 친구가 가거든) 한다. 김삿갓이 그런 정도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豕者禾重(시자화중)이 丁口竹天(정구죽천)이로고. →猪種(돼지 종자 같은 꼴)이 可笑(가히 우습구나) 하며 그 집을 나와 버렸다고 한다.

<天脫冠>

天脫冠而得一點(천탈관이득일점)

乃失杖而橫一帶(내실장이횡일대)

天자가 관(冠)을 벗고(脫), 한 점(丶)을 얻었으며(得) → 犬(개)

乃자가 지팡이(杖)를 잃고(失), 옆으로(橫)으로 一자를 띄었도다(帶) → 子(자식, 새끼)

곧 ‘개자식, 개새끼’가 됨. 누군가를 시로써 점잖게 욕한 셈이 된다.



<破字詩>

仙是山人佛不人(선시산인불불인) 신선은 곧 산 사람이고 부처는 사람이 아니네

鴻惟江鳥鷄奚鳥(홍유강조계해조) 기러기는 오직 강위의 새요 닭은 배가 큰 새일세

氷消一點還爲水(빙소일점환위수) 얼음에 점하나 사라지면 다시 물이 되고

兩木相對便成林(양목상대변성림) 나무 두그루 서로 마주보면 곧 수풀이 되네.



김삿갓이 어느날 서당을 찾아갔다. 세상을 방랑하는 사람이라 갈 곳이라곤 서당이나 대가집에 자제들 글 가르치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 일수다.

이날도 서당엘 찾아가 글 가르치는 구경을 하고 있는데 마침 점심참이 되었다

학동(學童)이 선생님에게 4자 파자시를 올렸다. 人良且八(인양차팔)하오리까?

인양은 합치면 食(밥식)자가 되고 차팔은 합치면 具(갖출구)자가 된다. 뜻은 밥상을 갖추오리까? 묻는 것이다. 선생이 답하기를 月月山山(월월산산) 하거든 하고 답을 주었다.

달월자가 둘이면 벗붕자(朋) 가 되고 메산자가 합치면 날출자(出)가 된다. 즉 벗이 가거든, 손님이 가거든 점심을 먹자는 뜻이다.

김삿갓이 이를보고 슬며시 종이에다 시를 쓴다. 豕者禾重(시자화중) 같으니! 丁口竹天 (정구죽천)이로다. 시를 써서 엎어놓고 슬며시 인사를 하고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돼지豕자와

놈者를 합하면 돼지猪(저)자가 되고 배禾자와 무거울重 자가 합치면 종자種(종)자가 된다.


돼지종자만도 못한 놈들 이란 뜻이다.


곰배丁자에 입口를 합치면 옳을가可자가 된다. 대竹밑에

하늘天을 하면 웃음笑자가 된다.


다시말해 가소로운 놈들이로다.


감삿갓이 간 뒤에 선생이 시를 터득해보니 그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제자를 시켜 빨리가서 그 남루한 복장의 선비를 찾아 모셔 오라고 했다. 이리하여 김삿갓은 다시 학동을 따라 서당으로 뒤돌아왔다. 선생은 큰절로 인사하고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하고 극구 사죄를 하고 아주 푸짐한 대접을 하고 저녁에는 닭도 잡고 진수성찬의 극진한 대우를 하였다고 한다.


김삿갓이 서당 훈장 생활을 하며 가련과 인연을 맺고 사는 마을에, 원생원, 서진사, 문첨지, 조석사가 별로 유식하지도 않으면서 김삿갓을 시기하고 미워했다. 어느 날 네 사람이 모인 곳에서 시 한 수로 그들을 싸잡아 욕을 해 주었다.

<元生員>

日出猿生原(일출원생원) → 원숭이, 원생원(元生員)

猫過鼠盡死(묘과서진사) → 쥐, 서진사(徐進士)

黃昏蚊詹至(황혼문첨지) → 모기, 문첨지(文僉知)

夜出蚤席射(야출조석사) → 벼룩, 조석사(趙碩士)

해가 뜨니 원숭이가 언덕 위에 나타나고

고양이가 지나가니 쥐가 모두 몰살 되었네.

황혼이 되니 모기가 처마에서 달려들고

밤이 되니 벼룩이 자리 틈에서 쏘아대네.





어느 날 조좌수 집에 망녕쟁이 노인들이 모여 자기를 험담하는 말을 듣고, 그 노인들을 놀려 주었다. 그의 자유자재한 글재주로 그들의 이름을 풀어 골려준 것이다.

<弄詩>

六月炎天鳥坐睡(유월염천조좌수) → 조좌수(趙座首)

九月凉風蠅盡死(구월양풍승진사) → 승진사(承進士)

月出東嶺蚊簷至(월출동령문첨지) → 문첨지(文僉知)

日落西山烏向巢(일락서산오향소) → 오향수(吳鄕首)

유월 염천에는 새가 앉아서 졸고

구월 서늘한 바람에는 파리가 다 죽는다.

달이 동쪽에서 뜨니 모기가 처마 끝으로 달려들고

해가 서산에 지니 까마귀가 제 집으로 돌아간다.




「기타 詩」모음

<능파루(凌波樓)에서 읊은 두 편의 즉흥시>

김삿갓이 내금강 만폭동으로 길을 떠났을 때이다. 무더운 여름인지라 땀도 식히고 다리도 쉴 겸 해서 만폭동 입구에 자리 잡은 표훈사(表訓寺) 쪽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그가 표훈사 앞의 다리에 들어서서 보니 절 입구인 능파루에 갓을 쓴 선비들이 모여 법석이고 있었다. 때마침 마주 오던 스님에게 물어보니 글깨나 한다는 양반들이 둘러앉아 한창 글짓기 내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능파루에서 잠깐 쉬었다 가려고 하던 차에 이곳에서 양반들이 글짓기 내기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부쩍 호기심이 동하였다. 이내 능파루의 시원한 2층 다락에 오른 삿갓은 한쪽 난간에 몸을 기댄 채 그들의 글 짓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천하명산 금강산을 노래한다는 그들의 시(詩)가 모두 기백이 없고 공허한 데다가 앞뒤 글귀도 맞지 않았다. 또한 그들의 하는 모양새도 가관이었다.

한 양반은 긴 수염을 쓸어내리며 현명한 척 침묵을 지키고 다른 양반은 마치 대가(大家)인양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에 잠겼는가 하면, 또 어떤 양반은 남이 지은 글귀를 따서 제 것처럼 둘러맞추느라 끙끙대고 있었다. 시에 무지한 어느 양반은 금강산의 자연미를 모독하는 글까지 지어 읊고 있었다. 김삿갓은 그들의 노는 꼴이 하도 가소로워 침을 탁 뱉고는 다락에서 내려가며 즉흥시 한 수를 큰소리로 읊었다.

나는 청산을 향해 가는데(我向靑山去)

녹수야 너는 어이하여 나오느냐.(綠水爾何來)

그의 범상치 않은 시를 새겨들은 한 양반이 김삿갓에게 “보아하니 길손도 시를 즐기는 것 같은데 우리와 함께 시 짓기 내기를 해보지 않겠소?”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삿갓은 그의 청에 못 이기는 척하며 되돌아서 다락 위에 올랐다. 행색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으나 방금 읊조린 삿갓의 시에 충격을 받았던지라 양반들은 예의를 차려 그를 맞이하였다. 자리가 정돈되자 구석 쪽에 앉은 한 양반이 그가 시를 지을 줄 아는지 물었다.


“시를 지을 줄을 모르고 부를 줄만 알지요.”

“시를 부를 줄만 안다? 거 참 묘한 말이로군. 그럼 어디 한 수 불러보시오.”

그 양반이 붓을 들고 김삿갓을 쳐다보자 그는 곧 그 양반에게 소나무를 가리키는 글자가 있는지 물어보고는 그 두 자를 나란히 쓰라고 하였다.


“자, 두 자를 썼으니 또 부르게나.”

그러자 이번에는 잣나무를 가리키는 글자가 있으면 그 옆에 또 두 자를 쓰라고 했다. 그 양반은 삿갓이 시키는 대로 썼다. 이어 그는 바위를 가리키는 글자가 있으면 두 자를 더 쓰라 하고 그 곁에 돌아간다는 글자를 한 자 덧붙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줄을 바꾸어서 같은 방법으로 산과 물, 처소를 가리키는 글자를 각각 두 자씩 쓰게 하고 거기에 기이하다는 글자를 덧붙이라고 하였다. 영문도 모르고 여기까지 받아쓴 양반은 그만 붓을 획 집어던지며 버럭 화를 냈다.


“여보시오. 내가 시를 부르라고 했지 언제 이 따위 글자나 부르라고 했소?”

김삿갓은 잔뜩 골이 난 그 양반을 보고 빙긋이 웃으며, “그러기에 나는 시를 부를 줄만 안다고 하지 않았소. 한 자(字) 시에 능한 양반이 지어놓은 글귀의 뜻도 모르고 화부터 내니 이거 너무하는 것 같소이다.”

“뭐라고!”

“자, 나는 아무래도 글 잘하는 양반님네들과는 상대가 못되는 것 같으니 이만 물러가겠소.”

김삿갓은 이 한마디를 던지고는 훌쩍 일어나 다락을 내려갔다. 그의 도도한 태도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양반들은 삿갓이 떠나자 이내 그가 써놓은 글자들을 읽으며 음미해 나갔다.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 사이를 돌아드니 (松松栢栢岩岩廻)

산과 산, 물과 물 가는 곳마다 기이하구나. (山山水水處處奇)

“어허, 이것이야말로 걸작이로구나!” 양반들은 일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에 비해 유치한 자신들의 시를 두고 낯이 뜨거워 몸 둘 바를 몰랐다. 김삿갓이 표훈사 능파루에서 금강산의 경치를 단 몇 마디의 글로 생동감 있게 묘사한 두 편의 즉흥시는 이때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誘惑>

客愁簫條夢不仁 滿天霜月照吾隣 (객수소조몽불인 만천상월조오린)

綠竹蒼松千古節 紅桃白梨片時春 (녹죽창송천고절 홍도백리편시춘)

昭君玉骨胡地土 貴姬花容馬嵬塵 (소군옥골호지토 귀희화용마외진)

世間物理皆如此 莫惜今宵解汝身 (세간물리개여차 막석금소해여신)

나그네는 쓸쓸함에 잠을 이룰 수 없는데 찬 서리 둥근 달이 나를 비추고 있구나

푸른 대나무와 소나무는 천고의 절개를 지키지만 붉은 복숭아 하얀 배꽃은 봄에 잠깐 피고 진다네 천하절색 왕소군도 죽어 뼈는 흙이 되고 양귀비의 고운 모습도 말발굽의 티끌이도다

세상사는 이치가 모두 그와 같은데 그대는 오늘 밤 옷 벗기를 아까워하지 마소.


원주 근처 어느 주막에서 하룻밤 유숙을 하는데 그 주모가 또한 과부 인지라 김삿갓은 그 옛날 중국의 사대 미녀 중의 한 사람인 왕소군과 양귀비를 빗대어 천하절색 미인이라도 죽어나면 모두가 흙으로 돌아가는데 젊은 나이에 절개를 지키려고 애쓰느냐며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詩




<숫자시>

二十樹下三十客 四十村中五十食 (이십수하삼십객 사십촌중오십객)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인간개유칠십사 불여귀가삼십식)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에게 망할 놈의 동네에선 쉰밥을 주는구나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고향집에 돌아가 설익은 밥 먹느니만 못하리라

김삿갓이 함경도 어느 부잣집에서 걸식을 하다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한문 숫자를 이용하여 표현한 시이다. 그의 뛰어난 재치와 풍자를 엿볼 수 있는 시이다.




<문전박대>

斜陽叩立兩柴扉 三被主人手却揮 (사양고립양시비 삼피주인수각휘)

杜字亦知風俗薄 隔林啼送佛如歸 (두자역지풍속박 격림제송불여귀)

해질 무렵 남의 집 문을 두드리니 주인놈은 손을 휘저으며 나를 쫒는구나

두견새도 야박한 인심을 알았음인지 돌아가라고 숲에서 울며 나를 달래네

해저문 저녁 장안사 아래 어느 초가집에서 하룻밤 유숙을 하고자 대문을 두드리니 주인은 밖을 내다보지도 않은 채 손을 저으며 문전박대를 한다.이에 김삿갓은 세상인심의 야박함을 시로써 달래고 바위 모퉁이 암굴에서 하룻밤 이슬을 피하였다.




<내기詩>

主人呼韻太環銅 我不以音以鳥態 (주인호운태환동 아불이음이조태)

濁酒一盆速速來 今番來期尺四蚣 (탁주일분속속래 금번래기척사공)

주인이 부르는 운자가 너무 '고리'고 '구리'니 나는 음으로 하지 않고 '새김'으로 해야겠다.

막걸리 한동이를 재빨리 가져오게 이번 '내기'에는 '자네'가 진 것이네.

어느 고을에서 김삿갓이 시를 잘 한다는 시객과 막걸리 내기를 하였는데 시객이 운자로 '銅' '態'.'蚣'을 부르자 김삿갓이 그 운을 부르는대로 시로써 답을 하여 막걸리를 얻어 먹었다고 한다.



<韻詩>

許多韻字何呼覓 彼覓有難況此覓 (허다운자하호멱 피멱유난황차멱)

一夜肅寢懸於覓 山村訓長但知覓 (일야숙침현어멱 산촌훈당단지멱)

하고 많은 운자 중에 하필이면 '멱'자인고. 저 멱자도 어려운데 또 다시'멱'자인가?

하룻밤 쉬어 감이 '멱'자 운에 달렸으니 시골 훈장 아는 자는 '멱'자뿐인가 하노라

김삿갓이 어느 시골 서당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청을 하자 훈장은 시를 지을 줄 아느냐며 '멱'자를 운으로 시를 짓게 하였다. 이에 김삿갓이 시골 훈장도 놀릴 겸 '멱'자 운으로 시를 지었다.



<나그네>

千里行裝付一祠 餘錢七葉尙云多 (천리행장부일사 여전칠엽상운다)

囊中戒爾深深在 野店斜陽見酒何 (낭중계이심심재 야점사양견주하)

천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떠돌다 보니 주머니에 남은 돈이라곤 옆전 일곱닢이 전부이네

그래도 너만은 주머니 속 깊이 간직하려 했건만 석양 황혼에 술집앞에 이르니 어이 그냥 지나치리오?

떠도는 나그네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낭만적인 시이다. 지팡이 끝에 낡은 행장을 달아매고 동가식 서가숙 하는 나그네가 황혼 무렵에 찾아든 주막을 앞에 두고 여정을 푸는 운치있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開城人逐客詩> -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읍호개성하폐문 산명송악개무신)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子獨秦 (황혼축객비인사 예의동방자독진)

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왜 문을 닫나 산 이름이 송악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되놈일세.



<시시비비> -是是非非詩

年年年去無窮去 日日日來不盡來 (년년년거무궁거 일일일래부진래)

年去月來來又去 天時人事此中催 (년거월래래우거 천시인사차중최)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시시비비비시시 시비비시비비시)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시비비시시비비 시시비비시시비)

이 해 저 해 해가 가고 끝없이 가네. 이 날 저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해가 가고 날이 와서 왔다가는 또 가니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이 가운데 이뤄지네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逢雨宿村家> -봉우숙촌가

曲木爲椽檐着塵 其間如斗僅容身 (곡목위연첨착진 기간여두근용신)

平生不欲長腰屈 此夜難謀一脚伸 (평생불욕장요굴 차야난모일각신)

鼠穴煙通渾似漆 봉窓茅隔亦無晨 (서혈연통혼사칠 봉창모격역무신)

雖然免得衣冠濕 臨別慇懃謝主人 (수연면득의관습 임별은근사주인)

비를 만나 시골집에서 자다 굽은 나무로 서까래 만들고 처마에 먼지가 쌓였지만

그 가운데가 말만해서 겨우 몸을 들였네.

평생 동안 긴 허리를 굽히려 안했지만 이 밤에는 다리 하나도 펴기가 어렵구나.

쥐구멍으로 연기가 들어와 옻칠한 듯 검어진 데다 봉창은 또 얼마나 어두운지 날 밝는 것도 몰랐네.

그래도 하룻밤 옷 적시기는 면했으니 떠나면서 은근히 주인에게 고마워 했네.

어느 시골집에서 비를 피하며 지은 것으로 궁벽한 촌가의 정경과 선비로서의 기개가 엿보이는 시이다. 누추하지만 나그네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베풀어 준 주인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면서 세속에 굽히지 않으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難避花> -꽃 피하기 어려워

靑春抱妓千金芥 (청춘포기천금개) 청춘에 기생을 품으니 천금이 티끌보다 아깝지 않고

白日當樽萬事雲 (백일당준만사운) 낮에 술잔을 드니 세상만사 구름 같구나

鴻飛遠天易隨水 (홍비원천이수수) 기러기 먼 하늘 날다가도 물 따라 내려가듯

蝶過靑山難避花 (접과청산난피화) 나비가 청산 가다 꽃 보고 못 피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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