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자식의 무덤 앞에서

淸潭 2017. 4. 27. 08:07

자식의 무덤 앞에서

12월 26일 새벽에 아들 묘에서 곡하다
[十二月二十六日曉 哭兒墓]

그믐달 드문 별빛 새벽 구름을 비추고
빈산에 쌓인 눈은 외로운 무덤 덮었네
평생의 지극한 슬픔 오늘 밤 통곡하니
지하의 영혼은 듣고 있는가

缺月疏星映曙雲결월소성영서운
空山積雪掩孤墳공산적설엄고분
百年至慟今宵哭백년지통금소곡
能遣精靈地底聞능견정령지저문

- 김수항(金壽恒, 1629~1689), 『문곡집(文谷集)』 권6

해설
이는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냈던 문곡 김수항이 요절한 아들 김창립(金昌立, 1666~1683)을 곡한 시이다. 김수항의 여섯 아들은 김창집(金昌集),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 등을 비롯해 모두 학문과 문장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당시 ‘육창(六昌)’이라 불릴 정도로 세간의 칭송과 주목을 받은 형제들이다. 그 중 김창립은 막내아들이어서 가족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고 또 어려서부터 출중하여 촉망받던 인재인데 18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 주위의 안타까움을 자아내었다.

아버지 김수항은 당시 영의정으로 양주(楊州) 석실(石室)의 장지까지 따라가지 못하여 더욱 깊은 슬픔을 품게 되었던 듯하다. 같은 문집 권6에는 다음 해 8월 김창립의 생일에 지은 시가 실려 있으며, 권22에는 「죽은 아이의 행장」이, 권24에는 대상 때까지 지은 제문 5편이 실려 있다. 그 형인 김창협이 지은 묘지명을 보면, 1689년 김수항이 죽음을 맞이하던 날 “네 아우의 묘지(墓誌)를 내가 오래전부터 짓고 싶었으나 슬픔이 심하여 문장을 만들 수가 없었다. 이제 나는 끝이니, 네가 꼭 묘지를 지어라.”라고 유명을 내렸다고 한다. 아들이 죽고 6년이 흐른 뒤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끝내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던 것은 어려서 죽은 막내아들이었을 것이다.

12월 26일은 바로 아들의 기일이다. 당시 장지에 못 갔으니 위의 시는 다음 해 기일에 지은 것인 듯하다. 그믐달에 별빛도 드문드문한 새벽, 산속에서 눈 덮인 자식의 찬 무덤을 찾아가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통곡을 한다. 이 소리가 지하의 영령에게도 들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짧은 칠언 절구에서 이 모든 광경과 작자의 심경이 간결하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듯 충분히 전해지고 있다.

부모든 자식이든 배우자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의 시간은 때로 그 순간에 멈춰있다. 시간이 흐르면 일상 속에서 고통스런 감정이 무뎌지기도 하겠지만 어느새 다시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병으로 죽은 자식의 죽음을 7년 동안 가슴 아파하던 김수항의 시를 보니 문득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김성애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