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 김득신(栢谷 金得臣)
태몽에 나온 ‘노자(老子)’의 정령을 받은 아이
그러나 10살에 겨우 글 배우기 시작
명문 사대부가(家) 정3품의 부제학을 지낸 아버지 ‘김치(金緻)’
우둔한 아들을 포기하라는 주위의 수군거림
‘나는 저 아이가 저리 미욱하면서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대견스럽네’
나이 스물 처음 스스로 작문
‘더 노력해라,공부란 꼭 과거를 보기 위해서 하는것이 아니다’
그가 선택한 노력은 다름 아닌 읽고,읽고,또 읽기
하지만....
하인과 길을 가던 어느날 들리던 글소리
夫學者 載籍極傳..........
“그 글이 아주 익숙한데, 무슨 글인지 생각이 안 나는구나”
“..........”
“나으리, 정말 모르신단 말씀이십니까?”
“........”
“이 글귀는 나으리가 평생 읽으신 것이어서 쇤네도 알겠습니다요”
사마천‘사기(史記)’중 ‘백이전(伯夷傳)’ 그가 무려 11만 3천번을 읽은글
친구들과 압구정에서 시를 주고 받는 자리
“내가 오늘 훌륭한 두 구절을 얻었다네”
“뭔가?”
“삼산(三山)은 푸른 하늘 밖에 반쯤 떨어지고
이수(二水)는 백로주(白鷺洲)에서 둘로 나뉘었네
어때 멋지지 않는가?”
“........”
“이게 그대의 시인가?”
이것은 이백의 시 '봉황'일세”
“.......”
수만번 외워도 잊어버리고
착각까지 했던 그는 특별한 기록을 한다
만번 이상 읽은 책들만 올린 讀數記(독수기)
그 속에 담긴 36개 고서에 대한 섬세한 평
백이전,노자전을 읽은 것은 글이 드넓고 변화가 많아서였고
의금장, 중용서을 읽은 것은 이치가 분명하기 때문이고...
백리해장을 읽은 것은 말은 간략한데 뜻이 깊어서였다...
무릇, 이들 여러 편의 각기 다른 문체 읽기를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59세 문과 급제
성균관 입학
고목은 찬 구름 속에 잠기고
가을산엔 소낙비가 들이친다.
저무는 강에 풍랑이니
어부가 급히 뱃머리 돌리네
-오언절구‘용호(龍糊)’의 첫 구절-
‘용호(龍糊)는 당시(唐詩)속에 넣어도 부끄럽지 않다'
-조선 17대 왕 효종-
그는 옛글과 남의 글을 다독했음에도
그것을 인용하지 않고 자기만의 시어로
독창적인 시 세계를 만들었다.
-서계박세당-
오언절구와 칠언절구가 빼어난
백곡 김득신(金得臣,1604~1684)은
당대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았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
-김득신이 스스로 지은 묘비명에서-
가져온 곳 :
카페 >又玄漢詩房(우현한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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