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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방울 셋이 이 마당에 배기면 제의 목이 달아 난 줄

淸潭 2017. 2. 23. 10:16

벌 받은 용자(龍子)


상선암에 도사님이 살고 있는데, 아는 게 참 많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은 초립동이 청년이 찾아왔다.
“서생 글을 배우러 왔습니다.”
“어디서 왔는가”
“어디서 온 것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공부나 잘 가르쳐 주십시오.”
“음, 그래? 그렇잖아도 여기 초립동들이 여럿이 와서 글을 배우고 있으니 그럼 배우고 싶은 대로 배워라.”
초립동이 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글을 잘 하고 수재였다. 한 번 가르쳐 주면 잊어버리지 않고 글씨도 잘 썼다.
그런데 그 초립동이 정월달에 왔는데 늦은 봄이 되도록 비가 오지 않았다. 그 초립동이 오면서 눈도 비도 오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기계로 물을 파서 만들겠지만 그 당시에는 비가오지 않는 것을 하늘의 재앙으로 여기고 사람들이 “이거 날이 가물어서 큰일 났다. 하나님이 우리 백성들을 죽게 하는구나. 아마 우리 백성들이 무슨 죄를 많이 진 모양이다.” 고 생각했다.
초립동이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꼭 비가 와야 됩니까.”
“아, 비가 와야지. 비가 안 오면 죽는다.”
“이 백성들은 죄를 지어서 비가 안 내리고 있습니다.”
“곡식을 아끼지 않고 함부로 먹고 함부로 버렸습니다. 이 동네를 다니면서 보면 집집마다 수채 구멍에 구정물을 내 버린데 밥풀이 수북하게 쌓여 하얗게 나가고 있어, 곡식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열이면 한 두 사람이지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한 두 사람 때문에 좋은 사람들까지 다 죽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내가 하나님이라면 나 혼자 죄를 받더라도 비를 내려주고 좋은 사람은 잘 살고, 죄 받을 사람은 벼락을 때려서 벼락치기를 받게 하든지 해야지 전부 태워서 죽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제가 글을 약간 중지하고 좀 다녀올 때가 있습니다.”
“집에를 다녀오려고”
“예, 집을 떠난 지도 오래고 해서 집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비를 내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네가 비를 내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진작 좀 비를 내리게 하지, 왜 비를 안 주고 이렇게 가물게 사람을 시달려 죽도록 만들 수 있느냐”
“그런데 비를 주면 큰 일이 납니다.”
“뭐가 큰일이 나”
“하나님이 저를 죽입니다.”
“하나님이 죽여? 그럼 그 죽음의 죄는 내가 받을 테니 비나 내려주렴. 내가 대신 가 죽으면 되지 않니. 지금 벌은 아들대신 아버지가 받을 수도 있고 또 아버지 대신 아들이 받을 수가 있는거니, 네 대신 내가 벌을 받겠다.”
“선생님이 꼭 제 대신 죽겠습니까?”
“아, 내가 죽어야지, 한 번 선생이 말했으면 그만이지. 제자한테 거짓말 할 수가 있나. 선생은 거짓말 못 하는 법이야. 그래서 제자 노릇하기보다 선생 노릇하기가 더 힘든 것이다.”
“그럼 선생님 말만 믿고 시작하겠습니다.”
“암, 해야지”
“그럼 내일 정오에는 비가 반드시 내릴 것입니다.”
“그래, 기다리고 있겠다.”
초립동이 사라지고, 그 이튿날 열두시쯤 해서 검은 구름이 둥실 둥실 떠오르더니, 소나기 바람이 나더니만 시커먼 빗줄기가 뭉클뭉클 내려오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음날, 날이 개면서 하늘에서 번쩍 하더니 어떤 장군 하나가 투구 철갑을 입고 큰 창검을 집고 내려오더니 그 선생 앞에 서서
“선생님, 하나님 명을 거역하고 이 세상에 비를 내렸으니, 득죄 한 사람을 내 놓으십시오.”
“아니, 여기 뭐가 있다고 내 놓으라고 해.”
“그 놈은 남해 용왕의 아들인데 여기로 글을 공부하러 온다고 하고 와서 여기 사람들이 가뭄에 시달려 죽겠다고 선생님이 그러시자 하느님 허락도 없이 자기 맘대로 비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장 잡아오라고 해서 내려왔습니다.”
한편, 용자는 겁이 나서 뱀으로 변하여 선생님네 집 마루 속으로 쑥 들어가 있었다.
“아니 그것은 내가 시킨 것이니, 내 목을 가지고 가시오. 내가 제자한테 약속을 했으니 거짓말을 할 수는 없소. 내 목을 가지고 가시오.”
“나는 하늘의 거령신인데, 하느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선생이 목을 내밀거든 그냥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냥 가겠습니다. 그러나 그 죄인은 내일 정오까지 꼭 올려 보내셔야 합니다. 안 올려 보내면 천벌을 받습니다. 죄는 올라와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장군이 하늘로 올라가자, 선생님 마루 밑에서 뱀이 쑥 나왔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말씀 고맙습니다. 제가 진 죄는 제가 받겠습니다. 제가 하늘로 올라가서 심판을 받겠습니다. 제가 내일 사형을 받게 되면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질 것입니다. 그 때 핏방울 셋이 이 마당에 배기면 제의 목이 달아 난 줄 아시고 또 핏방울이 떨어지지 않으면 제가 살아있는 것으로 아세요.”
용자가 하늘로 올라가고, 정오가 가까워져 바람이 세게 불고 약간 비가 몇 방울 떨어지고 상선암 앞마당에 핏방울이 석 점이 박혔습니다. 남해 용자가 글 배우다가 비를 내리고 하늘나라에 올라가 사형을 당했다는 것이 핏방울로 남게 되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벌 받은 용자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용궁),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