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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골의 구미호

淸潭 2016. 12. 24. 12:10

까막골의 구미호

순천설화 / 설화


순천시 낙안면 금산(金山)마을이 생기기 전 이곳에는 까막골이라는 곳에 조그마한 촌락이 있었다. 까막골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은 숯을 굽고 질그릇을 굽던 가마가 많이 있어서 ‘가마골’이라고 부르던 것이 ‘까막골’로 된 것이다. 까막골에서는 숯을 굽고 질그릇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하지만 까막골에는 과부가 많아 과부골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몇 집 살지 않는 조그마한 마을에 과부가 여덟 명이나 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까막골에 과부가 여덟 명이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옛날 이 마을에 초희라는 새색시가 시집을 왔다. 새색시라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얼굴이 어찌나 예쁜지 누구나 한 번 보면 욕심을 내었다. 그러나 팔자가 기구하였는지 시집온 지 한 해를 채우지 못하고 남편이 죽고 말았다.


시골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절세가인인데다 남편마저 죽고 홀로 지내자 마을 남정네들은 서로가 말이나 한 번 붙여보려고 안달이 났다. 그런 까닭에 마을 여인네들은 초희를 따돌리기 시작하였고 초희는 남편도 없이 말벗도 없이 외롭게 살아갔다. 하지만 마을 남정네들은 남들 눈을 피해 몰래 초희에게 먹을거리 등을 가져다주며 환심을 사려 하였다.


초희에게 아이가 생긴 것은 남편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과부가 임신을 하였으니 말들이 많을 것은 당연지사. 남편이 죽기 전에 임신을 한 것이라며 초희 편을 드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부분이 샛서방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계명워리1)네 뭐네 하며 말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남정네 가운데 송씨 성을 가진 사람이 영문 없이 죽고 말았다. 송씨 아내의 말로는 어젯밤까지 멀쩡하였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졸지에 과부가 된 송씨 아내는 동병상련이라고 초희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희에게 다가가 말벗을 자청하였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자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명이 죽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느닷없이 밤중에 길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었던 것이다. 호랑이가 나타났다느니 구미호가 나타났다느니 말들이 많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죽은 사람에게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초희를 의심하게 된 것은 동네 남정네들이 일곱 명이나 죽어나갈 때쯤이었다. 그렇다. 초희가 들어온 이후 이러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 것이다. 벌써 초희를 포함하여 마을에 젊은 과부가 여덟 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증거도 없이 초희를 어찌하기는 힘들었다. 마을 아낙네들은 남편도 없는 초희가 어찌 먹고살겠느냐며 밭팔아 산다2)는 등 막말까지 하였다.


사실 초희는 첫 남정네가 죽어나갈 때부터 좌불안석이었다. 자신과 관계한 사람들마다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초희가 처음부터 동네 남정네들하고 보쟁인3)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남정네들의 추파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는데 남편이 죽고 몇 달째 되자 거의 까막과부4)나 마찬가지였던 초희 스스로가 안달이 났다.


천성적으로 음기가 셌던 초희가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송씨를 받아들인 것까지는 좋은데, 새벽에 집으로 돌아간 송씨가 급사를 하고 말았다. 그래서 사실 초희는 내심 불안하였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죽어나가자 우연의 일치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초희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지만 막상 또 다른 남정네가 찾아오면 자신도 몰래 몸을 허락하고 말았다. 그러면 다음날 어김없이 그 사람이 죽고 말았다. 그렇게 죽어간 마을 남정네가 벌써 일곱 명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참지 못한 초희가 정안수를 떠놓고 칠성님께 빌고 또 빌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에 칠성님이 나타나 초희에게 이야기하였다.


“너는 전생에 구미호였느니라. 지은 죄가 하도 많아 그 업보로 남편을 잃게 되는 것이다. 아홉 명이 죽고서야 네 업보가 풀릴 것이다.”
깜짝 놀란 초희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보니 꿈이었다.


그랬다. 초희는 전생에 구미호였던 것이다. 구미호였을 때 초희는 사람을 숱하게 죽였다. 구미호의 악행이 널리 퍼지자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미호를 물리치기 위해 찾아왔지만 모두 구미호에게 당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얼핏 보기에도 도력이 대단할 것 같은 도사가 나타나 술법으로 구미호를 꼼짝 못하게 하고는 지팡이로 구미호의 목숨을 거두었다.


구미호를 죽이면서 도사가 이렇게 말했다.


“너의 악행이 너무도 끔찍하여 너는 이 업보를 내세에도 지고 태어날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죽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초희는 이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목숨을 끊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모진 것이 목숨이라고 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더구나 벌써 다섯 살이 된 아들이 눈에 밟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결국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운 초희는 하루가 다르게 여위었고, 그런 초희 곁을 지키는 어린 아들만 불쌍한 처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희네 집 앞을 지나던 나그네가 하룻밤 묵고 가기를 청하였다. 인사불성이 된 초희 대신 아들이 나가니 나그네가 깜짝 놀랐다.


“아저씨,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어린 아들이 나그네에게 엄마를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마침 그 나그네는 의과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던 의원이었다. 하여 그냥 뿌리치지 못하고 초희를 치료해 주었다. 비록 곡기를 끊고 초췌해졌다지만 누워있는 초희의 모습은 나그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처음에는 단지 곤경에 처한 환자라 생각하고 아무 생각없이 초희를 치료하던 나그네는 차츰 기력을 회복하면서 살아나는 초희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버렸다. 그래서 나그네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눌러 지냈다.


처음에는 밀어내던 초희도 어쩔 수 없이 나그네를 받아들여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비록 가시버시5)의 연을 맺기는 하였지만 초희는 나그네와의 잠자리만은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나그네 역시 초희와의 잠자리를 절실히 원하였지만 같이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내심 서운하기는 하였지만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마을에서는 그러저러한 소문이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정체도 모를 나그네와 같이 산다고 하니 가지기6)니 뭐니 등의 말은 하였지만 그래도 초희 때문에 자기들 남편이 죽었다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는 별 탈 없겠지 하고 나그네와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그만 나그네 역시 다음날 죽고 말았다. 더 이상 사람들이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초희는 결국 목을 매 죽고 말았다. 아홉 명이 죽고서야 업보가 풀릴 것이라는 예언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초희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역시 없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 폐허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여덟 과부가 살았다는 곳에 가면 옛날에 숯을 굽던 터와 질그릇을 굽던 가마의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