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수필등,기타 글

사교(邪敎)와 정치

淸潭 2016. 10. 29. 11:39

사교(邪敎)와 정치

 

동양 최대의 정치이론가 맹자(孟子)는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를 이렇게 구분하였습니다. 왕도는 ‘인(仁)과 의(義)를 바탕으로 한 정치’이고, 패도는 ‘힘(力)에 의한 정치’라는 것이 그의 정의였습니다. ‘인’과 ‘의’에는 도덕이 있어서 오래 가지만 ‘힘’은 도덕을 무시하고 멋대로 나갈 우려가 있어서 오래 유지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치에 ‘사교’가 끼어들면 개인이 망할 뿐 아니라 나라도 망합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816년에 제정 러시아에 벌어졌던 일이 국민필독의 교과서의 한 페이지처럼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1914년 세계정복을 꿈꾸던 독일의 황제 윌헬름 II가 시작한 침략전쟁을 저지하기 위하여 영국‧프랑스 등이 주동하는 연합군에 끼어 러시아도 참전하여 불행하게도 패배를 거듭하는 가운데 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흉년마저 들어 농민들은 기아선상을 헤매이고 있었습니다.

정치적 난국에 직면한 당시 러시아의 최고 권력자는 니콜라이 황제가 아니라 황후 Alexandra였고 그 황후를 움직이는 사람은 또 따로 있었으니 그가 괴승(怪僧)으로 알려진 Rasputin이였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출신의 ‘돌중’이었지만 황태자의 혈우병(血友病)을 기도로써 치유했다하여 니콜라이 황제 내외의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고 도둑질을 하다가 마을에서 도망 나온 그는 각지의 수도원을 전전하면서 얻은 옅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수도사가 되어 이단적 신비주의에 최면술을 섞어, 한 때 ‘성자’(聖者)로 높임을 받기도 하고 특히 하층 농민들 사이에는 영향력이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그는 페테르부르크의 상류사회에 침투할 수 있었고 드디어 Nicolai와 Alexandra의 총애를 독점하여 1905년부터는 황제 내외의 둘도 없는 ‘친구’(Friend)로 불리우며, 권력에 취한 Rasputin은 술과 여자와 뇌물로 자기 자신은 물론 그의 조국 러시아도 망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귀족들에 의해 암살되어 네바강에 그의 시체가 뜬 것은 1916년의 일이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고향이 같은 두 사람의 혁명가 Kerensky와 Lenin의 혁명이 잇따라 Bolsheviki에 의해 황제일가는 몽땅 총살당하고 니콜라이 황제와 알렉산드라 황후와 괴승 Rasputin의 영화의 단 꿈은 끝나고 말았습니다.

맹자는 ‘왕도’와 ‘패도’가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괴승이 농단하는 정치는 뭐라고 해야 옳겠습니까? 굳이 말을 만든다면 ‘사도’(邪道)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도’가 ‘왕도’가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