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그 정도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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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젊어서는, 영어를 배우고 익히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학생시절에 큰 꿈은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에 유학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학문에 뜻을 두는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에 대해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근세 민주주의 조상이 영국이라고 믿고 있었고, 왕당파(Tories)를 격파하고 의회파(Whigs)를 승리로 이끌어 공화정치 10년을 장식한 윌리엄 크롬웰은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새로운 과학의 시대를 열어준 것도 영국인 프란시스 베이컨이었고, <도덕과 입법의 원리>를 저술한 사람도 제레미 벤섬이라는 영국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탐독한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워드 밀도 영국인이었습니다. 영국의 정당정치, 의회정치는 통일을 선도해야 할 대한민국이 먼저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 영국이 “영국은 EU를 탈퇴할 것인가 아닌가?”라는 질문 하나를 가지고 4천만을 넘는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소를 찾아가 투표를 해야만 결정이 된다는 사실이, 민주주의의 미래에 큰 기대를 걸고 살아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실망스럽게 느껴집니다. 영국국민의 수준이 요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인가? 영국의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을 대신하여 그런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서 큰돈을 써가며 이 짓을 한다는 것은 영국 민주주의를 흠모해 온 사람으로서는 납득이 어렵습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에는 아직도 영국의 국민투표가 진행 중입니다. 이 국민투표로 ‘EU 탈퇴냐?’ ‘EU 잔류냐?’하는 문제는 결론이 내려지겠고 정치꾼들의 비중에 다소의 변화는 있겠지만 데이비드 캐머런 (David Cameron)이 영국수상 자리를 당장 물러나게 되는 것도 아니고 보리스 존슨 (Boris Johnson)이 런던 시장 자리를 내놓게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국민 주시 하에 일종의 ‘쇼’를 하는 겁니까?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일본의 전범자로 몰린 오오가와 슈메이(大川周明)가 내뱉은 한 마디가 생각납니다. “Democracy는 democrazy야!” - 미친놈의 미친 수작으로만 여겼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주의의 반성’이 절실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국의 국민투표를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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