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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종과 현충일

淸潭 2016. 6. 4. 10:51







 

망종(芒種)/ 고영민

 

 

당신을 땅에 묻고 와 내리 사흘 밤낮을 잤네

일어나 반나절을 울고

다시 또 사흘 밤낮을 잤네

 

하릴없이 마당을 쓸고

더덕밭을 매고

뒷목을 긁고

흙 묻은 손바닥을 일없이 들여다보다

또 손톱 하나를 뽑고

 

당신을 생각하는 이 계절은 붉거나 노랗거나

혹은 그 가운데쯤의

빛깔

업듯 새끼사슴을 안고

꽃나무를 나서는 향기처럼 신발을 끌며

마을 입구까지 길게 걸어갔다 왔네

 

인중이 긴 하늘

선반엔 들기름 한 병

 

 

- 시집『사슴공원에서』(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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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1956년 제정되어 올해로 60번째 맞는 현충일이자 절기로는 망종이다. 현충일을 6월6일로 정한 이유는 우리민족의 세시풍습과 관련이 있다. 24절기 가운데 손이 없다는 청명과 한식에 사초와 성묘를 하고 망종에 제사를 지내왔던 오랜 전통에 근거하여 망종인 6월6일에 추모일을 맞춘 것이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인 ‘손이 없다’의 ‘손’이란 민속신앙에서 동서남북 4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해코지하는 귀신을 뜻한다. 나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날에 그래서 '손 없는 날'을 택한 것이다.

 

 망종은 수염이 있는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에 좋은 때라는 뜻이다. 까끄라기가 있는 보리를 수확하고 벼를 파종하는데 적기임을 절기로 알렸다. 망종까지는 보리를 베어야 논에 벼를 심고 밭을 갈아 콩도 심게 된다. 망종을 넘기면 모내기가 늦어지고 바람에 보리가 넘어져 수확하기도 어려워진다. 특히 보리는 ‘씨 뿌릴 때는 백일, 거둘 때는 삼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시간이 촉박하다. 옛날 같으면 이맘때부터 보리수확이 끝난 논마다 보리깍대기 태우는 연기로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다.

 

 온 나라가 어수선하여 무엇 하나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시국이지만 그래도 농가에서는 할 일은 해야 한다. 극심한 가뭄에도 불구하고 농촌에서는 보리수확과 모내기가 연이어져 들녘의 농부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생겼다. 이때의 바쁨을 일러 ‘발등에 오줌 싼다’는 말도 있다. 농사일이 끊이지 않고 망중한의 겨를이 없다고 해서 '망종(忘終)'이라고도 했다. 말 그대로 농번기의 최고 절정기다. 요즘엔 보리 심는 곳이 드물어 보리타작하는 모습 보기도 어렵고, 많은 논에서 기계로 모를 심고 있지만 여전히 일은 많고 일손은 부족하다.

 

 이러한 때 ‘당신을 땅에 묻고 와 내리 사흘 밤낮을 자’고 ‘일어나 반나절을 울고’ ‘다시 또 사흘 밤낮을 자’고 일어나 ‘하릴없이 마당을 쓸’다가 ‘흙 묻은 손바닥을 일없이 들여다보다’니 권태에 가까운 이 망중한의 슬픔을 짐작할 만하다. 당신을 생각하는 이 계절이 아득디 아득하여 ‘붉거나 노랗거나 혹은 그 가운데쯤의 빛깔’이라 하늘마저 그리 보였을 것이다. ‘인중이 긴 하늘’ 죽은 자의 선한 얼굴이 슬며시 비쳐 지나가는데 이럴 때 비라도 마구 퍼부어주길. 그래, 차라리 지금은 울고 싶은데 누가 따귀라도 힘껏 후려쳐 주었으면 좋겠다. ‘선반엔 들기름 한 병’ 망종의 묘약일 수 있을까.

 

 

권순진

 


가져온 곳 : 
카페 >漢詩 속으로
|
글쓴이 : 돌지둥[宋錫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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