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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들의 소란과 조선조의 당쟁

淸潭 2016. 4. 27. 10:38

정달들의 소란과 조선조의 당쟁

 

한국 사람들은 ‘당쟁(黨爭)’이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조선조의 대부분이 이 당쟁 때문에 피로 물들어 있고 그 저주스러운 당쟁 때문에 나라의 주권도 상실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조선조 개국 초기부터 개국공신들의 뒤를 이어 훈구파가 있었고 또 신진 엘리트들의 사림(士林)파가 있어 피차의 대립이 불가피했지만 그런대로 나라는 큰 탈 없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림파가 계속 사화(士禍)를 겪다 보니 현실정치가 위험하기도 하고 염증도 나서 산과 숲으로 몸을 감추고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서원(書院)을 중심으로 학파가 조성되어 정계진출을 도모하던 중 선조(宣祖)가 등극한 뒤부터 그 기회가 많아져 사림파는 정계와 학계를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훈구파의 견제가 없어진 처지에서 사림파 내부의 반목‧갈등이 또한 심해져 신‧구 세력의 분쟁이 노골화되었으며 신(新)학파를 대변하는 김효원과 구(旧)학파를 대표하는 심의겸의 동서분당(東西分黨)이 불가피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동인(東人)이 득세했다 몰락하니 서인(西人)의 세상이 되었고 서인의 두목 격이던 정철(송강)이 작은 문제 하나로 모함을 당해 밀려나 마침내 동인의 세상이 되었지만 송강 처벌문제로 또 다시 의견이 갈려 동인은 남인(南人)과 북인(北人)으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는 더 많이 갈라졌다지만 대북(大北), 소북(小北), 골북(骨北), 육북(肉北), 중북(中北), 심지어 청소북(淸小北), 탁소북(濁小北)까지 등장하니 그 ‘오묘막측’한 분열 경위를 누가 다 알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우여곡절 끝에 송시열이 등장하여 다시 서인 세상이 되지만 또 한 번 그는 중상모략의 희생양이 되고 그 뒤에는 노론(老論), 소론(少論)까지 나타나 복잡다단한 정국이 되었습니다. 그런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대한제국은 악독한 신흥 일본군국주의의 먹이로 전락되고 마는 겁니다.

오늘의 한국정당은 사색(四色) 당쟁 같은 처절한 양상을 빚을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정치를 생활의 방도로 또는 취미로 하는 ‘건달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에 인조(仁祖)나 효종(孝宗) 때 같은 처절한 당쟁으로 번지기는 어렵겠다는 전망입니다.

생활의 방도로 정치를 택한 정치인이나 별다른 취미가 없어서 정치를 취미의 일종으로 알고 정치판에 뛰어든 인물들도 임기 4년 동안 상식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왜? 그러다간 철창신세를 지게 되고, 그나마 ‘건달생활’도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