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승만을 생각한다-1960.4.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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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을 상실했던 암울한 세월에 국민의 존경을 받을만한 두드러진 인물들이 여러 분 배출되었습니다. 이상재, 안창호, 조만식, 김구, 이승만, 서재필, 김좌진, 손병희, 송진우, 여운형, 김일성, 박헌영 등 기라성 같은 영웅호걸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국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 한 사람을 택하라고 하면 나는 서슴지 않고 이승만을 택하겠습니다. 그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George Washington같이,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추앙돼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는 자질이나 소질이나 능력 또는 교양이나 소양 또는 투쟁경력이나 지략에 있어서도 뛰어난 '명장'이었습니다. 이승만은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양반집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낡고 썩은 조정'을 개혁하지 않고는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독립협회에 뛰어 들어 23세의 젊은 나이에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6년을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민영환의 주선으로 겨우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하여 Harvard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Princeton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나이가 35세였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다 "이승만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30이 넘어 미국에 가서 어떻게 그 짧은 기간에 Harvard나 Princeton같은 명문대학에서 MA, Ph.D를 받을 수 있었을까, 놀랍습니다. 그는 1919년 상해임시정부가 출범했을 때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기도 하였지만 미국 본토를 무대로 하여 끈질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역사와 시대를 통찰하는 혜안이 있었습니다. 이승만은 '좌우합작'하자는 제의도 물리치고 '남북협상'하자는 요청도 거절하고 대한민국을 세웠습니다. 그는 단독정부를 세운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적 공산정권에 맞서서 장차 실지(失地)를 회복할 대한민국 정부를 하루 빨리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 안 되면 제주에라도 세워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건국을 서둘러 1948년 그의 나이 73세에, 오늘의 대한민국을 출범시켰습니다. 너도 나도, 자유당의 장기집권을 반대했습니다. '3선 개헌'도 반대했고, '3‧15 부정선거' 또한 규탄하였습니다. 그래서 4‧19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는 그 모든 실책을 시인하고 스스로 물러나면서,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유명한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그는 Sadam Hussein이나 Quadhafi처럼 숨지도 않고 도망 다니지도 않고 하와이의 한 허름한 병원의 허름한 병실에서 9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둘 때까지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한 마디도 불평을 한 적이 없답니다. 오늘이 4월 19일입니다. 노산 이은상이 지은 <4월이 오면>이라는 시 한 편을 읊어 봅니다. 4‧19 묘소에 가면 나의 제자 최 군과 고 양 두 사람이 거기 누워 있습니다. 꽃잎처럼 떨어진 185명의 젊고 아름다운 생명들이 다 이승만 대통령께 인사하면서, "대통령 각하, 나라를 되찾고 다시 세우시노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라고 치하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4‧19가 없었으면 이승만도 이렇게 되살아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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