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전설의 하나. 고구려대 무신왕의 왕자 호동에 관한 이야기. <삼국사기>권14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조에 나오는 기록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 하나는 낙랑에 들어가 낙랑공주와 결혼을 하고 신기인 고각을 낙랑공주로 하여금 부수게 하여 낙랑을 쳐서 이겼으나 공주는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원비가 호동을 시기하여 왕에게 참소하여 호동이 자살하고 마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본 설화는 극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어 그것 자체가 훌륭한 문학 작품이다. 특히 낙랑으로 대표되는 한족과 고구려족 간의 갈등을 신화. 전설에 나오는 신기 쟁탈의 화소의 원형에 넣어 형상화하였다는 것은 작품으로서도 빈틈없는 구성이다. 또한 호동의 비극적인 일생과 낙랑공주의 로맨스는 후대 문학 작품의 훌륭한 소재가 되었다. 현대에서도 희곡·시나리오·소설 등에서 이 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이 창작되고 있음은 앞에서 말한 사실을 충분히 대변해주고 있다.
호동 왕자
?∼32(대무신왕 15). 고구려시대의 왕자. 대무신왕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갈사국왕(葛思國王)의 손녀로, 대무신왕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얼굴이 수려하여 부왕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았으며, 그래서 이름을 ‘호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32년 4월 옥저로 놀이를 나갔다가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를 만나, 함께 낙랑으로 가서 그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런데 당시 낙랑에는 적병이 침입해 오면 스스로 울어 위기를 알리는 북과 뿔피리가 있어, 고구려가 낙랑을 정복하기 어려웠다.
이에 호동은 최리의 딸로 하여금 몰래 북과 뿔피리를 파괴하게 하고 고구려군대를 이끌고 낙랑을 정복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대무신왕이 낙랑을 멸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호동을 최리의 딸과 정략혼인시키고, 그녀를 본국으로 돌려보내 북과 뿔피리를 파괴하게 하였다고도 한다.
이 때의 낙랑은 중국 군현의 하나인 낙랑군으로 보지 않고, 평양에 근거를 둔 독립세력인 낙랑국으로 간주하는 견해도 있다. 그 뒤 대무신왕의 원비(元妃)의 모함으로 부왕의 의심을 사게 되어 자신을 변명하는 것은 원비의 죄를 드러내는 것이 된다고 생각하고 자결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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