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神人)의 현현(顯現)을 다룬 진신설화(眞身說話). ≪삼국유사≫ 권3 오대산오만진신조에 실려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 선덕왕 때(636) 자장법사(慈藏法師)가 중국 오대산의 문수보살의 진신을 보려고 당나라에 갔다. 태화지(太和池) 가의 문수보살 석상이 있는 곳에 이르러 7일 기도를 드렸더니 문득 꿈에 부처가 나타나 네 구절의 시를 주었다. 그러나 그 시가 범어(梵語)로 되어 있어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이튿날 한 중이 붉은 비단에 금점(金點)이 있는 가사 한 벌과 부처의 바리때 하나, 그리고 부처의 머리뼈 한 조각을 가지고 와서 자장에게 물었다. “어째서 시름에 싸여 있습니까?” 자장이 “꿈에 부처님께 받은 시구의 뜻을 풀지 못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니, 그 중은 시구의 뜻을 번역하여 일러주었다.
이어 중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사 등속을 자장에게 주면서 부탁했다. “이것은 석가세존의 것이니 당신이 잘 보관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중은 또 말하기를, “당신 본국의 동북방 명주(溟州) 경계에 오대산이 있는데 1만의 문수보살이 늘 거주하고 계시니 가서 뵈십시오.”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이에 법사가 귀국하려 하는데 태화지의 용이 나타나 전날 자장이 만난 중은 문수보살의 현현이었음을 알려 주었다. 법사가 귀국하여 오대산 기슭(지금의 月精寺 터)에 이르러 띠집[茅屋]을 짓고 살다가 드디어 문수보살을 뵙게 되니, 보살은 ‘칡덩굴이 있는 곳을 찾아가라.’고 하였다. 이 말을 따라 자장은 마침내 지금의 정암사(淨巖寺) 터를 찾아냈다.
한편 자장법사가 신라로 돌아왔을 때 태자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이 명주에 이르러 유람하다가 문득 두 형제가 모두 속세를 벗어날 뜻을 몰래 약속하고 아무도 모르게 도망하여 오대산으로 들어가니 시위하고 갔던 사람들은 모두 서울로 돌아가고 말았다. 두 태자는 산 속에 이르러 각기 암자를 짓고 머무르며 부지런히 업을 닦았다.
하루는 형제가 함께 다섯 봉우리에 올라 예하는데, 동대(東臺)의 만월산에는 1만 관음이 나타나고, 남대(南臺)의 기린산에는 1만의 지장보살이 나타나고, 서대(西臺)의 장령산(長嶺山)에는 1만 대세지보살이 나타나고, 북대(北臺)의 상왕산(象王山)에는 석가여래를 수위(首位)로 한 500의 대아라한(大阿羅漢)이 나타나고, 중대(中臺)의 풍로산(風盧山)에는 1만의 문수보살이 나타나 있었다.
두 형제는 이와 같은 5만 보살의 진신에 일일이 예했다. 날마다 이른 아침에는 문수보살이 진여원(眞如院, 지금의 上院寺)에 이르러 36종의 형상으로 나타났으니, 두 태자는 늘 골짜기의 물을 길어다가 차를 달여 공양하며 도를 닦았다.
이 이야기 중 특히 보천·효명 두 태자가 5만 진신을 뵙는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오대산오만진신’조뿐만 아니라 다음에 이어지는 〈명주 오대산 보질도 태자 전기 溟州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조에도 중복되어 나타난다. 또, 자장법사가 문수보살의 진신을 보려고 띠집을 짓고 살던 이야기는 다시 이어지는 ‘대산 월정사 오류 성중(臺山月精寺五類聖衆)’조에도 나타난다. 그리고 문수보살이 36종의 형상으로 변하여 나타난 이야기는 오대산오만진신조에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총체적으로 볼 때, 이들 조항은 불보살들의 이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전형적인 불교설화의 한 예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니며, 오대산 일원의 지명(사원명) 전설로서도 의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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