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생원은 오척 단신에 피골은 상접해 바람이 세차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생김새다. 하지만 깡이 있어 남에게 지는 법이 없다. 평소 안면 있는 장돌뱅이가 “지 생원! 나무 잡아, 바람 불어”라고 농을 던지면, 지 생원은 당나귀를 가리키며 “내 친구 등 휘어질까봐 일부러 살을 뺐어.” 킬킬 웃음을 터뜨린다. 사실 덩치 큰 사람은 당나귀 등에 짐은 실어도 타고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작고 마른 지 생원은 붓보따리와 함께 자신도 타고 다닌다.
어느 날, 지 생원이 까닥까닥 당나귀를 타고 주막집 사립문 앞에 당도했다. 당나귀에서 팔짝 뛰어내린 지 생원이 담 안의 감나무에 당나귀 고삐를 묶고 여물과 물을 주었다. 그런 뒤 자신은 주막 마당 들마루에 앉아 국밥에 대포 한잔을 시켰다.
바로 그때, 큰 갓을 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희멀건 젊은이가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말을 타고선 주막 앞에 내렸다. 젊은이는 말고삐를 지 생원 당나귀가 묶인 감나무에 매는 것이 아닌가!
지 생원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보아하니 둘 다 수놈인데 한 나무에 고삐를 매어두면 틀림없이 싸웁니다. 저기 다른 감나무가 있잖소.”
아들뻘밖에 안돼 보이는 젊은 선비는 눈을 아래로 깔면서 칼칼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렇게 염려되면 당나귀를 그리 옮겨 매시오.”
지 생원은 어이가 없어 젊은 선비를 쳐다보자 그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성큼 마루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 생원의 당나귀 덩치를 종지에 비유하자면 젊은 선비의 말은 흡사 사발이다. 그러나 지 생원은 제자리에 앉으면서 젊은 선비에게 경고했다. “후회하지 마시오. 제 당나귀가 비록 덩치는 작아도 한가락하는 놈입니다.”
선비는 코웃음을 쳤다.
“킁- 킁-” 아니나 다를까, 두 놈이 다투기 시작했다. 말이 당나귀의 여물을 빼앗아 먹자 당나귀가 머리를 밀치다가 전광석화처럼 뒤로 돌더니 뒷다리 둘을 동시에 올려 퍽! 말의 주둥이를 박살낸 것이다. 큰 덩치의 말이 쿵! 하고 쓰러져 네 다리를 버둥거리며 입에서 거품을 내뿜더니 축 늘어졌다. 숨을 거둔 것이다.
어깨가 떡 벌어진 젊은 선비가 지 생원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허공에 뜬 두 발을 버둥거리던 지 생원이 목이 졸려 캑캑거리면서도 번개처럼 박치기로 젊은 선비의 면상을 들이받고 양발로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선비도 말 옆에 뻗었지만 이승을 하직한 건 아니고, 코가 내려앉고 불알이 퉁퉁 부어올랐다.
지 생원과 젊은 선비가 동헌으로 가 사또 앞에 섰다. 젊은 선비가 자신에게 불리한 말은 쏙 빼버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말을 살려내던가 말 값을 쳐주고, 내려앉은 코뼈를 올려주고 퉁퉁 부어오른 고환도 원상태로 돌려놓으라고 지 생원을 다그쳤다. 가만히 듣고 있던 사또가 지 생원에게 물었다.
“젊은 선비의 말이 사실이렷다?”
그러나 지 생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붓장수 지 생원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가?” 사또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지 생원은 이번에도 사또를 빤히 쳐다볼 뿐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저놈이 벙어리인가?” 사또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
젊은 선비가 “어라, 벙어리 행세를 하네. 사또 나으리, 이 영감탱이는 방금 전까지도 말을 했습니다.”
사또가 물었다 “그래 무슨 말을 했는고?”
젊은 선비가 흥분해 대답했다. “둘 다 수놈인데 한 나무에 매어두면 싸워요. 저기 다른 나무에……라고 분명히 말을 했습니다.” 아뿔싸, 말을 하고 보니 자기 잘못을 제 입으로 밝힌 셈이 됐다.
사또가 고함쳤다. “네 이놈, 백번 네놈의 잘못이렷다.”
그러면서 지 생원에게 물었다. “왜 사또 앞에서 벙어리 행세를 하느냐?”
지 생원이 입을 열었다. “제 입으로 사실을 말하면 저 위인은 분명히 딱 잡아뗐을 겁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