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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話] 온달(溫達)

淸潭 2015. 11. 6. 10:31

 온달(溫達)

 

온달(溫達)은 고구려 평강왕 때 사람이다. 얼굴은 울퉁불퉁 우습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아름다웠다. 집이 가난하여, 항상 밥을 구걸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였고, 다 떨어진 옷과 해어진 신으로 시정(時井)을 오가니,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바보 온달이라고 했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 하니, 왕이 농담삼아 늘 이렇게 말했다.

“네가 항상 울어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커서 사대부의 아내는 될 수 없고,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 보내야겠다.”

공주가 16살이 되어 상부(上部) 고씨(高氏)에게 시집 보내려고 하자, 공주가 대답하기를,

“대왕께서는 늘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내야겠다.’고 하시더니, 지금 무슨 까닭으로 전에 하신 말씀을 바꾸려 하십니까? 평민들도 거짓말을 안 하려고 하는데, 하물며 지존(至尊)하신 분께서 거짓말을 하셔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임금은 장난삼아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왕의 명하심은 잘못되었으니, 저는 감히 그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왕은 크게 노하여 말했다.

“네가 내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니 내 딸이 될 수 없다. 어찌 같이 살 수 있겠느냐?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라.”      

공주는 금팔찌 수십 개를 차고 궁궐을 나와서 홀로 걸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온달의 집을 물어 그 집으로 갔다. 집에는 눈멀고 늙은 온달의 어머니가 혼자 있었다. 공주는 가까이 가서 절하고, 그 아들이 있는 곳을 묻자 온달의 어머니가 말했다.

“내 아들은 가난하고 누추하니, 귀한 분이 가까이할 바가 못 됩니다. 지금 그대의 냄새를 맡으니 향기가 남다르고, 손을 만져보니 부드럽기가 마치 솜과 같습니다. 반드시 귀한 사람일 텐데 누구에게 속아서 이 곳에 왔습니까? 내 아들은 배고픔을 참지 못해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간 지 오래 되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공주가 그를 찾아 산 밑에 이르렀을 때,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오는 온달을 만났다. 공주가 그에게 마음 속의 생각을 말하자, 온달은 발끈 성을 냈다.

“이 곳은 어린 여자가 다니는 곳이 아니니 너는 틀림없이 사람이 아니고 귀신일 것이다. 가까이 오지 말라.”

온달은 돌아보지도 않고 가 버렸다. 공주는 혼자 뒤따라와서 사립문 밑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들어가서 온달과 온달의 어머니에게 그간의 사정을 자세히 말했다. 온달은 머뭇거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나, 어머니가 말렸다.

“내 아들은 몹시 누추하여 귀한 분의 배필이 될 수 없으며, 우리 집은 몹시 가난하여 귀한 분이 거처할 곳이 못 됩니다.”     

그러자 공주는 이렇게 말했다.

“옛 사람의 말에 ‘한 말의 곡식만 있어도 방아를 찧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만 있어도 바느질을 할 수 있다.’고 했으니, 마음만 맞으면 되지 부귀한 뒤에라야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공주는 금팔찌를 팔아서 밭과 집, 노비, 말과 소, 각종 그릇을 사들여 일상 생활의 용구를 모두 갖추었다.

“절대로 시정 사람이 파는 말은 사지 말고, 임금이 타던 말 가운데 병들고 여위어 내 버린 것을 가려 사오십시오.”

온달은 그 말대로 하였다. 공주는 부지런히 말을 길렀으므로 말은 날로 살찌고 건강해졌다.

고구려에서는 항상 3월 3일이면 낙랑의 언덕에 모여 사냥을 하고, 그 날 잡은 멧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의 신에게 제사 지냈다. 그 날이 되어 왕이 사냥하러 나가자, 여러 신하와 5부의 군사들이 모두 따라 나섰다.  

이 때에 온달도 그 동안 기르던 말을 타고 따라갔다. 그는 항상 남보다 빨리 달렸고, 짐승도 많이 잡았으므로, 따를 자가 없었다. 왕이 그를 불러서 이름을 들어 알고 놀라며 특별히 칭찬을 하였다.

그 때, 후주의 무제(武帝)가 군사를 일으켜 요동으로 쳐들어 왔으므로,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배산(拜山) 들에서 맞아 싸웠다. 온달이 선봉이 되어 날쌔게 싸워 적군 수십 명을 베어 죽이니, 여러 군사들이 이 기세를 타고 분격(奮擊)하여 크게 이겼다. 전쟁에서 세운 공을 논함에 모두 온달을 제일이라 했다. 왕은 가상히 여겨 감탄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내 사위다.”

하고, 예를 갖추어 그를 맞아들이고 벼슬을 주어 대형(大兄)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왕의 총애가 더욱 깊어지고 위엄과 권세가 날로 성하였다.    

양강왕이 왕위에 오르자 온달이 아뢰기를,

“신라가 우리 한강 북쪽 땅을 빼앗아 군현(郡縣)을 삼으니, 백성들이 원통하게 여기며 늘 부모의 나라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저를 못났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군사를 내 주신다면, 한 번 나가 싸워서 반드시 우리의 땅을 되찾겠습니다.”

하니,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떠날 때 온달은 맹세하기를,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嶺)의 서쪽 땅을 되찾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겠다.”

하였다. 그런데 온달은 신라 군사와 아단성(峨旦城) 밑에서 싸우다가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중도에서 죽었다.

장사를 지내려 하니 영구가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와서 온달의 관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마음놓고 돌아가소서.”

그러자 드디어 관이 움직여 장사를 지낼 수 있었다.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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