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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눈보라치는 한겨울의 흥남 철수작전 이 화면을 꽉 채우며 영화는 시작한다.
중공군의 투입으로 할수없이 후퇴해야 하는 상황, 흥남항구에서는 무기와 군수물자들을 가득 실은 마지막 군용선이 부두를
떠나고자 하는데.. 부두에는 수만의 피난민들이 남부여대 가족들을 이끌고 죽기살기로 부두로 나와 배를 얻어타고자 한다.
배를 얻어타고라도 피난을 가야만 쳐들어오는 중공군으로부터 목숨을 건질수 있는 절대절명의 상황이다.
이 암울한 상황에서 한국의 젊은 고문단의 간절한 설득으로 미군함장은 군수물자를 다시 내리고서라도 피난민을 태우고자 하는
실로 숭고한 휴매니티를 발휘하는 고귀한 결단을 내린다. 이것은 실제 역사 기록이다. (네이버 백과 "흥남철수" 참조)
주인공 윤덕수는 겨우 일고여덟의 꼬마아이로서 동생들을 데리고 부모를 따라 필사적으로 군함에 기어 오른다.
그러나 인산인해 기어오르는 피난민들로 인하여 등에 업은 막내동생 막순이를 바다에 떨어뜨리고 이것을 본 아버지는 다시 내려가
막내딸을 찾고자하나.. 끝내 찾지도 못하고 다시 배에도 오르지 못한채로 그들은 생이별을 하게 된다.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그들이 남쪽에 내려와 터를 잡은곳은 먼저내려와 부산 국제시장에서 미제물건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고모네의 판잣집 건너방이다.
"가장은 가족을 지켜야한다...이제는 네가 가장이여~! "
떠날때 아버지의 이말은 어린 덕수가 평생을 짊어지고 살게되는 신조가 되며 그의 전 일생을 묵는 쇠사슬이 된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당시 모든 피난민들이 그러 했듯이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피난생활을 시작한다.
부두에서 생선궤짝을 만들어 파는 일부터 시작하여 ..청년 덕수는 오로지 어머니와 동생들의 생존을 위하여 장남으로서 지워진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숙명으로 알고 하루하루의 힘겨운 삶을 영위 하는데...
열심히 뒷바라지 한 결과 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서울대학교에 합격은 하였는데 오히려 등록금때문에
덕수는 걱정이 든다.
고민끝에 그는 서독 광부모집에 친구와 함께 자원한다. 머나먼 독일에가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광부일을 해서라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더 벌고자 하는 절대절명의 목표로 온 몸을 내던지는 가장이된 아들의 숙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희생정신에 마음이 숙연하다.
우리 아버지들이 그러했듯이 장남은 남들보다 더 대접 받는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보다 집안상황을 더 살펴야 했고
가족의 생계를 더 살펴야 하며 자신의 희생을 더 필요로 하는 자리였다.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는 수많은 동남아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그때는 우리는 참 가난한 나라였다. 국민소득이 북한보다 낮았고 그들과 대등하게 된건 겨우 70년도 초반부터 아닌가 생각이 된다.
그 가난했던 한국이 짧은 시간안에 이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것은 실로 세계 역사상 아니 인류역사상 전무한 기록이 될것이다.
오직 이처럼 피땀흘려 일한 그 시대의 주역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번영이 있는 것이다 .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이것을 아니라고 말할수 있을까?..
지금도 생각나는데..서독 뤼프케 대통령의 방한을 기억한다. 선진국에 구걸하다 시피 들여온 차관으로 겨우 국가 경제 개발계획을
수립하던 그 시대... 변변한 공장도 없고 자원도 없는 한국이 외화를 벌어 들일것은 인력수출과 머리털로 가발 만들어파는것들 외에
무엇이 있었을까. 그떄 우리 형님 누이들이 독일로 파송되어 귀한 달러를 벌어 들였고 국가 경제의 밑걸음이 된것을 우리 모두 안다.
서독에 파견된 광부 덕수.. 말도 안통하는 그곳...지하 막장에서 탄을 캐는 그 고생은 이루 말 할수 없다. 어느 휴일날 그는 강가에서
파독간호사 출신의 한국 여자 영숙을 만난다. 영숙은 파독 간호보조원으로서 그들이 하는일은 독일 간호사들이 하지 않으려는
힘든 일들- 시체를 닦는일, 그들의 오물을 닦아주는 일등..힘든 일들이다. 지하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들과 진배없는 힘든 일들을 이땅의
누님들이 독일까지 가서 한 것이다. 내 누님의 친구도 이떄 독일 간호사로 갔다.지금은 미국남편 만나 미국에서 잘 살고 있지만..
실제 우리가 곁에서 경험했던 생생한 고난의 역사이므로 더욱 실감이 난다.
외로운 그들은 연정이 싹트게 된다.. 삭막한 외국생활에서 한줄기 위안이요 유일한 낙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날 덕수가 일하던
광산에서 사고가 났다. 무너져 내린 갱 안에 갇혀 버린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간 영숙은 구조가 위험하다고 말리는
독일 관리자를 설득하고자 온갖 힘을 다하나 그는 냉정히 구조투입을 거부한다.
연인 덕수를 구조하고자 하는 영숙의 혼신의 노력에 감동을 받은 광부들이 드디어 제지를 뚫고 단체행동으로 구조에 나섰다.
머나먼 독일땅에서, 위험하다고 구조를 포기하고 지하 깊숙히 생매장 된채로 동족이 죽어가는 것을 어찌 두고만 볼 수 있겠는가?
피는 물보다 진하고, 외국에서 동포는 내 형제가 된다. 그것이 민족이요 동족애다.
드디어 덕수는 천신만고 끝에 구조되고... 이를 계기로 덕수는 영숙과 더욱 가까워 지게 된다.
극진한 간호로 회복하고.. 얼마되지않아 광부들의 비자가 만료되어 덕수는 귀국하지 않을수 없다. 떠나기전 영숙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함께 한국으로 돌아갈것을 부탁했으나.. 영숙은 더 일을 해야하므로 덕수를 따라갈 수 없다.
이별의 아쉬움으로 그들은 마침내 사랑의 마지막 밤을 함께 하게된다.
귀국한 덕수는 그동안 송금한 돈으로 집도 번듯하게 장만되었고 동생들도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음에 가장으로서 보람을 느꼈다.
독일을 떠난지 몇개월 만에 부산 국제시장의 가게로 갑자기 영숙이 찾아온다. 독일에서 마지막 밤에..영숙이 덕수의 아이를 가진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고 덕수는 더욱 열심히 가게일에 매달려 온힘을 바쳐 살림을 일군다.
같이 가게를 하던 고모가 죽게되자 백수건달인 고모부는 그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가게를 내어놓는다.
이에 덕수가 빚을 안고 가게를 인수하게되고.. 돈을 더 벌어야 될 목표가 생겼다.
그러던 차에 월남전 파병이 시작되고.. 덕수는 돈을 더 벌수 있다는 말에 민간 수송지원단에 지원한다.
극구 말리는 부인 영숙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전장터에 또 가고자 하는 덕수에게는 오로지 돈벌이의
목표뿐이었다.
"이제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 살아보세요"라며 하소연함에도 불구하고 심장에 새겨진 낙인처럼
그는 장남으로서 스스로 짊어진 가장의 숙명을 좇아 불나방처럼 전장에 또 뛰어든다.
포탄과 화약냄새 진동하는 월남땅에서 그는 민간인 으로서 수송지원단으로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베트콩의 습격으로 살상의 현장에서 겨우 살아남는다. 월남 아이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며 덕수는 자신의
어릴때 모습을 발견한다. 베트콩의 진입에 그들은 그 지역을 철수를 하고자 하는데 소개차량 앞에 일단의 월남인 들이 자신들도
데려가 달라고 통사정을 한다. 덕수는 어릴떄 흥남 철수를 기억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
미군함이 군수물자를 내려놓고 피난민들을 더 실었듯이..
그가 입은 휴매니티의 재창조다. 자기가 입은 은혜를 잊지않고 남에게 다시 베풀어주는 따뜻한 마음씨.
이때 다리에 부상을 입은채 덕수는 절뚝거리는 다리로 귀국한다. 그동안 아내 영숙이 가게를 운영하며 억척
스럽게 가정을 지켜왔으며 동생들도 잘 컸다. 드디어 여동생 꽃순이를 세간내어 시집보낸다. 아버지 대신
가장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덕수에게서 끝없는 희생과 가없는 가족애를 본다.
이제는 늙어 노모가 된 어머니,,덕수도 허연 머리의 중년이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남북적십자 회담으로 이산가족 찾기가 온 나라를 눈물바다도 만들던 무렵..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지금도 이노래를 들으면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충혈됨은 우리 겨례가 안고 있는 크나큰 슬픔이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애간장 녹는 절망때문이다. 이북에 아무 친척도 없는 나도 그러할진데 하물며 월남가족이나
이산가족의 당사자의 심정은 어찌 필설로 표현할수 있을까 싶다.
아버지와 동생을 찾는 이 장면에서 드디어 나도 참았던 눈물이 소리없이 흘렀다.
감정이입을 지나 영화안에 덕수가 나요 내가 이땅의 이산가족 덕수가 되어버렸다.
억장이 무너지는 애끓는 기다림과 염원을 실현하는기쁨에는 손바닥이 얼얼하게 기쁨으로 박수쳐주고 이루지
못한 꿈에는 뜨거운 격려와 아쉬움을 나누는것, 그것은 하나되어 공감하는 즐거움이다.
우리 민족의 동질성과 겨례의 한에 전국민 모두가 가슴 졸이며 뜨거운 갈망으로 동참했던 그 역사를 기억한다.
너 나가 없이 우리 모두의 절실한 바램이요 가슴 벅차는 갈망이었던 그때의 여의도 광장의 역사는 잊지 못할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찾지 못하였으나 막내동생 막순이는 찾게되었다.
홀로 떨어진 막순이는 부산 고아원에 옯겼다가 미국 가정에 입양되었다. 미국남편 만나 미국시민으로 새 운명을 살게되었다.
그녀도 헤어진 가족들을 얼마나 그리워 하며 자랐을까.. 결국 그들의 눈물어린 재회에 나는 또 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움의 끝에 타는 목마름으로 그들의 뜨거운 재회에 가슴 깊이 공감하며 기쁨의 눈물을 함꼐 흘려주는것..
누가 뭐라 해도 그것이 영화 제작자와 혼신을 다한 배우들에 대한 예의 아닌가?
분단후 6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아직도 북에 남겨진 가족의생사조차 알수 없는 실향민들이 많다.
그들의 애끓는 기다림과 희망이 이제는 역사의 그늘속으로 사라져 가는데,언제나 겨레의 과업이 성취될까 ,
북쪽 왕조 정권의 행태를 보면 아직도 요원하다.
덕수에게 가게는 생존의 목표 그 자체였다.
언젠가 그곳으로 찾아올지 모르는 헤어진 인연을 기다리며 그는 늙어갔다.
가게를 그만 두고 판다는것은 생의 목표를 잃어버리는것과 같다.
산등성이에 지어진 덕수의 집 옥상에서 바다쪽을 바라보며 부부는 지나간 세월을 회상한다.
마도로스가 되고 싶었던 덕수의 눈에는 세월이 흘러 이제는 생존조차 보장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한쪽 다리까지 저는 노인이 된 덕수, 깊게패인 주름사이로 주마등 처럼 지난 고단한 세월이 스쳐간다.
전쟁직후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그대로 보여준 이 영화에서 험난한 역경속에서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한 장남의 시지프스의 바위 같은 삶의 무게와 그 혼신의 열정에 숙연한 마음으로 깊이 공감하였다.
잿더미를 딛고 일어나 세계무대에 우뚝선 우리 한국..!
폐허를 딛고 우뚝 일어난 우리는 역시 저력있는 민족임을 일깨워 준 영화였다.
'남자가 흘릴것은 눈물뿐이 아니다' 라고 화장실에 써 있다는 것은 남자도 눈물 흘릴수 있다는 말이렸다..
얼마전에 영화도 가슴찡하게 날울렸는데 며칠 만에 또 영화를 보고 눈시울 붉혔다.
나이들면 모든것이 메마르고 건조해지는데, 감동하고 이렇게 나마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것은 좋은일이다.
올해엔 영화를 더 자주 보고싶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내가 사는 날까지...
더 자주 공감의 기회를 가짐으로서 더 많이 감동하고 즐기며 울고 웃고..
그럼으로서 올 한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가기를 소망한다.
2015/1/7
-SI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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