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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띄워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마지막 편지를 누구에게
언제 보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돌이켜보면
젊은 날의 고뇌와 야망 ,
사랑과 눈물이 스며있던 편지들은
간절하고 애틋했다.
그 편지를 받았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며 살까?
그들은 아직도
나를 잊지 않았을까?
그리고 내가 쓴 편지가
세상에 단 한장이라도 아직
남아있을까?
있다면 누구의
책갈피에 숨어있을까?
어느 땐가
책장을 정리하다
묵은 책의 갈피에서
편지가 떨어졌다.
친구가 보낸 편지는
바래고 바래
펜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걸 보며 왜 그리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는지,
왜 가슴이 시렸는지
그 안쓰러움의 대상이
그 친구였는지 색 바랜 편지였는지
아니면
친구와 떨어져 살아온
세월이었는지
늙어가는 나였는지
분명하지가 않았다.
분명한 건
내가 편지를 쓸 일이 없듯이
편지와 편지 속의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줄 쳐진 편찰지나
은은하게 색이 깔린 도화지에
촘촘히 사연을 수 놓았지 ..
읍내에 하나밖에 없는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샀지
그래 맞아,
우체국 계단에는 늘
화분이 놓여있었던 것 같아,
하얀 봉투에
우표를 침 발라 붙이고
떨어질까봐 몇번을 문지르고
꾹꾹 눌렀지.
우체통에 집어넣고도 미심쩍어
몇번을 쳐다봤지,
잘가라 편지야 ..
그러면 부모에게
연인에게 친구에게로 달려갔던 편지.
그리고는 얼마나
애타게 답장을 기달렸던가.
그렇다.
편지는 숙성되었다.
보낼 때는 덜 익었더라도
가면서 발효되었다.
보내는 사람의 마음에서도
받는 사람의 가슴에서도 사연이 익었다.
편지는 마음과 가슴을 돌아나오며
맑게 헹궈졌다.
그리고 편지는
이틀이나 사흘을 기차나 버스나
배를 타고 달렸다.
바람을 맞고
볕을 쬐고 손때가 묻었다.
집배원 아저씨는
주소가 가리키는 대로 골목을 뒤지고
들길, 산길을 걸어
지상의 단 한사람에게 다가가
단 하나뿐인 이름을 불렀을 때
편지는 익었다.
그래서 즐거움, 슬픔, 아픔,
그리고 기다림과 그리움이 되었다.
요즘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e-메일로
언제든 서로를 부른다.
뭐든지 생생한 것
날 것들을 선호한다.
하지만 e-메일이라는 것은
보내기 쉽지만 지우기도 쉽다.
누군가의 손으로
내 이름이 또박또박 쓰여진 편지는
멀잖아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밤새 쓴 편지를 차마,
부치지 못한 사람이나
눈물이 번진
편지를 받아본 사람은 안다.
그리움도 자란다는 것을,
익는다는 것을 ..
이 겨울밤엔 자기 자신에게
엽서 한장 띄워보면 어떨까.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외롭지 않느냐고
아직도 거기 사느냐고 ..
그리움도 세월가면 풍화되는가,
희미한 그 옛날
그리움이 다시 그립다.
하얀 겨울이면
더 그리워진다.
창 밖을 내다본다.
지금 중천에는
섣달 스무 나흗날
그믐으로 가는 달이 구름속에
희미하게 춥다.
오늘밤에는
내가 나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
고마웠다고 ..
곧 설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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