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최상의 가치관은 ‘명예’다. 명예는 공직자의 생명과 같다. 명예는 스스로를 수신(修身)해야 지킬 수 있다. 수신치 못해 허물이 논란되면 명예를 잃는다.
국민의 정부 때 청와대 P 실장은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과 관련 ‘통화는 했으나 개입은 없었다’로 일관했었다. 그는 현재 불행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 청와대 P 실장의 동국대 신모 교수 관련 건이나 J 비서관의 부산국세청장 관련사건 모두 ‘모르쇠’다. 집권층의 무지가 극치에 달했거나 국민을 깔보거나 둘 중에 하나다.
혹시 ‘기자입 대못질’정책이 이런 정권말기에 생산될 온갖 의혹들의 논란을 예견하고 차단하려는 계책과 술수는 아닐까. 만약에 모든 언론이 열흘 정도 정부관련 기사를 일체 싣지 않는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그래도 ‘대못질’이 계속 될까 의문이다. 정치적 잇속에 따라 생각(?)이 많은 집권세력의 행태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그러나 앞서 언급한 일례들이 전체 공직자들의 자화상만은 아니다.
공직자의 3금(禁) - 교만 잇속개입 국민깔보기
필자는 지난달 30일 충남 행정부지사와 오찬을 거쳐 이완구 지사와 티타임을 가졌다. 지난 80년대 초 필자가 언론에 입문하기 전 현직 경찰관 시절, 충남 H경찰서에 초임 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이 지사를 1년여 모신 적이 있었다. 이지사의 큰아들이 결혼때가 돼서 행정부지사에게 혼례식 여부를 물었다. 행정부지사에 따르면 올 1월초 확대간부회의 때 이 지사가 “어제 아들이 결혼했는데 일체 외부에 알리지 않아 미안하게 됐다”하더라는 것. 최 부지사는 최측근에서 모시고 있는 본인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진중한 뜻이 있었을 것’으로 즉답을 피했다.
오후 티타임 때 필자가 이완구 지사에게 사유를 물었다. 이 지사는 ”미안하다. 나도 고심을 했다. 충남도에 있는 건설회사 3500개에 공무원과 유관기관 분들이 도지사 아들이 결혼한다고 하면 그냥들 있겠나. 축의금으로 수십억 대 챙겼다고 회자할 것이다. 큰 허물이 될 수도 있다. 일가친지는 물론 신랑신부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말이 날까 해서다. “내가 허물이 없어야 도지사의 직분을 명쾌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필자가 되물었다. 축의금 사절로 혼례식을 할 수도 있지 않았나고. 이 지사는 “축의금 사절로 될 일 아니다. 공관과 주변 곳곳에 알게 모르게 봉투를 내던지고 갈 것이다. 이를 무슨 수로 모두 차단하겠나”라고 했다. 이 지사는 필자에게 “지인들께 미안하다”고 주변의 이해를 구했다. 다시 물었다. “도지사가 아니면 알렸겠나” 라고. 이 지사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 지사의 고뇌가 엿보였다. 명예가 뭐길래. 고금에 흔치 않은 결단이다. 지사실을 나서는 이 지사의 뒷모습에서 찡하는 마음의 전율을 느꼈다.
‘횡재 가능한 혼사’를 앞에 두고 이 지사는 명예를 택한 것이다. 아들과 가족 친지들에게 일생의 회한으로 남겨질 수도 있는 일이다. 이 지사는 명예 때문에 수신의 고뇌를 감수했다. 잘 연마돼 광채가 빛나는 화강암 같은 높은 가치관과 겸허한 내면의 인품에서 인고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공직자에게 명예와 실리가 상충할 때, 실리를 택하는 경향의 이 시대에 시금석 같은 경종을 울리는 사고다.
공직자는 수신해야 명예 지켜
이 지사는 40대 초반 충남지방경찰청장 때 YS에게 발탁돼 국회부의장을 지낸 조부영의원 지역구인 청양·홍성 지구당 위원장으로 임명돼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이 지사는 위원장 출정식 때 “일찍 출세해 젊은 나이에 지방경찰청장까지 했으니 남자로서 세상에 욕심낼 일이 뭐가 있겠나. 우리의 선조들이 대대로 물려온 이 땅의 논두렁 밭두렁을 함께 밟고 다니며 잘살고 윤택한 나라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일에 내 일생을 바치고 다시 이 땅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자치제 출범 후 단체장 자녀의 혼사는 ‘횡재사업’으로도 일컬어 왔다. 공무원과 사업자가 합법적 ‘로비창구’로 여기는 게 단체장 자녀의 혼사다. 공직자에게 실리는 곧 허물이 될 수 있다. 높은 공직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금기는 ‘교만·잇속개입·국민깔보기’다. 공직자는 허물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명예를 지킬 수 있다. 숱한 공직자(공인)들이 평생을 쌓은 명예를 하루아침에 사상누각으로 만들곤 한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이 지사의 공직자관에 공직자들 자화상을 비추어 보라. 위정자들과 고위공직자들에게 고언을 남기고 싶다.
“정상에 오른 후 하산 길을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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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지사의 공직자관(觀)
허성호 | | 2007.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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