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수필등,기타 글

四知=천지간에 비밀이 없음

淸潭 2014. 6. 23. 09:44

四知(사지) 


    사지(四知)라는 말은 천지(天知)·지지(地知)·아지(我知)·자지(子知)이다. 이 넷을 간추려 '사지(四知)라고 하는데 이것은 천지간에 비밀이 없음을 뜻한다.

후한(後漢)시대의 조정은 환관들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들은 황제 위에 군림하며 권도를 무자비하게 휘둘어 댔다.

 
정치와 관료가 문란하고 부패했던 시대였으니 백성들의 살림이 어려웠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때라고 하여 맑은 선비나 관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6대 안제 때에 해박한 지식과 청렴결백으로 출중한 인격의 소유자인 양진(楊震)이 그런 인물이다.

 
그는 당시 사람으로부터 관서공자(關西公子)라는 칭송을 들을 만큼 청렴결백했다.

 
어느 때인가 양진이 동래군(東萊郡) 태수로 부임할 때였다.
임지로 가는 도중에 날이 저물어 창읍(昌邑)에서 하룻밤을 쉬어가게 되었다.

 
객사에서 외로움을 달래고 있을 때에 그 지방 현령으로 있는 왕밀(王密)이라는 사람이 밤늦게 찾아왔다.

 
그가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 왕밀을 발탁한 일이 있었다.
그의 천거로 인해 왕밀은 벼슬길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둘은 지난 날의 여러 얘기들을 나누며 밤이 깊어진 것까지 잊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에 왕밀은 황금 열 냥을 꺼내 양진의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갑자기 준비한 것이라 변변잖습니다. 약소하지만 시생의 성의로 아시고 받아 주십시오."

 
"나는 그대를 잘 알고 있는데, 그대는 나라는 인간을 잘 모르는 모양이군. 이게 무슨 짓인가?"


"깊은 밤의 일이니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발 받아 주십시오."
"그 무슨 소리. 자네와 내가 알고 하늘과 땅이 알고 있잖은가. 그런데 어떻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 하는가."

 
왕밀은 매우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그 뒤에 한나라의 안제(安帝)는 자신의 유모를 위해 장려한 저택을 세웠다.
그 규모는 엄청나 아주 호화롭고 정교했으며,그 때문에 막대한 금전과 사재가 소비되었다.

 
유모와 그 달은 황제의 도타운 대우에 만심(慢心)이 들어 일부 환관과 결탁해 정치에까지 참견했다.

 
그리고 간사한 사람을 중용하고 올바른 사람을 멀리하며 뇌물을 탐했다.

이를 본 양진은 국가의 장래가 매우 걱정되어 황제에게 상서하여 일당의 죄상을 폭로했다.

 
"전에 고조께서는 대신들과 공이 없는 자에게는 상을 내리거나 작위를 봉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 이제는 공이 없는 자도 봉록을 받고 있으니,백과 흑이 뒤섞이고 청과 탁도 분간이 되지 않으며,사람들의 의론도 뒤죽박죽이고,돈이 만사를 지배하며,조정의 안팎을 불문하고 부정과 오직(汚職)이 제 세상인 양 우쭐거리고 있습니다."

양진의 지탄을 받은 패거리들은 전부터 그를 거북스럽게 여기고 있는 참에 이 일로 더 깊이 원한을 사게 되었다.

 
그들은 황제를 꼬드겨서 그를 파면시키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양진은 뤄양 변두리 역참에서 전송나온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대관이 되었으면서 간사한 무리들을 바로잡지 못했다. 정말 부끄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독을 마시고 자살했다.
그때 나이 70여 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