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맛 있는집

우리는 삼겹살이 식상하다고 한 적 없다

淸潭 2014. 5. 9. 20:58

 

우리는 삼겹살이 식상하다고 한 적 없다

입력 : 2014.05.09 09:00

영원한 국민 육류, 비 오는 날 소주와 함께 먹고 싶은 부동의 1위 안주 삼겹살. 국내 삼겹살 시장점유율이나 변하지 않는 한국인의 삼겹살 사랑을 봐선 삼겹살은 수백 년 이상 한국 땅에 뿌리내린 식문화의 한 단면 같다. 그러나 그 역사는 기껏해야 30년이다.
단시간에 국민 육류로 부상하며 여러 형태로 변모해온 삼겹살은 과연 어느 별에서 온 아이템인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뿌리 깊은 먹거리 문화도 아니요, 심지어 서양에서는 버리는 부위인 삼겹살에 우리는 왜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그동안 우리는 여러 형태의 삼겹살을 먹어왔다. 대중성 짙은 스테디셀러 아이템이라 유행을 타지 않은 것 같지만 살펴보면 그때마다 트렌드를 달리했고 조금씩 변모해왔다.

신한카드사에서 분석한 ‘서울 25개 구별 신용카드 매출 1위 식당’ (2013년 신한카드 사용액 기준)에서 10대부터 60대까지 가장 많이 방문하는 음식점으로 고깃집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얼마 전에는 400년 이상 전통의 양념육을 제치고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한국 음식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최근 들어 삼겹살은 서민형 먹거리에서 고급 육류문화로 업그레이드됐다. 대략 서너 해 전부터 두툼하고 묵직한 스테이크형 삼겹살과 목살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삽시간에 돼지고기 시장의 트렌드를 쥐고 흔들고 있다. 이제 최고급 원육 아니면 안 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질 낮은 냉동육은 시시해졌다. 외식업주에겐 참기름보다 고소한 육즙의 질 좋은 원육과 적절한 숙성, 그릴링 노하우를 확보하는 일이 관건이 됐다. 이쯤 되면 ‘서민형 육류’ 타이틀도 이젠 조심스럽게 내려놔야 하지 않을까.

예전의 삼겹살이 아니다. 삼겹살 시장은 앞으로도 변해갈 것이고 품질도 비주얼도 매력도 조금씩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삼겹살은 우리가 아는 만큼 식상하지 않다. 아니 처음부터 삼겹살을 식상하다고 한 적이 없었다. 찰나처럼 빠르게 지나는 외식 트렌드 안에서 삼겹살은 어떤 변화를 거쳐 왔고 얼마만큼의 무한 가능성을 원동력으로 창업 시장을 가동하고 있을까. 영원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삼겹살을 집중 조명했다.

세겹살? 삼겹살?
‘연탄 화덕 위에다 은박지를 깐 두꺼운 쇠판을 얹어놓았고 (…) 쇠판이 어느 정도 달구어졌는지 소녀는 돼지 삼겹살을 쇠판 위에 올려놓았다. 기름이 지글지글 탁탁 소리를 내며 탔다.’

1980년 11월 4일자 경향신문에 나온 소설 내용 중 일부다. 우리가 흔히 삼겹살을 먹는 형태, 즉 예열된 불판에 고기를 얹어 구워먹는 방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가 1980년대 초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79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 신문을 보면 ‘죽우로 유명하던 우리나라는 고기구이 요리가 발달했지마는 돼지고기 구이만은 발전을 못한 것 같다. (…) 그간 우후죽순처럼 주점가에 늘어가던 삼겹살집에도 여름이 시작되면서 사람의 발길은 눈에 띄게 뜸해졌다’는 구절이 나온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삼겹살은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삼겹살은 국민육류의 타이틀을 쥐고 있는 것에 비해서는 역사가 짧은 편이다. 삼겹살집이 생기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중후반, 삼겹살이 어느 정도 대중화 되고 구이문화를 즐기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초반이다. 고작 30여년이 전부다.

조선시대 조리서인 ‘시의전서’나 ‘조선요리법’, 1957년 황혜성 선생이 쓴 ‘이조궁정요리통고’ 등을 찾아봐도 육류 관련 기록이라고는 달달한 간장 양념에 버무려 숯불에 구워먹는 양념석쇠구이가 전부다. 삼겹살은커녕 양념하지 않은 생고기의 흔적조차 없다. 전통이나 역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현대인에 입맛과 식습관으로 뿌리 내린, 제2의 한국 육류문화다.

그러나 삼겹살 부위는 오래 전부터 언급되어왔다. 1934년 11월 3일자 동아일보 신문 내용에는 ‘도야지 고기의 맛으로 말하면 소와 같은 부위가 많지 아니하나 뒤 넓적다리와 배 사이에 있는 세겹살이 제일 맛이 있다고 하고 그 다음으로는 목덜미살이 맛이 있다고 하고…’ 라는 내용이 나온다. 삼겹살은 원래 세겹살이라고 불렸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방과 살코 기를 세 겹으로 포개놓은 것처럼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한 겹, 두겹, 세 겹의 의미. 그러나 세겹살이 왜 삼겹살이 됐는지는 모른다.


	삼겹살
사진=월간외식경영
삼겹살 구이문화가 시작된 1980년 이후로 삼겹살은 여러 형태로 변화하며 발전했다. 정육점 식당에서 무쇠불판에 알루미늄호일을 깔고 그 위에 슬라이스한 냉동 삼겹살을 올려 구워먹는 방식이 1세대. 널찍한 솥뚜껑불판에 삼겹살과 김치, 콩나물, 버섯, 양파 등을 한꺼번에 올려놓고 굽는 솥뚜껑삼겹살과 된장이나 고추장, 와인 등에 숙성시킨 이색 삼겹살이 2세대. 그 사이 대패삼겹살이나 저가형 삼겹살집들이 우후죽순 생기도 했으나 ‘생삽겹살’ 키워드가 나타나면서 주춤했다.

두툼한 숙성삼겹살 ‘센세이션’

새로운 삼겹살 문화가 형성될 때마다 크고 작은 센세이션이 있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문화보단 한때 유행이나 트렌드에 불과했다. 콘셉트의 변화일 뿐 가장 근본적인 원육 품질은 개선되지 않았다. 여러 갈래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서민형 육류, 저가형 이미지 쇄신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흐름이 2010년을 기점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기존 삼겹살보다 열 배 이상 두툼한 두께의 괴물 같은 삼겹살이 등장했다. 가장 큰 변화는 원육의 품질이다. 질 떨어지는 싸구려 원육을 가리기 위해 냉동시키고 얇게 썰었던 때와는 달리, 두께 3cm 이상의 스테이크형 삼겹살을 구현하려면 원육이 신선해야 하는 건 당연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삼겹살이 대세였다면 이번에는 신선육, 고급육의 키워드가 중심에 선 것이다.

두 번째는 그릴링의 변신, 즉 참숯직화의 탄생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불판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육 품질이 월등하게 업그레이드되면서 고기 맛을 최상으로 끌어올려주는 그릴링이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됐다. 아마 3cm의 두꺼운 고기 육즙을 그대로 저장하면서 타지 않게 굽기 위한 업주들의 고민이 노하우가 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이때 숯불직화의 강력한 한 방이 화두로 떠오른다. 그 동안 직화구이 문화는 소고기에만 적용됐다. 기름기 많은 삼겹살을 숯불화로에 직화 방식으로 굽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숯불에 기름이 뚝뚝 떨어 질 때마다 뿜어 나오는 연기와 잿더미를 감당할 업주는 없었다. 제주도에는 간간히 숯불을 사용하는 집들이 있었다. ‘근고기’라고 해서 등심이나 안심(삼겹살이나 목살 부위가 포함되기도 했다) 등 비교적 지방이 적은 부위를 큼직하게 뭉텅뭉텅 썰어 숯불에 구워 멜젓에 찍어 먹는 방식이었다.

숯불직화 도입은 두툼한 스테이크 삼겹살, 목살을 굽는데 최적의 방식이다. 빠른 시간 안에 겉면을 익히기 때문에 육즙이 그대로 저장된다. 겉은 노릇노릇하게, 속은 부드럽게 익어 쫄깃쫄깃한 식감이 인상적이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이 입안 가득 퍼진다. 고기에 숯불이 직접적으로 닿기 때문에 불맛도 은은하게 밴다. 그러나 잘못하면 타기 십상. 숯불과 불판과의 적절한 거리 조절이 필요하다.

불맛보단 원육 고유의 참맛을 구현하기 위해 막힌 불판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때 참숯과 가스착화 방식을 동시에 사용, 2~3분 안에 열을 300℃까지 끌어올려 직화 때처럼 고기 겉면을 빠르게 익힌다. 숯불이 고기에 직접적으로 닿지 않기 때문에 불맛은 덜하나 직화보다 덜 탄다는 장점이 있다.

상차림, 임팩트 있는 구성으로 ‘선택과 집중’

원육과 그릴링도 마찬가지지만 상차림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특색 없는 찬가지를 늘어놓기보다 임팩트 있는 것들만 선택해 간결하고 단출하게 차려낸다. 원육 자체가 좋기 때문에 소스나 별다른 곁들임 찬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쌈장이나 기름장(맛소금에 참기름 살짝 부어내는 장)은 빠진 지 오래다. 대신 많이 짜지 않고 질 좋은 천일염을 볶아서 낸다. 대구시 북구 <맛찬들왕소금구이>는 ‘몰로키아’라는 허브와 양파가루, 마늘가루 등 수십 가지 원료를 배합해 만든 소금을 낸다. 잡냄새가 없고 유해물질을 제거해 몸에도 좋다. 알칼리 성분이라 단맛도 살짝 난다. 맛있는 고기는 좋은 소금에만 찍어 먹어도 맛이 최상이다.

쌈장 대신 갈치속젓이나 토하젓, 자리젓을 제공하기도 하고 삼겹살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다양한 장아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전에는 고추나 양파 장아찌 정도가 전부였다면 요즘은 명이나물이나 알타리무, 무청, 방풍나물, 토마토 등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해 이색장아찌를 만든다. 김치도 일반 김장김치 외에 백김치, 열무 김치, 갓김치, 양파김치, 묵은지, 겉절이 등 개성과 지방색을 잘 살린 김치를 제대로 구현한다.

돼지갈비나 불고기 등 양념육은 술안주와 식사 개념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반찬을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삼겹살은 기름진 원육 맛을 잡아주는 ‘선택과 집중’형 반찬만 단출하게 구성하면 된다. 원재료비 를 줄이면서 효율적 운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고급 신선육과 숙성기술 확보 ‘과제’

가장 중요한 건 신선하고 질 좋은 고급육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신선육을 구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최상등급의 국내산 백돈을 찾으면 된다. 돼지고기는 마블링과 육색, 신선도, 육량 등에 따라 1+등급 부터 등외등급까지 나뉜다. 최상등급과 등외등급 사이의 품질 차이는 약 30%가량. 보통 전지와 후지, 등심, 안심 등의 부위는 등급별 편차가 거의 없다. 30%의 차이는 대부분 삼겹살과 목살의 품질을 반영한 것이다. 삼겹살이나 목살의 1+등급과 등외등급 간의 육질과 신선도 차이는 실제로 상당히 크다고 보면 된다.

3.5cm 숙성삼겹살의 시초인 대구시 북구 <맛찬들왕소금구이>는 경북 안동과 영주 고랭지 지역에서 사육된 고급 돼지고기를 사용한다. 고랭지 지역은 전체적으로 기온이 낮고 밤에는 영상 10℃까지 떨어진다. 날씨가 더울 때보다 물을 덜 마시고 사료를 더 챙겨 먹기 때문에 단백질 비율이 높다. 육질이 부드럽고 풍미가 더욱 고소하다.

그러나 이러한 고급돈육은 보통 70~80% 밖에 수급이 안 된다는 것이 유통업자들의 설명이다. 방법은 직접 발품을 팔아 안전한 유통라인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고급 원육과 디테일한 숙성 기술을 얼마만큼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돼지고기의 진실 YES or NO
일반 백돈보다 흑돼지가 더 우수하다? NO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마 흑돼지가 국내산 일반 돼지보다 평균 1.5배가량 더 비싸기 때문에 은연중 품질이 더 우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일반 돼지는 사육 개월 수가 5.5~6개월인 반면 흑돼지는 9개월 정도다. 그만큼 사료비와 작업 시설 관리 등에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단가가 비싼 것뿐.
물론 흑돼지만의 장점도 있다. 사육환경과 긴 개월수의 영향을 받아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쫄깃하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성분이 풍부해 고소한 맛도 뛰어나다. 그러나 껍데기와 육질이 단단해 3cm 이상의 두께로 냈을 때 겉과 속을 알맞게 고루 익혀 최적의 스테이크형 삼겹살 맛을 구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돼지고기 유통업자들과 고깃집 업주들을 모아놓고 돼지고기 그릴링 시식을 진행했다. 4cm가량의 두께로 잘라 구웠을 때 흑돼지보다 일반 백돈이 훨씬 부드럽고 감칠맛이 좋았다. 단 1등급 이상의 고급육이어야 한다. 장·단점은 다 있다. 어떤 쪽을 선택할지는 업주의 몫이다.

돼지고기 마블링과 등급 책정 기준은 아무 상관없다? NO
소고기와 마찬가지로 돼지고기 등급 책정 기준 역시 마블링이 80% 이상 차지한다. 그러나 도축 후 하루 지나 등급 책정을 하는 소고기와 달리 돼지고기는 도축하자마자 바로 등급을 책정한다. 체내 온도가 높은 상태라 마블링이 겉으로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흔히 ‘돼지고기 등급 책정 시에 마블링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오해가 생긴 것. 마블링은 도축 직전 X-ray 촬영만으로도 이미 파악 가능하다.

돼지고기는 바싹 익혀 먹어야 한다? NO
육회나 생고기처럼 날것으로 먹어도 무해한 것이 소고기인 반면 돼지고기는 날것은 물론 덜 익혀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다. 돼지고기는 속에 있는 기생충이나 균 때문에 바싹 익혀 먹어야 균이 사멸돼 안전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육류 내부 온도가 70℃ 이상만 되면 기생충이 사멸해 괜찮다. 고기 안에서 육즙이 나오거나 고기 사이에서 흰 색의 물이 나오면 안전하다는 증거다.

글·사진 제공 : 월간외식경영
(※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