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8천겁이라고 한다.
흔히 자식이 부모 탓을 하지만 부모를 선택하는 것은 자식이라 하니
원망을 자신에게 돌려야 할 듯 하다.
딸은 아버지의 전생의 연인,
아들은 어머니의 전생의 연인이라 하고,
자식이라 해도 인연에 따라 다르니
빚을 받으러 온 자식,
은혜를 갚으러 온 자식으로 나뉜다.
늙어 생각하니 부처님 말씀이 맞는 것 같다.
부모님과 나, 나와 아들 둘을 생각해보니 그 말씀의 뜻을
새삼 곰곰 새겨보게 된다.
그뿐 아니라 나를 괴롭힌 인연들에 대해서도 어느 생에서
얽힌 실타래가 있겠지,
유식( 唯識)에 대해 깊은 뿌리로 돌아가게 된다.
아침 일찍 현관벨이 울린다. 이 시간에 또 누구.
한참 일을 하는데 당치 않은 사람이 벨을 누르면 짜쯩이 난다.
1층이라 그런지 엉뚱하게 벨을 누르는 사람들이 많고,
신문사사람, 외판원조차 1층은 가까워서 벨도 가깝게 느끼는지
주저없이 기척을 할 때까지 1층 버튼을 마구 누른다.
욕실에서 아침 먹은 이를 닦다 성급히 나가니 이마트아저씨다.
어마나! 또 우리아들이 보냈네.
들으란듯이 웃으며 말하니 아저씨도 또 싱긋 웃는다.
그는 아무 말 안했는데 아드님이 효자시네요, 들은 것만 같다.
같은 사람이 세 번이나 같은 물건을 배달한다.
저번과 똑 같은 여섯개들이 햇사레 복숭아 두 상자다.
결제금액 38000원, 개당 얼마인지 저번에 계산했기에 오늘은 생략한다.
어제 윗층 분이 자기 며느리가 복숭아와 포도를 사왔는데
이맛도 저맛도 아니고, 맛이 없다고 돈 아까운 불평을 했다.
그 며느리가 요즘 사람같지 않게 시부모를 섬기는 태도를 알기에
싼 것 사올 사람은 아니고 몰라서 샀다, 라고 결론을 내리고
냉장실에 넣었다기에 밖으로 꺼내 숙성시켜 먹으라, 일러주었다.
아들이 제 집 동네가게에서 방울토마토를 샀는데 맛이 없더라고,
이마트 것이 확실히 맛있다, 말하더니 이번도 황도 복숭아가
껍질이 손으로 술술 벗겨지고 단물이 흐르고
지난 번처럼 잘 익어 맛이 좋았다.
치과에서 어중간 두어군 데 스켈링을 한 입맛에도 달콤하게 감돌았다.
하나 먹고 내가 금새 3300원을 한 입에 삼켰구나, 했다.
하여튼 말야, 당신은 노숙자가 되어야 할 사람인데 아들복은 있어서
날마다 호강하고, 명품아내 덕(?)에 좋은 음식 먹고, 팔자도 조오치.
복숭아를 들고 가는 등 뒤에 한 마디 던지니 못들은 척.
태산처럼 쌓인 억울함, 단 한번 변명도 못했던 것을 이렇게 갚는구나.
둘째가 어렸을 때 치아교정을 해주자 말했더니
네 자식이니까 네가 고쳐주라, 했는데
데려온 자식이 아니기 망정이지, 그 거 나는 아직도 성성한데 잊었나...
충고는 간단히 조용하게, 칭찬은 여럿이 다 들리게,
그렇게 배운 내게 제 동생들 뒷바라지에 애기 젖 굶기며 살았건만,
여덟살 아래라 여덟살 애처럼 늘 큰소리,
나이 많은 시동생 둘 앞에서 제 체면만 챙기며 닦달하더니.
송곳니 갈아 방석니 되어도 그 세월을 갚을까.
풋인사 인연 부여잡고 한 세월을 살았고,
팔자 앞세우고 문 나설 인연도 아니니 그것이 묘하도다.
아들이 전생의 연인이란 말은 그럴 듯 하다.
내 둘째 아들을 보면 음... 그랬나 보구나, 느낄 때가 많다.
이것 저것 계산해도 남은 것 없는 아버지에 우울증 어머니에....
첫 월급부터 보조를 하더니 근속 15년을 넘는 지금은 생활비 상납을 한다.
에구, 에구, 우리 아들!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 늘 애틋하구나.
언제나 눈물이 날 것 같아.... 가슴이 북받친 적이 많았다.
혼자 인심 쓰고, 혼자 착하고 제멋대로 주식하고, 알림장도 없이
늙은 아내에게 보내는 선물 - 쭈그러진 빈 깡통
주말엔 가끔 아들이 체중을 줄인다고 자전거를 타고 수지로 온다.
산책로인 천변길을 두어 번 알려주었더니 지난 주엔 점심을 먹으러 왔다.
처음 길이 낯설어 헤매며 왔을 때 길 좀 가르쳐 주라니 집안에 앉아
어디서 왼쪽으로 꺾어, 어쩌고 저쩌고.... 늘 그런식, 자기말로 떼우기.
앉아서 왜 저럴까. 나는 부지런히 채비를 하고 아들과 자전거 뒤를 따라나선다.
아파트 들어오는 초입에 돼지고기집, 맞은편 카센터,
신호등을 건너 아들이 긴 천변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갈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아들은 내가 멀리 조용한 곳으로 이사를 가겠다니까
제 집에서 반경 1Km 이내에 사셔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멀어도 지금처럼 자전거로 운동삼아 올 수 있는 거리라야 한다고.
담배를 태우는 동안(끊어야 한다고 내가 뭐라면 색시 얻으면 끊겠다고.
색시말은 듣겠다고, 나를 놀리는지 씩씩 웃으며 말한적도 있다)
나는 아들에게 <꽃보다 할배>라는 텔레비전 프로를 본 얘기를 들려준다.
거기 나온 이서진이가 아들과 같은 나이이고, 아직 미혼임을 강조하며
나는 화려한 얼굴의 장동건보다 이서진의 분위기가 훨씬 좋다고 말한다.
이서진도 아직 결혼 안했대. 이서진이 어떤 여자가 좋다는 얘기를 했는데 잊었어.
오직 이서진이가 결혼을 아직 안했고, 나이가 같다는 것이 아들과 나를 안심시키는
이유라도 되는양 또 말한다. 아들이 빙긋 웃더니 어머니, 그만 들어가세요. 갈께요.
그래, 그럼 어서 가아.
아들은 아파트 후문을 나서 페달을 밟으며 성근 철책 사이로 힐끗,
내가 서있는 아파트 마당을 들여다본다.
혹시 신호등 건널 때 이어폰 조심하고! 말했지만 행여 잊을까. 걱정했는데
오늘 들으니 차길로는 가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네가 준 암로은행 다이어리를 책정리하면서 찾았지.
지금 봐도 너무 좋더라. 그거 또 얻을 수 없나, 하니
그 은행 없어졌는지도 모른다고.
묻지도 않는데 나는 아들에게 책은 200권 쯤 버렸는데 이건 안버렸지.
흔들의자를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 앉아서 네가 준 다이어리를 보니까 기분이 좋아져.
어이구! 우리 어머니 잘 하셨어. 어머니가 편안하시면 됐지. 좋은거지.
아들은 항상 나를 달래는 것처럼 말한다.)
(한번은 우리집은 무슨 짐이 이렇게 많으냐고,
다 버리라고 말했을 때 아, 너도 짜증이 날만하지.
그래서 나는 바닥에 엎드린 아파트가 무슨 값이 나간다고
집 팔면 너한테 1억은 줄거야. 맹세처럼 말했다.
그리고 그말은 가끔 적금통장처럼 써먹는데 아들은
귓가의 바람처럼 듣는다. 대답이 녹음처럼 똑 같다.
어머니나 맛있는 것 사드시고 여행도 좀 하시고, 사시는 동안
다 쓰시고. 내 걱정은 아예 마시고..... 건강체크나 하시라니까!)
티켓을 끊어주겠다고 아무 때라도 아무 곳이라도 여행을 가라 한다.)
나는 언제던지 흔들의자를 하나 사고 싶었는데
어느 날 멋진 흔들의자가 내게로 왔다.
서연엄마가 이사를 가면서 내놓은 것이다.
서연엄마는 내게 쓰던 것이라 말씀드리기 어려웠다고,
내가 쓰면 자기가 더 좋다고, 오히려 감사인사를 했다.
잘못된 만남에 혼자 뒤척이며 아야, 소리도 못하고 사는 아름다운 여자.
내가 평생을 기다리는 어떤 것들도.... 어느 날 그렇게 우연히 올 수 있을까....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지만 애비가 망친 밭 자식이 일군다....
좋아하는 작가 김지원의 죽음, 구로다 나스꼬를 신문에서 스크랩했다.
벽에 붙여두고 나날의 시간을 보려고....
아무에게도 그 얘기를 안했는데, 여기서 고백한다.
누가 또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있으려구.
Steve Barakatt, Romance
020130828 글 푸른계곡
'글,문학 > 수필등,기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은 백로/백로(白露) 아침에, 백로(白鷺)를 보며 .. (0) | 2013.09.07 |
---|---|
야담과 설화 (0) | 2013.09.04 |
미륵불과 정감록 (0) | 2013.08.29 |
모색(暮色) / 정운(丁芸). 이영도( 李永道 , (0) | 2013.08.27 |
각시잠자리 (0) | 2013.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