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임이동으로 공동체가 바뀌는 바람에 급히 짐을 쌌습니다 떠남과 머무름은 수시로 있는 일이라 어려울 것도 없지만 일상의 짐들을 챙겨담고 그 짐을 다시 풀어 제자리를 찾아 놓는 일은 늘 몸과 마음을 수고롭게 합니다 짐을 싸고 풀때마다 평소 잊고 있던 물건에 손이 닿게 되고 그와 함께 지난 추억이 마음을 건드리게 됩니다 이번에도 짐정리를 하다가 잘 싼 서류봉투하나를 열었습니다 엄마가 생전에 보내셨던 편지였습니다 정리를 하다말고 어수선한 방 한 가운데 앉아 엄마의 편지를 모두 읽었습니다 막 글을 배운 아이처럼 크기도 모양새도 들쑥 날쑥한 글씨가 보였습니다 배움이 없어 제게 보내는 글이나 또 저를 위해 바치는 기도에 엄마가 가진 만큼의 마음을 풀어 담지 못한다며 미안해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울컥해졌습니다 수녀딸을 위해 평생 잡아본 적 없는 연필을 쥐고 한 줄 한 줄 서툰 글을 써내려간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의 학력은 야학 일주일이 전부였습니다 '여자가 공부를 하면 팔자가 드세진다'라는 터무니 없는 말을 굳게 믿고 계셨던 외할아버지께서 첫 딸인 엄마의 배움을 막았기때문입니다 그래도 엄마는 다들 하는 공부가 부러워 몰래 야학에 나갔다가 일주일만에 들통이 났다고 했습니다 집안이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결국 다시는 학교근처에도 못가봤다는 이야기를 할때면 언제나 엄마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늘 당당했습니다 먹고 사는 일이 고달플때면 가끔 '조금이라도 배웠으면 지금보다는 수월했을까?' 라고 혼잣말을 하셨지만 그래도 배우지 못한 것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엄마가 딸을 수녀원에 보낸 뒤부터 배우지 못했음을 자주 한탄 하셨습니다. "나는 배운것이 없어서 기도도 잘 할줄 모른다" 배우지 못한 탓에 제대로 아는 것이 없어서 수녀딸을 위한 기도뒷받침도 잘못한다며 늘 미안해하셧습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제가 수녀원에 오던 날 제 손을 쥐고 '성모님이 진짜 네 엄마다 무엇이든 성모님께 다 맡겨라"하시던 그 순간부터 묵주를 잡은 엄마의 기도는 멈춘 적이 없습니다. 더 많은 기도로,더 깊은 기도로 함께하지 못한다고 늘 죄스러워하셨지만 이 딸을 위해 바친 엄마의 기도는 단 한번도 부족했던 적이 없는 최고의 기도였음을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하셨던것처럼 기도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간절함이고 기도는 끊임없음이기 때문입니다. 일년전 엄마는 손 안에서 닳고 닳아 반질거리는 묵주 하나와 편지 몇통을 남겨두고 성모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엄마의 묵주를 손에 쥐고 엄마를 떠나 보낼 때 드렸던 기도를 다시 드립니다. "엄마! 성모님이 당신의 엄마예요. 성모님께 다 맡기시고 이제 성모님 품에서 내내 행복하세요."
성바오로의 딸 수도회수녀 신 명희 엠마
'글,문학 > 수필등,기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은 칠석(七夕) (0) | 2013.08.13 |
---|---|
마음속의 사랑의 향기를 (0) | 2013.08.10 |
옹달샘 처럼 살아야 (0) | 2013.08.07 |
뇌물먹고 크는나무-공무원 (0) | 2013.08.06 |
아, 덥다 .. (0) | 2013.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