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스님 ‘술ㆍ여자’ 후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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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화 대표, ‘불교평론’ 기고…“계율의식 부재 경허 스님 탓”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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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는 비록 부처와 같지만 다생의 습기는 깊어서 바람은 고요해도 파도는 용솟음치고, 이치는 분명하지만 생각은 여전히 침노한다(頓悟雖同佛, 多生習氣深, 風靜波尙湧, 理顯念猶侵).”
윤 대표는 경허 스님이 주색을 좋아한 것은 스님의 강건한 기질적인 바탕과 성격, 습관 때문이라고 봤다. 경허 스님이 구례 화엄사 강백이던 진진응 스님을 만났을 때에도 주색에 빠져 있자, 진진응 스님이 이를 나무랬다. 이때 경허 스님은 <수심결> 구절을 인용하며 “습기(습관) 때문에 주색을 끊지 못하고 있지만, 성품은 공(空)이므로 거기에 걸리지는 않는다”고 자신을 변호한 내용이 김태흡의 <인간 경허>에 나온다. 윤 대표는 이는 <능엄경>에 “이치로는 돈오했지만 현실적으로는 한번에 제거할 수 없다(理則頓悟, 事非頓除)”와 같은 말이라고 설명했다. 경허 스님은 자신의 깨달음을 알아주는 이도, 그것을 전할 이도 없던 외로운 선지식이었다. 스님의 주색도 이와 전혀 무관치 않으나 자신의 무애행에 대한 후회도 적지 않았다. 윤창화 대표는 “경허 스님은 <취은화상행장> 끝에서 ‘나는 쓸모없는 존재로서 세상에 쓸데가 없고, 부처님 교화에도 폐단을 끼쳐 백가지 잘못을 함께 일으켜서 도덕으로는 구제할 수 없는데 문장으로 또 어떻게 구제할 수 있으리오? 그래서 비분강개하여 문묵(문장작성)을 놓아 버린지 수년이 되었다’고 적었다. 이는 자신의 행위가 불교의 폐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경허 스님이 말년에 산수갑산에 은둔하다 열반한 것에 대해서도 “음주식육과 여색 등으로 비도덕적ㆍ비계율적 행위를 일삼은 것이 대중들로부터 ‘악마’ ‘마종(魔種)’이라는 원색적인 비판ㆍ비난을 샀고 그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은둔을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윤 대표는 “경허 스님의 주색을 옹호적인 측면에서 보는 것은 그가 전통선을 부활시킨 인물이라는 점, 그 제자들이 훗날 한국선종을 주도한 인물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제자 가운데 만공ㆍ한암 같은 고승이 없었다면 경허 스님은 진작 폄하됐을 것”이라며 “경허 스님은 선은 다시 일으켰지만 한국불교는 깊은 병에 들게 했다”고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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