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선사 열반 100주기를 맞아 덕숭총림 수덕사가 기념사업회를 발족시키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근대한국불교의 중흥조인 경허스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계승하기 위해 사부대중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옹산스님(전 덕숭총림 수덕사 주지)이 보내온 3편의 글을 매월 한차례씩 소개한다. 2805호에 이어 두 번째이다.

   
 
경허선사 하면 무엇보다 치열한 자세로 용맹정진했던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산 천장사 인법당 앞 벽에 걸려 있는 念弓門(염궁문)이라 쓰여진 선사의 친필 현판이 증명해 주고 있다. 생각 염(念) 활 궁(弓) 문 문(門)자니, ‘생각의 화살을 쏘는 문’ 이라는 뜻이다. 생각의 화살을 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여기에 대해 경허선사의 법손이며 나의 은사인 원담대종사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을 직접 들은바 있다. 은사 스님께서는 호랑이를 만난 사냥꾼을 예로 들었다. 활을 들고 사냥을 나섰던 한 사냥꾼이 호랑이를 만났다. 섣불리 조준해 명중시키지 못하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것이라고 여긴 사냥꾼은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집중시킨 다음 호랑이의 머리를 향해 정조준한 뒤 시위를 당겼다. 그 순간을 무념무상의 상태였다고 해도 좋으리라.

시위를 떠난 활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호랑이 머리에 명중했다. 화살이 머리통에 박혔는데도 호랑이는 쓰러지거나 피를 흘리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사냥꾼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니 호랑이라고 여겼던 것은 실제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 형상을 한 바위였다. 바위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자신이 한 일이 믿기지 않아서 다시 아까처럼 떨어져서 바위를 향해 시위를 당겨보았지만 다시는 화살이 바위에 박히지 않았다. 집중력이 처음처럼 모이지 않은 탓이었다. 도를 구하는 생각의 화살은 바로 바위에다 화살을 쏘았을 때 가서 박히는 것처럼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다.

천장사의 염궁문이라 쓴 경허선사의 친필 휘호는 스님이 한국 선불교의 중조(中祖)로 우뚝 솟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돌을 뚫을 정도로 치열한 생각의 화살을 날린 결과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천장사 인법당의 오른쪽에 경허선사께서 보임(保任)을 위해 머물던 당시 사용했던 작은 방이 있다. 그 방문 위에 경허선사의 또 다른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흔히 원성문(圓成門)으로 읽는데, 원구문(圓求門)이라 보는 사람도 있다.

가운데 글자가 이룰 성자로 여겨지는데, 구할 구자로 판독하는 사람도 있는 것은 이룰 성(成)자의 초서체가 구할 구(求)자를 흘려 쓴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대개 앞뒤 글자와의 어울림을 통해 해독하는데 이룰 성이나 구할 구 중 어느 것으로 읽어도 뜻은 대동소이하다.

원만함을 이루기 위해 앉아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해석하나, 원만함을 구하기 위해 보임을 하고 있는 방의 문이라고 하나 별 차이기 없기 때문이다.

창호문을 열면 문제의 방 크기가 채 한 평도 될 것 같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방이 시대를 넘어 우뚝 솟은 선의 산맥으로 추앙되고 있는 대선사가 거처했던 방이란 말인가. 6척 장신인 경허선사가 잠을 자기 위해 그곳에 누우려면 고치 안에 움츠리고 있는 누에처럼 등을 휘어서 무릎을 구부린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잠을 자지 않고 장좌불와를 했다는 것을 설명 없이도 알 수 있게 해준다.

경허스님의 용기와 자비

기행으로 매도하지 말고

‘시대의 선각자’로 보아야

천장사에 걸려있는 염궁문과 원성문이라 쓴 선사의 휘호들은 그가 어떤 자세로 정진했는가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화두를 깨던 때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선사께서는 천장사에서 보임을 하시던 내내 장좌불와를 했었다.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그 치열함이 선사를 우뚝 세운 원동력이 된 것이었다.

천장사 인법당 외벽의 벽화 중 한 스님이 아이들로부터 매를 맞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 있는데, 매 맞고 있는 스님이 바로 경허당 성우선사로서 이것이 이른바 ‘경허몰매도’라는 작품이다.

언제가 경허선사께서 마정령(馬亭領)을 넘다가 몇 명의 초동들을 만나자 스님께서 내기를 하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너희들 중에서 지게 작대기로 나를 때리는 사람에게 엿을 사먹을 수 있는 돈을 주겠다. 어떠냐. 누가 해보겠느냐?” “정말이세요, 스님?” “그래 나를 때리기만 하면 틀림없이 돈을 주마.”

이렇게 해서 한 초동이 지게 작대기로  스님을 때린 다음 말했다. “자, 때렸으니 약속한 돈을 주세요?” 매를 맞은 스님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태연했다. “난 맞지 않았느니라.” “에이 분명 때렸는데, 안 맞았다고 우기신다. 정 그렇다면 다시 때릴게요.” 초동이 좀 전보다 힘을 더 주어 기게 작대기로 스님을 내려쳤다.

그러나 매를 맞고도 스님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이번엔 좀 아프지요?” “난 맞지 않았는데 왜 아프단 말이냐? 누가 다른 사람이 해보아라.” 스님을 상대로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지게 작대기를 휘둘러 댔지만 그때마다 스님은 맞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스님, 억지 그만 부리 세요. 돈 주기 싫으니까 안 맞았다고 하는 거 누가 모를 줄 아세요!” “너희들이 그러니 내가 돈은 주마. 그러나 난 맞지 않았느니라.” 경허선사는 바랑을 벗어서 돈을 꺼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경허몰매도’는 그 때의 일화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선사께서 아이들에게 매 맞는 것을 자초한 것은 매를 맞으면 아픈지 그렇지 않은지 점검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히 맞았는데도 맞지 않았다고 한 것은 아이들이 몸을 때렸지만 선사의 마음은 때리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을 내린 것이 아닐까. 선사께서는 매를 맞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매질을 유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흠씬 두들겨 맞고 싶었던 것은 무력감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계속된 폐불의 암흑기에서 홀로 불을 밝힌 선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비심은 넘치지만, 자비심만으로는 압제(壓制)에 시달리며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헐벗은 백성들을 도저히 구할 수 없는데 따른 무력감을 달랠 길이 없었던 것 아닐까.

특히 이 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아이들에게 제일 미안하기에, 저들로부터 몰매 맞는 것을 자초한 것으로 여겨진다. ‘경허몰매도’는 기행의 소산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선각자의 고뇌가 녹아있다는 것이 그 그림을 감상한 나의 소감이다.

경허대선사의 행장을 돌아보는 가운데 도처에서 만나는 파행과 기행도, 따지고 보면, 혼탁한 세상에 홀로 깨달아 성성한 가운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하는 외로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깨달았어도 미혹 중생을 다 어루만져주지 못하는 한계는 선각자를 자괴의 늪에 빠지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경허선사는 후일 함경도 삼수갑산으로 들어가서 초등들의 까막눈을 떠주는 훈장으로 지내시다가 열반하셨다. 산문의 조실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도 되는 위업을 쌓았고 연세도 원만한데 일탈을 감행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러나 시대의 혼돈을 온 몸으로 아파하면서 내일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의 문맹퇴치를 해주는 것을 마지막 소임으로 택하기는 용기와 큰 자비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것을 어찌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지 않고 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는지 모를 일이다. 경허대선사는 치열한 자세로 용맹정진한 구도자였고, 시대의 혼돈을 온몸으로 아파하다 쓰러져간 진정한 이 땅의 선각자였다.

[불교신문 2813호/ 5월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