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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서 달을보다] 백양사 율주 혜권 스님

淸潭 2012. 5. 8. 19:21

 

[천강에서 달을보다] 백양사 율주 혜권 스님
 
꽃 한 송이 함부로 꺾으면 우주를 꺾는 것!
 
2012.01.17 10:34 입력채한기 상임논설위원 발행호수 : 1130 호 / 발행일 : 2012-01-18

30년 동안 산문 두문불출
스님 일상이 곧 ‘계율’


만일 기도 20년 정진 중
‘영가 장애’ 막혀 중단


실재와 실체, 망상과 마음
직시하면 ‘마’ 극복 가능


아집 끊는 첫 단추는 ‘하심’
인과법 알면 찰나 삶도 소중

 

 

▲혜권 스님

 

 

‘그대가 이미 출가했으니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워서는 안 된다. 몸매는 비록 거칠고 촌스러우나 행위는 볼만하게 해야 하며, 의복은 비록 누추하나 행동거지는 단정해야 하며, 음식은 거칠더라도 먹을 만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중국 북주의 도안 법사가 후학을 위해 남긴 글이다. 담양 용흥사에 주석하고 있는 백양사 율주 혜권 스님. 주변 인물을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만 놓고 보면 도안 법사의 가르침을 정확히 따르고 있는 스님은 바로 혜권 스님이 다. 워낙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는 스님인 관계로 사형관계인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혜일 스님과 함께 길을 나섰다. 혜일 스님과 함께 인사드리고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 왔다고 하면 ‘매몰차게 쫓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혜권 스님은 사법고시를 준비 하다 출가했다. 자신을 오랫동안 짓눌러 온 ‘고민’을 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 고민이 무엇이었는지도 여쭤볼 참이다. 한학에 밝았던 터라 4년 과정을 3년 만에 마치고 얼마 후 백양사 강주를 맡았다. 혜권 스님을 말할 때 따라다니는 ‘전설’같은 이야기 한토막이 있다. 백양사에 머무는 30년 동안 산문 밖을 나서지 않았다는 것. 가능한 일일까? 더 궁금한 것은 왜 산문을 나서지 않았던 것일까? 만행길도 수행의 일편인데 말이다.


혜권 스님이 강주를 맡았을 당시 혜일 스님도 수학했는데 당시 일화가 재밌다. ‘지대방에서도 농담 한 번 건네는 법이 없었던 스님이 혜권 스님’이었다고 한다. 잠시나마 차 한 잔 하며 담소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지대방인데 그 자리에서도 혜권 스님은 책을 펴 놓고 있었다고 한다. 새벽 예불 올리기 직전 법당을 청소해 놓는 스님도 혜권 스님이었다. 해우소 청소 역시 스님이 도맡았다. 강주 스님의 해우소 청소를 보다 못한 혜일 스님이 도반 스님과 함께 나선 적이 있다.


“강주 스님도 하심하며 해우소 청소 하시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싶었지요. 100일만이라도 해 보자 했는데….” 결국 100일을 다 채우지 못 했다. “마당 쓰는 것과 해우소 청소하는 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혜권 스님은 그 일을 수년 동안 쉬지 않고 하셨습니다.”


혜권 스님은 속가 나이 39세가 되던 1976년 백양사로 와 그 해 음력 12월부터 만일기도를 시작했다. 처음 1년은 하루 네 번, 두 시간씩 기도를 올리는 사분정근을 했다. 화엄전을 짓던 3년 동안은 새벽 2시에 일어나 하루 7시간 30분 동안 기도한 후 밤 10시에는 해우소 청소를 시작해 자정에 잠자리에 들었다. 오후 불식을 거스른 적도 없다. 그 다음 해 부터는 밤 9시에 자고 자정부터 일어나 기도했다. 일설엔 장좌불와를 3년 동안 지속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혜권 스님이 머무는 방은 작았다. 작은 탁자 하나 놓여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도안 법사가 ‘오래도록 홀로 방을 쓰더라도 마치 존귀한 분이 임해 있는 곳같이 여긴다면, 배움은 비록 많지 않더라도 훌륭한 현인에 잇닿을 수 있을 것’이라 했는데 스님의 정갈한 방이 그 가르침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산문을 한 번도 안 나갔다고요? 아닙니다. 서옹 큰 스님 약제 사러 너덧 차례 나갔습니다.”
세간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산문을 나서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산문을 나설 이유가 없었습니다.” 용무가 없는데 왜 나가느냐는 반문이다.


“만행이 산문 밖에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잖아요. 백양사, 용흥사 경내도 넓습니다. 삼천대천세계가 다 이 안에 있습니다.”


만행은 경내서도 충분

 

그렇다! 만행이 길 나서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무상보리를 얻기 위한 모든 행위가 ‘만행’(萬行) 아닌가. 시간적으로 말하면 3아승지겁에 걸쳐 이뤄진 무수한 행도 만행이요, 법으로 보면 삼학, 육바라밀이 곧 만행이다. 산문을 나서지 않으니 계율을 어긴 적도 없다. 혜권 스님에게는 지켜야 할 ‘계율’도 없어 보인다. ‘혜권 스님의 일상이 곧 계율’이라는 말이 왜 교계에서 회자되는지 알 법했다.


“장좌불와요? 어떤 이유가 있어서 한 게 아닙니다. 백양사 화엄전 지을 당시 잠자리가 변변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앉은 겁니다. 앉아서 공부도 하고 벽에 기대 잠도 청했습니다.”


삼매 속 장좌불와가 아니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30년 동안 산문 나선 적 없다고 말해도 별 문제가 없을 듯한데 ‘굳이 몇 차례 나간 적 있었노라’ 밝히고, ‘장좌불와 통해 얻은 바가 있다’고 꾸며볼 듯한데 ‘잠자리 불편해 앉아 있었을 뿐’이라고 털어놓는 스님. 솔직했다. 자신에게 무척이나 철저한 스님이다.


사법고시를 공부하다 불현듯 산문에 들어 온 이유가 궁금했다. 그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지금 그 고민은 다 풀렸는지. 1만일 기도 원력은 무엇이었는지. 회향 후 심경은 어떤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1만일 기도는 아직 회향 못했습니다.” 1976년 입제했다면 2003년 음력 12월에는 회향되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만일 기도 20년째 접어들었을 때 장애가 닥쳤습니다. 바로 극복을 못 했습니다.”
색음(色陰)이나 수음(受陰) 등의 장애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님은 분명해 보였다.
“영가 때문입니다.”
충격이다.


혜권 스님은 백양사 강주를 역임했다. 화엄경도 밝지만 능엄경에도 남다른 통찰력을 갖고 있는 스님이다. 능엄경의 핵심은 ‘망상을 극복하고 마음을 찾아가는 것’이다. 수행 중 나타날 수 있는 ‘50마’에 대한 극복방편도 여실히 담겨 있다. 그 능엄경에 밝은 스님이 어떻게 영가 장애에 걸릴 수 있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출가 전, 혜권 스님 동생이 노루뼈를 집으로 보내 왔다. 홀로 계시는 어머님을 위한 ‘약’이었을 것이다. 보내 온 동생도, 약으로 드신 어머님도 괜찮은데 혜권 스님이 문제였다. 왠지 모를 두려움 같은 게 엄습해 온 것이었다. 당시엔 그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다. 결국 사법고시도 스스로 포기했다.


“출가하면 모든 게 풀릴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절에만 들어오면 만사가 편안해지는 듯 했거든요.”
출가 하자마자 기도에 들어갔다. 물론 이 때만 해도 영가와는 관련이 없었다. 모든 스님이 그러했듯이 3000배를 올리고, 관세음 정근을 하고, 석가모니 정근을 했다. 겨울에도 새벽 2시에 일어나 얼음을 깨고 목욕을 한 후 기도에 들어갔다. 한 치의 오차도, 찰나의 순간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잠시 짬이라도 나면 마당이라도 쓸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님이었다. 20년 째 접어들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그 동안 나를 괴롭혔던 게 바로 그 노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나를 휘감았던 그 공포는 그 노루뼈를 보는 순간부터 시작된 겁니다.”
수행을 깊게 하다 보면 찰나의 무상변화도 직감한다 하는데, 그 연장선상에서의 특별한 체험이 있었던 것일까? 스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을 보았던 것이다.


“일심으로 기도 해야 하는데 산란심이 일었으니 만일 기도는 중단해야 했습니다. 저 자신을 추슬러야 했지요.”
법당에서 올리는 만일 기도는 중단했다. 해우소 청소도 접었다. 하지만 방 안에서 무릎을 꿇고 올리는 기도는 계속됐다. 그 기도는 만일 기도와는 다른, 깨달음을 향한 정진의 기도와는 다소 다른 것이었다. 해우소 청소를 접은 대신 법당 마루와 사천왕제단을 청소했다. 그렇게 한 해가 오고 갔다. 혜권 스님 말씀대로라면 1995년 접어들어서 만일 기도가 중단된 것이다. 지금은 2012년, 얼마 있으면 설이다. 장애가 있은 지 16년이 지난 오늘은 어떤지 궁금했다. 스님은 미소를 보였다. 영가 장애 극복 여부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뜻이다.


자애로운 미소도 보시

 

▲ 혜권 스님은 영한사전에 수록된 5만 단어 중 3만 단어를 체크해 암기하고 있다. 외운 영어 단어가 언제 어떻게 쓰일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저 대비할 뿐이다.

“만일 기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2017년 회향합니다.”
이미 그 장애를 거둬 들인지 오래 됐다는 뜻일 터.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의 ‘고독’을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법을 묻는 이를 굳이 만나려 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신비주의가 아니다. 출가하며 세운 원력. 만일 기도를 회향하지 못했는데 ‘누구에게 무슨 법을 설 하겠느냐’는 뜻이다. 너무도 철저한, 너무도 고독한, 그리고 너무도 솔직한 혜권 스님이다. 그토록 힘들었던 여정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제가 어떻게 뭘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건, 부처님 품안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지요. 해답도 부처님이 남기신 말씀에 다 들어 있습니다. 실체와 실재, 망상과 마음을 분명히 알면 극복은 자연스럽게 됩니다.”
심오한 불법은 아니더라도 현대인이 귀담아 들어야 할 메시지를 청했다. 경제난에 따른 자살이 줄을 잇고, 남과 북의 갈등은 물론 종교간의 불협화음도 끊이지 않는 세상 아닌가.


“자신을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남 탓 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지요. 인과의 삶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윤회를 인정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지러움, 삶의 괴로움은 모두 아상에 집착해 시작되는 겁니다. 하심하며 무상을 체득해 집착의 고리를 끊어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생각 말라 한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 자애로운 미소 하나도 보시요, 자비임을 알면 세상은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다.


“화엄경에서는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 속에 하나가 있다’고 했습니다. 꽃 한 송이도 그냥 숨 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바람과 물, 그리고 태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꽃 한 송이 함부로 꺾으면 우주를 꺾는 겁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몸소 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달빛 아래 흔들리는 풀꽃이 ‘무척이나 예쁘다’말해 놓고는 이내 아무생각 없이 그 풀꽃을 짓밟지 않는가.


“연기법에서 보면 ‘나’도 나 하나로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있기에 당신이 있고, 당신이 있기에 나도 있는 겁니다. 나와 당신은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로서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셈입니다.”


혜권 스님은 독특한 ‘연구’를 하고 있다. ‘삼성교본’이라는 책자 하나를 제작해 친분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여기서 삼성이란 부처님과 예수 그리고 공자다. 성현 세분이 말씀하신 내용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발췌해 엮은 책자다. 자비와 사랑이 온 누리에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한자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새겨 넣은 걸 보면 이 책에 들인 공이 남달라 보인다.


“부처님 법이야 말로 최상승법 아닙니까.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을 믿는 건 아닙니다. 또, 불법으로 모든 중생을 당장 구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 성현이 이 땅에 나투어 보이시며 설한 말씀을 다 같이 새겨 보자는 겁니다. 불자라도 한 번쯤 마태볶음 한 구절 볼 수 있는 마음, 유교인이라도 부처님 말씀 한 마디 음미 해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져 보자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이 ‘자비’요 ‘사랑’이라는 뜻이다. 혜권 스님이 전하고 싶은 인술(仁術)이 바로 자비사랑인 것이다.

 

탁자 위에 놓인 영한사전이 눈에 들어왔다. 펼쳐보니 조금 어렵다 여겨지는 단어들이 체크돼 있었다. 5만 단어 중 3만 단어를 정해 외우고 있다 한다.


“그 영어 단어 언제 쓰일지 모르지만 대비하는 겁니다.” 또 한 번 놀라웠다. 사실, 스님은 웬만한 수준의 영어는 그대로 직역 해 낼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있다. 무엇인가 성취하기 위해 준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일 뿐이다. 언제, 어떻게 쓰일지는 중요치 않다. 선기마저 느껴진다.


도안 법사가 말했다. ‘이름조차 험한 샘물은 마시지 않아야 한다.’ 혜권 스님의 일상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용흥사로 넘어 와서도 산문을 나서지 않고 계실까?
“가끔, 바다 보고 싶으면 나갑니다!”
2017년 만일 기도 회향 날, 혜권 스님이 전할 법이 무엇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스님’의 새로운 표상이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