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念은 결코 오염되지 않아…일념수행 안되면 초심으로 돌아가야
‘나’를 찾는 건 내가 있는 곳 아는 것…독서 통한 새길도 만나보라
최근, 화제의 불서 한 권을 꼽으라면 조계종 승가대학원장 지안 스님이 내놓은 『처음처럼』(조계종 출판사)일 것이다. 한 주류회사가 내놓은 술 이름과 같아서인지 불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실제 이 책은 승가 강원의 교재인 『초발심자경문』을 번역한 것으로 수행의 참다운 의미와 공덕, 그리고 깨달음이란 무엇인지를 엿보게 하는 수행 지침서다. 지안 스님의 탁월한 번역과 함께 강설에 배인 깔끔한 글맛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기에 충분하다.
일반인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 ‘초심’때문일 것이다. 한 회사 간부는 ‘입사 때의 그 마음’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라 보라는 경책 의미로 이 책을 권하고 있다고도 한다. ‘초심’이 출세간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한 듯싶다.
지안 스님은 『처음처럼』보다 앞서 내놓은 수필집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를 통해서도 ‘초심’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 책에 담긴 초심 한마디 ‘처음이란 항상 새롭고, 오염에 물들 수 없다’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초심’은 항상 과거로의 회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통도사 반야암을 오르는 길에서도 초심은 ‘오염되지도 낡아질 수도 없다’는 스님의 일언이 귓가를 맴돌았다.
반야암 염화실에서 만난 지안 스님에게 ‘초심’과 ‘처음 발심할 때 깨달음을 이룬다’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여쭈어 보았다.
“씨앗 속에 이미 식물 전체가 다 있는 겁니다.”
애초 씨앗 속에 뿌리, 가지, 잎, 줄기, 꽃과 열매가 다 들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한마디로는 초심과 정각의 상호관계를 명확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스님은 일념(一念)이라는 방책을 하나 꺼내 들었다.
“천태 스님은 한 생각에 삼천세계가 다 들어있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따라서 일념은 모든 경계를 만드는 원초가 됩니다. 이를 통해 시공간적인 무수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세상은 일념에 의해 좌우된다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그런데 이 일념은 최초의 시작을 뜻하기도 합니다.”
보통 일념으로 하라는 뜻은 집중해서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일념을 지킨다든가, 일념으로 돌아간다 할 때, 그 속에는 새로운 시작 즉, 순간의 순수를 지키거나 회복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타성에 젖어버린 사람은 나태해지거나 부패해 질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다 지치거나 싫증을 내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해이해진 겁니다. 스스로 참신성을 잃고 마는 것이지요. 이럴 때 우리는 자신을 반성을 하고 경책하며 일념을 지키려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초심과 일념은 상호보완 관계를 맺고 있다 보시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일념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고, 일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초심을 잃은 셈이다. 따라서 일념으로 되지 않는다면 초심이 어떠한지를 살펴볼 일이다. 그러고 보니 초심과 정각의 관계가 확연히 들어온다. 초심은 씨앗이요, 정각은 식물이다. 씨앗 속에 이미 식물이 들어 있듯, 초심에 이미 정각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씨앗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면 꽃과 열매를 맺지 못하는 온전한 식물로 완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초심이 일념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정각 또한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처음 마음이 생겨날 때 깨닫는 다는 것은 초발심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전제도 깔려 있는 셈이다.
“일념은 또한 망상의 침입이나 지배를 받지 않는 겁니다. 발심된 한 생각이 오롯이 그대로 이어지고 이어져 가야 합니다. 원오극근은 ‘철저히 살다가 철저히 죽어라(全機而生 全機而死)’ 했습니다. 섬뜩하지요? 혹사 하라는 말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라는 말입니다. 이를 수행으로 돌려 보면 완전하게 살다가 완전하게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건성으로 해선 생사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쉼 없는 정진의 정진을 거듭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일념반조(一念返照)할 때 정각의 소식이 들린다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님은 일념반조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라고 당부한다. 사람마다 가는 길이 다르지만 내가 누구이고 나는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타인과 비교한 나를 사유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가는 곳은 내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내가 나를 찾아 떠나는 거지요. 세속의 환경에 따라 만들어진 자기의 길이 있지만 자기답게 스스로 가꾸어 가는 길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는 길은 참 많습니다. 경전 속의 정갈한 길도 걸을 수 있고, 청아한 법문 속에도 그 길이 있으며, 고요한 좌복 위에도 길은 있습니다. 분명한 건 자신의 참 마음을 찾아야 자신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자신의 참 마음은 타인의 마음을 통해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혹, 자신의 마음은 외면한 채 타인을 통해서만 참 마음을 찾으려 하고 있지는 않을까! 외로울 때 벗을 찾는 것, 그 또한 궁극에는 자신의 마음을 나눠보고 싶은 것 아닌가. 하지만 헤어져 돌아서는 순간, 또 다른 고독이 밀려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고독하다는 것은 자신을 완전하게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나와 똑 같은 마음을 가진 그 누군가는 없는 겁니다. 나와 똑 같은 사람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해도 업이 다르니 마음만은 같을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 나타나는 대상을 통해 자기 확인을 해 보려 하지만 실패만 거듭할 뿐입니다. 내 마음과 똑 같은 마음을 찾지 못하면 내 마음이 바로 되지 않는데 어떻게 할 거냐 이겁니다.”
지안 스님은 마음을 바로 해야 참 마음을 찾을 수 있는데 미혹 속에 있는 한 이 마음은 바로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길은 있다. 탐진치 삼독을 끊어가는 것이다. 미혹은 삼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과 삼독을 끊어가는 여정은 같은 길입니다. 어느 하나가 먼저 되어야만 다른 하나가 된다는 게 아닙니다. 긴 여정이니, 짧은 여정이니를 따질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그 여정을 시작하라는 겁니다. 그 길에서 자신과 똑 같은 마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을 찾아가는 첫 걸음입니다.”
지안 스님은 처음부터 너무 어렵다 생각 말고 일단, 마음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말이나 꾸며진 행동에 있지 않음을 직시해 보라 한다. 이러한 이치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도 부처님 법에 크게 어긋나 살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 내 마음을 살피고 내 발밑을 살펴보라는 뜻일 것이다.
지안 스님은 경전 공부 외에도 인문학 서적을 섭렵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1만여 권의 장서 속에는 동서양의 철학서는 물론 시집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 우문 하나를 내놓았다. ‘불서 탐독도 녹록치 않을 터인데 인문학 서적은 왜 소장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있지요? 남의 책을 읽는데 시간을 보내라. 남이 고생한 것에 의해 쉽게 자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영조 시대의 실학자 이덕무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책 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먼 북쪽 변방의 겨울바람소리, 먼 옛날의 귀뚜라미 소리가 책에서 들려온다.’ 귀뚜라미 소리란 두보의 시 ‘귀뚜라미’를 음미한 소감을 말하는 겁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책 속에는 스스로를 달래주며 위안시키는 ‘안심법’도 있습니다.”
승재가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불교계의 독서량이 부족하다는 건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일 아닌가. ‘팔만대장경을 두고도 읽는 불자가 없다면 독서 결핍으로 불교가 쇠망할 수도 있다’는 지안 스님의 일언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중에 달력이 없는데, 봄이 오니 풀은 저절로 푸르구나!(山中無日曆 春來草自靑)’ 했다. 이 가을 스님이 좋아하는 시 한수를 독자들에게 들려 달라 부탁했다. 스님은 그 자리서 폴 베르네르 시인의 ‘가을의 노래’를 낭송했다.
가을날 바이올린의
가락진 흐느낌
사랑에 찢어진
내 가슴을 쓰리게 하네
종소리 울려오면
안타까이 가슴만 막혀
가버린 날을
추억하며
눈물에 젖네
낙엽 아닌 몸 이련만
오가는 바람따라
여기저기
불러 다니는
이 몸도 서러운 신세
“스님도 고독할 때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미소만 보낸다. 스님도 그리움은 있을 것이다. 세속 인연에 의한 아련함이나 쓰라림도 있을 것이다. 다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새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이내 선시 하나를 들려주었다. 예장종경의 시 한 수다.
구름 걷힌 가을하늘의 달이 못에 비치니 (雲捲秋空月印潭)
차가운 빛이 끝이 없음을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하랴. (寒光無際與誰談)
하늘과 땅을 꿰뚫는 안목을 활짝 여니 (豁開透地通天眼)
큰 도가 분명하여 참구할 게 없도다. (大道分明不用參)
고독과 안목이라! 두 편의 시가 주는 맛이 일품이다. 고독한 가을 하늘을 선지로 꿰뚫는 ‘통쾌함’이 밀려오는 느낌! 반야암을 휘감은 산자락에서도 가을바람 한 점이 속 시원히 일고 있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지안 스님은
통도사에서 벽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통도사 강원 강주를 비롯해 조계종 고시위원 및 교육원 역경위원장을 역임하면서 30여년 동안 교학연구와 후학양성에 힘써왔다. 현재 조계종 종립 승가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기신론 강의』, 『신심명 강의』, 『금강경 이야기』, 『처음처럼』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대반니원경』, 『선시산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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