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스님들 소식

[천강에서 달을 보다] 도선사 주지 선묵 혜자 스님

淸潭 2012. 4. 24. 15:41

 

[천강에서 달을 보다] 도선사 주지 선묵 혜자 스님
청정심 하나로 순례길 걷다보면 ‘참 나’ 만날 것
2009.10.07 11:02 입력 발행호수 : 1017 호 / 발행일 : 2009-10-07

06년 통도사 첫순례 후 37곳 사찰 참배…참회-기도-보시행
“재발심의 여정…마음 맑히며 불법 체득해가니 머문 곳이 법석”

지난 9월 24일 범어사에 이색 풍경이 연출됐다. 한 번에 2000여 명의 참배객이 경내에 들어선 것이다. 대웅전과 보제루 사이의 넓은 공간을 단번에 꽉 메우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24일 하루만의 일도 아니다. 26일까지 연 삼일 동안 지속됐는데 범어사를 참배한 인원이 하루 2000명씩 6000명에 이른다. 그 주인공은 도선사 주지 혜자 스님이 이끄는 108산사순례기도회.

2006년 9월 ‘108산사순례기도회’가 발족된 후 그 해 10월 통도사로 첫 순례를 떠났던 108산사 순례는 벌써 만 3년을 지나고 있다. 당시 첫 순례길에는 2500여명이 함께 했지만 지금은 평균 5000여명이니 두 배로 불어 난 셈이다. 놀라운 것은 범어사 참배가 37번째인데 이 추세대로라면 이 순례는 앞으로도 6년 가까이 더 남아 있다는 것이다.

혜자 스님의 남다른 원력이 있지 않고는 이러한 대장정의 계획은 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불자들의 동참도 이끌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108산사순례기도회의 성공은 전국의 ‘108순례’ 붐을 조성하고 있을 정도다. 부산 홍법사와 해운대 부처님마을 등에서 ‘걸망 메고 떠나는 108산사 순례’가 등장했고, 부산 해운정사, 서울 대림포교원, 울산 영묘사, 부산 미타선원 등 수많은 사찰에서 ‘108’을 테마로 한 성지순례를 운영하고 있다.

청담 스님이 주석했던 참회도량 도선사를 찾아 선묵 혜자 스님을 만났다. 산사순례를 도선사만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순례길에 이토록 많은 불자들이 운집하는 연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2006년 5월 중국 법문사와 도선사가 형제결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 중국 길에 도선사 신도 108명도 함께 했지요.”

도선사와 법문사의 인연은 각별하다. 2005년 12월 혜자 스님은 법문사에 봉안된 부처님 진골사리를 도선사로 이운한 후 사리친견 대 법회를 봉행했었다. 이 인연은 계속 이어져 2008년 2월 혜자 스님과 불자들은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 진신사리 법회를 봉행하기도 했다. ‘붓다의 귀향 법회’라 명명돼 교계 안팎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 법회다. 한국에서 법문사의 부처님 진골사리를 모셔 대법회를 연 것은 도선사가 처음이라 한다.

“법문사를 찾은 불자들의 환희심은 대단했습니다. 도선사를 떠나 이역만리의 중국 사찰을 참배하러 왔으니 설렘과 신심이 한데 어우러져 나타난 거지요. 그 때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래 도선사 신도 108명이 법문사를 참배하듯이 우리나라 전국의 사찰을 불자들과 함께 다녀보는 게 어떨까!’ 마침 출간 준비 중이던 책이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였거든요.”

혜자 스님은 14세 때 청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사문의 길을 걷는 동안 돌아본 사찰이 어디 108개 뿐일까! 그러나 스님은 불자라면 한 번쯤 꼭 참배해 보아야 할 사찰을 가려 뽑아 정리하고 있었다. 귀국 후 스님은 순례단을 모집하기 시작했고 원고를 마감해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 산사』를 출간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제목 앞에 부제가 있다. ‘선묵 혜자 스님과 함께하는’이다. 순례단과 함께 모든 여정을 함께 하겠다는 의지가 역력히 보인다. 첫 순례 모집에 2500여명이 모였다. 이제, 첫 걸음을 떼어야 한다.

“첫 순례길인만큼 고민이 많았습니다.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3대 사찰 중 한 사찰을 정해야 하는데 쉽지 않았거든요. 그 때, 산사순례 첫 생각을 떠올린 법문사가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 아이디어는 부처님이 주신 것이다. 법문사서 첫 생각을 일으켰으니 부처님 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불보종찰 통도사를 첫 순례지로 정하자’고 결론 내렸습니다.”

통도사에 운집한 2500여 명의 대중은 혜자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춰 석가모니 정근을 시작했다.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서원을 새롭게 세워보는 것이다. 통도사는 순례객의 참회기도와 정근에 감동했는지 스님들의 수계식이 아니면 근접조차 어려운 금강계단의 문을 활짝 열어 참배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순례객의 참배가 지속되는 동안 하늘에는 청정무구의 무지개가 섰다. 첫 순례길에서 금강계단을 참배하고 무지개까지 보았으니 당시 불자들이 느꼈을 환열은 가히 짐작조차 어렵다.

첫 법회서 혜자 스님은 의미 있는 일상 수행 지침을 제시했다. 1년 12달에 맞춰 원력기도(1월), 일심광명(2월), 정진(3월), 지계(4월), 자비지혜(5월), 국태민안기원(6월), 인욕(7월), 효행(8월), 기도발원(9월), 문화체험(10월), 자애(11월), 보시참회(12월)의 주제를 정해 실천해 가자는 것이다.

“각 달의 주제에 따른 기도를 하다 보면 그에 걸맞는 실천도 뒤따를 거라 봅니다. 1년 365일 하루하루가 다 수행지계의 날이요, 인욕정진의 날이지만 그에 이르려면 하나씩 차근차근 실천해 보는 게 먼저일 거라 생각합니다.”

단순한 산사 순례가 아니다. 서원과 참회를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부처님 말씀을 실천해 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산사순례단은 이후 계속 발전하며 환경과 군포교, 복지, 다문화 가정 등의 지원에도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있다. 단 한 번의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인 지원이요 관심이다. 예를 들면 군 장병의 간식 선호 1위 ‘초코파이’ 보시만도 지금까지 127만개다. 108산사순례기도회원과 다문화 가정과의 결연도 맺어주고 있는데 벌써 63쌍이 인연을 지었다. 가장 사회적 이목을 받았던 것은 아마도 ‘농촌 살리기’일 것이다. ‘농촌 살리기’ 캠페인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스님은 법보종찰 해인사를 갔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해인사 참배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일주문을 나섰는데 불자들이 버스에 오르지 않고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더라는 것. 상점은 물론 좌판에도 삼삼오오 몰려 있기에 유심히 보았더니 시금치나 고사리 등의 나물이나 과일 등을 살피고 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서울길이 녹록치 않으니 어서 승차하라”며 재촉했다. 불자들의 섭섭함은 버스 안에서도 계속됐다.

“천리길을 왔는데 꼭 산사만 보고, 기도만 하다 가야 하느냐는 푸념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러 와서 ‘청정심을 찾아야지 나물을 찾으면 되겠느냐?’ 반문했는데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말씀들을 하는 겁니다. 좌판을 벌이고 있는 할머니나 아주머니가 꼭 친정어머니 같고 시어머니 같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청정지역에 난 나물 한 점이라도 남편, 자식에게 줄 수 있으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청정해지지 않느냐 하면서 다음 순례부터는 시간을 좀 달라고 요청하더군요.”

혜자 스님은 직접 서울 청량리와 동대문 시장 등을 돌아보았다. 그 자리서 스님은 수입한 채소, 과일의 현주소를 알았다. 먹거리의 심각성과 함께 농촌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실감했다. 2007년 1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농촌 살리기’ 선포식을 갖고 ‘직거래 장터 개설 캠페인’을 시작했다. 산사순례단이 가는 날이면 산사 앞에는 늘 장이 선다. 혜자 스님과 순례객이 상생의 길을 열어 보인 것이다.

‘선묵 혜자 스님과 함께하는 108산사순례기도회’는 혜자 스님 홀로 이끌어가는 게 아니다. 선두에 스님이 서 있지만 ‘하심’의 마음으로 불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대중과 함께 만들고 발전시켜 가고 있다. 혜자 스님의 원력과 불자들의 신심 그리고 불자들의 원력과 스님의 신심이 하나가 되어 있었다.

마음이 하나로 모이면 산도 움직인다 했다. 도선사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운집한 불자들의 신심공덕은 한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스리랑카와 캄보디아, 네팔 등의 현지에도 한국 불자들의 정성은 깃들고 있다. 2008년 2월에는 네팔 현지에 초등학교격인 ‘선혜 학교’를 개원하며 108산사순례기도회원 108명이 네팔 학생 108명과 결연을 맺어 학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순례기도회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가 짐작됐다. ‘산사’가 아니라 ‘마음’을 향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108산사순례기도회의 캐치프레이즈가 있습니다. 108배를 올리며 108번뇌를 씻고, 108선행을 하며 108공덕을 짓자는 겁니다. 한 사찰을 찾을 때마다 이러한 행을 한다면 대장정을 마친 그날 1년 365일이 보현행을 실천하는 날임을 알게 될 겁니다.”

처음 산사순례를 떠날 때 혜자 스님은 “소풍 가는 기분으로 길을 떠나자”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어릴 적 소풍을 기다리는 천진한 마음으로 돌아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산사서 올리는 참회기도와 108배에는 극진한 정성이 배어 있다. 또한 그 길에는 포교와 공덕의 인연도 지어가고 있다. 새로운 산사순례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산사순례는 참회와 기도를 통한 재발심의 여정이어야 합니다. 산사에 얽힌 이야기도 가슴에 담아 보고, 시공을 초월한 옛 선지식들의 숨결도 느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처님이 전하신 말씀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108산사순례길에는 이상하리만치 무지개가 자주 뜬다. 통도사 첫 순례에 나타난 서광은 37번의 순례 동안 19번이나 유사한 서광이 비췄다고 한다. 이를 지켜 본 불자들은 한결같이 불보살님의 가피라 믿는다.

“참다운 나를 찾아 가는 길목에 무지개와 같은 서광이 어리니 가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한 번의 가피라는 생각에 머물지 말고 그 무지개를 보며 좀 더 발심하고 더 큰 원력을 세워야 합니다. 또한 그에 대한 실천이 뒤따를 때 그 무지개는 가피가 됩니다. 어떤 ‘이적 현상’으로만 생각한다면 그 또한 집착일 뿐입니다.”

 
2004년 혜자 스님이 7관음 33일 천수관음 기도를 회향하자 하늘에 ‘一心’ 서광이 비췄다

혜자 스님이 이렇게 말하는 연유가 있다. 도선사 첫 부임 후 7관세음 33일 기도를 봉행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꿈에서 은사 청담 스님을 만났는데 현재 포대화상이 모셔진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는 환한 미소를 보였다고 한다. 어떤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스님은 청담 스님이 머문 자리에 넉넉한 웃음을 선사하는 포대화상을 봉안하며 가람을 정비해 갔다. 2004년 7월 또 한 번의 7관세음 33일 기도를 봉행했다. 이 기도 회향 당일 청담 스님 석상 뒤편 하늘에 서광이 비췄다. 언뜻 보아도 ‘一心’〈사진 참조〉의 형상을 띤 무지개 빛이다.

“청담 스님과 불보살님이 힘을 주는 것이라 생각하며 도선사의 모든 일을 자신 있게 추진해 갔습니다. 108산사 순례도 실천하기란 사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대로 밀고 나아갔지요. 불보살님의 가피가 항상 있을 거라 ‘콱’ 믿은 겁니다. 서광이 있든 없든 늘 우리 곁에 불보살님이 있는 것이라 믿는 거지요. 다만 안주하지는 않습니다. 안전사고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하면서 불자들의 신심이 더 고양될 수 있도록 세심한 신경을 씁니다. 순례길을 함께 하는 불자님들도 불보살님의 가피가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일체의 악업을 짓지 않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諸惡莫作 衆善奉行)’하고 있을 겁니다. 불자님들도 어느 날엔가 ‘스스로의 마음을 맑게 하는 것, 이것이 곧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自淨其意 是諸佛敎)’이라는 부처님 가르침을 깊이 깨달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참회기도와 발심서원 그리고 실천행을 통한 공덕을 지어가며 떠나는 산사 순례길이니 ‘곳곳이 부처님이요 모든 일이 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이다. 한마디로 ‘108산사 순례’는 ‘길 떠나기’를 넘어 ‘법석’ 그 자체라 할만하다. 혜자 스님은 이 법석에 참여할 때마다 염주 한 알을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사한다. 108산사 순례 대장정을 마친 사람은 108염주를 스스로 엮어낼 것이다. 그 사이 108번뇌를 다 씻어 낸 청정한 자신도 발견할 것이다. 오롯하고도 지극한 마음 하나와 청정한 마음이 하나임을 순례객은 체득해 가고 있는 듯하다. 일심(一心)과 청심(淸心)이 어우러지는 그날, 순례객과 혜자 스님이 세상에 던지는 한마디가 무엇일지 지켜볼 일이다. 

penshoot@beopbo.com


혜자 스님은

충북 충주서 태어난 스님은 14세 때 청담 스님을 은사로 삼각산 도선사에서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청담학원 이사장, 혜명복지원 이사장, 한국문학평화포럼 이사 등을 역임했다. 노인복지 공로 대통령 포장(2002년), 캄보디아 정부 금관 공로훈장(2006년), 네팔 평화훈장(2008년) 등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 『마음을 맑게 하는 부처님 말씀 108』, 『절에서 배우는 불교』, 『캄보디아』, 『빈 연못에 바람이 울고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