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 구산은사로 출가
산중 토굴 6년간 수행도
남악 회양 스님이 육조 혜능 스님을 찾아갔다. 혜능 스님이 물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즉답을 못한 회양 스님은 8년을 더 공부한 후 혜능 스님을 다시 찾아갔다. 혜능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한 물건(一物). 이 자체가 화두다. 이 일물이 또 한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서울 성북동 육조사(六祖寺) 선원장 현웅 스님이다. 현웅 스님은 세납 20세인 1967년 구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인천 용화사 선원 등의 제방 선원을 거친 현웅 스님은 산중 토굴에서 6년 동안 정진했다. 1984년 스위스 제네바 불승사의 초청을 받은 스님은 유럽으로 건너가 현지에서 2년 동안 한국선을 전파했고, 1986년 미국 버클리 육조사를 창건, 현지인을 지도했다. 이어서 2005년에는 서울 성북동에 육조사를 마련해 재가불자를 중심으로 한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현웅 스님은 간화선 지침서라 할 수 있는 대혜 보각 스님의 『서장』을 서울 선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서장』을 통해 대혜 스님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묻기 위해 육조사 선원을 찾았다. 일반 주택을 개조한 선원은 담백하면서도 정갈했다. 스님은 선풍기 바람이라도 맞으며 잠시 숨을 돌리라 했다. 언덕을 오르느라 흘린 땀을 식히고 가빠진 호흡도 가라앉히라는 스님의 배려였다. 숨을 고르며 가벼운 질문이라도 해야겠기에 선원 이름을 굳이 혜능 상징의 ‘육조사’라 한 연유가 궁금했다.
그저 육조 혜능 스님을 존경해서라는 일상의 답이 아닐까 했는데 의외의 답이 나왔다. “혜능과 회양의 만남에서 터져 나온 ‘한 물건’ 때문입니다.” 건너짚어 본다면 ‘한 물건’에 계합(契合)된 것이리라! 그러나 이 계합도 선에 들어서자마자 한 순간에 된 것은 아닐 터이다. 스님이 극락암 경봉 스님 회상에서 공부할 때다. “수행하는 과정에서 꼭 겪는 경계가 있습니다. 경을 보면 그 뜻이 ‘확’ 들어오는 경우인데 이 또한 조심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내가 좀 아는데!’하는 경계다.
자칫, 이 경계에 걸려들면 깨달았다는 착각에 빠져 ‘아는 소리’하기에 여념이 없다. 당시 스님은 한 번 화두 들고 앉으면 한나절, 한 밤이 훌쩍 지나갔다고 한다. 이런 흐름이 20여일 지속됐는데 일대 변화가 왔다. “식이 아주 맑고 밝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경서를 보면 이치가 탁탁 튀어 나왔습니다. 자신감으로 충만 했지요.” 이때, 은사 구산 스님이 제자의 공부를 점검하고자 보낸 선문 서신이 도착했다.
‘조주 무(無)자는 불타는 덤불과 같은 것인데 얼굴을 가까이 하면 얼굴이 타버린다는 말이 있는데 무슨 뜻이냐? 한 번 일러라!’ 현웅 스님은 즉답을 써 구산 스님에게 보냈다. 현웅 스님의 선답은 이러했다. ‘일체 경계가 불타는 덤불인데 어디 또 불 속으로 뛰어들어 가라고 하십니까?’ 경전 뜻이나 선문답이 착착 나오니 일가를 이룬 듯 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지나친 자신감이 오히려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걸 몰랐던 겁니다. 답신을 보낸 후 의기양양하며 대중처소에서 몇 철을 지냈는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혜능 '일물'에 대변화 경험
방거사 일언에 한순간 풀려
처음 공부 때와 달리 상기만 오를 뿐 진척이 없는 겁니다. 이러한 때 스승을 만나 점검해야 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 공부가 혼자 해도 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바른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어두운 밤에 등불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스님은 이후 단식도 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해인사로 향했다.
지관 스님을 찾아 사분율을 배우며 철저한 지계를 바탕으로 한 용맹정진도 시도했지만 이 또한 허사로 돌아가고 해제를 맞게 되었다. “도반들은 모두 일주문을 나섰는데 홀로 선방에 남아있고 싶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낸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만 공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리를 박차고 일주문을 나섰다. 깨닫겠다는 생각도 내려놓은 채 구름과 산과 바다를 벗 삼으며 만행길에 올랐다. 천진무구의 마음으로 되돌아 간 스님은 어느 날 완행열차 안에서 그 전에 느껴보지 못한 평온함을 만끽했다. 그리고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지금이 스승을 만나야 할 때다!’ 인천 용화사 전강 문하로 들어 간 스님은 다시 마음을 추스렸다. 남악 회양과 육조 혜능의 ‘한 물건’에 대한 전강 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천둥을 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 즉시 조실 스님을 뵙고 점검을 받았지요. 이전의 병통도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현웅 스님의 오랜 방황이 끝난 것이다. 산중 토굴 6년 수행이 가능했던 것도 이런 단계를 밟아 힘을 얻은 후였기 때문이다. 토굴 정진 중의 어느 날 아침, 방 거사의 말이 떠올랐다. ‘있는 법도 없게 해야 하거늘, 하물며 없는 법을 있게 하는가!’ 방 거사의 일언이 의정과 계합되자마자 붙들고 있던 모든 것들을 놓게 되었다. 통나무 통 밑바닥이 깨져 담긴 물이 한꺼번에 쑥 빠져나가 듯 그간의 의심이 한 순간에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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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주택을 개조해 창건한 육조사 전경. 정갈한 선원은 물론 방사도 많아 묵고 갈 수도 있다. |
스님의 구도 여정에서 분명히 보아야 할 게 있다. 바로 점검이다. 경계나 상기 등의 수행병을 앓고 있을 때도 선지식을 찾아 현 상태를 점검 받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짚어 보아야 하기에 점검을 받는다. 선지식과 납자의 인가도 이 과정에서 이뤄지지 않는가. 한 때 ‘선지식’ 부재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점검해 줄 만한 스승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재가불자들로서는 점검을 받고 싶어도 ‘큰 스님’을 만나기 어려워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푸념도 있었다.
사실 이러한 불신 아닌 불신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가장 믿음이 가는 스승을 찾으면 됩니다. 그 자리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보이면 분명 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자리서 의문이 안 풀린다면 또 다시 가장 믿음이 가는 스승을 찾아 가 물으면 됩니다. 비록, 단 한 번에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해도 그러한 과정 하나하나를 거치면서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되고 변화도 겪게 됩니다. 힘도 생깁니다. 그게 공부입니다.”
저 스승을 찾아가면 혹 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하나만 생겨도 용맹심을 갖고 당당하게 만나보라는 것이다. 선지식이 어디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스승일 것이다. 공부하기도 전에 선지식이 ‘있다’, ‘없다’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물론 스승도 제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무조건 화두 들라고 하는 것이나, 앞 뒤 없이 한 번 일러봐라 하는 식의 방법은 지양돼야 합니다. 직관과 세심함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이 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 3심 즉, 신심, 분심, 의심이 있어야 한다고 선인들은 누누이 강조해 왔다.
신심 즉 원력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 『서장』은 증시랑의 물음과 대혜 스님의 답장으로 시작되는데 이 대목에서 신심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평소 마땅히 어떻게 공부해야 다른 길에 빠지지 않고 바로 본지풍광과 서로 계합하겠습니까?” “모든 부처님 앞에 큰 서원 세우십시오. ‘이 마음이 견고해 영원히 물러나거나 잃지 않고, 모든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지해 선지식을 만나서, 말 한 마디에 생사를 잊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지혜를 깨달아 부처님의 혜명을 이어서 모든 부처님의 크나 큰 은혜를 갚게 해 주소서.’ 이러한 원력으로 오랫동안 정진 하면 깨닫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서원이 곧 원력이다.
본성 작용은 시대구분 없어
간화선 유·무용론 무의미
불퇴전의 용맹심으로 정진하면 선지식을 만나 큰 지혜를 얻어 깨달음에 이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말이다. “간화선은 처음부터 믿음이 근본이 되어 일체 것을 놓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믿음이 갖춰지면 저절로 아는 생각이 쉬어지고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삶도 놓게 됩니다. 그 다음에 의정이 돈발해 점차 익어 갑니다.
그런데, 요즘 시대 사람들은 앎은 많으나 믿음이 약합니다. 믿음이 약한 수행은 모래로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더욱이 화두 드는 이유 중 하나가 분별심을 떨쳐 버리는 것인데 화두를 들면서도 분별하는 행태가 이뤄지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의단독로를 통해 화두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경지 이전에 망상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 이 경계를 뛰어 넘기 위해 정진의 정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현웅 스님은 우리 선가에 이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가장 믿음 간 사람 찾아가서
점검 받고 한 단계 도약해야
“무자 화두를 드는데 있어 ‘어째서? 무인가?’ 하는 식의 의심으로만 화두를 드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건 조작하는 생각, 조작된 의심으로 화두를 드는 것이므로 잘못된 겁니다. 바른 공부 길을 막아버립니다. 졸음도 쉽게 오고, 바깥일이 생각나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하는 애매한 정신 상태에 봉착될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하는 거기에 망상이 이미 자리하고 있으니 평생을 해도 분별심만 일으킬 뿐 소식을 들을 수 없는 겁니다.” 스님은 ‘무’자 화두를 들 때 ‘무’라고 하는 그 것, 그 놈이 망상인 줄 알아야 진정으로 무자 화두를 드는 것이고 힘이 생긴다고 한다.
또한 ‘무’라 하는 그 놈이 망상인줄 진정으로 자각하면 분별심도 함께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 일설로 스님의 뜻을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화두를 의심하란다고 해서 왜 무일까? 왜 이뭐꼬 일까? 하는 식의 분별을 전제한 참구법을 써서는 안 된다는 건 분명한 듯싶다. 즉, 머리로, 이해로 화두를 풀지 말라는 말이다. 간화선이 옛날 사람에게는 맞지만 요즘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스님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라 잘라 말했다.
“사람의 본성은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다르지 않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선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잘못 전달되거나 받아들여져 생기는 부작용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일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간화선 자체를 부정하거나 시대에 맞지 않는 수행법이라 단언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러나 스님은 간화선을 한 스님들의 행이 올곧게 나타나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게 밝혔다.
“‘공’을 잘 못 이해해 무조건 ‘아무것도 없다’는 식으로 객기 부리며 정화되지 않은 언행을 보이는 스님들이 있습니다. 안 됩니다. 그런 자만이 생길 때 일수록 스승을 찾아가 다시 추스려야 합니다. 경계나 반연을 극복 못하고 한 번 빠져 버리면 헤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착각 도인을 경계한 선인들의 뜻이 여기에 있었던 겁니다. 깨달았다고는 하는데 막행막식을 한다? 세인이 불교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선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승가도 무너지는 겁니다.” 불퇴전의 신심. 점검을 통한 정진력. 그리고 선지식과의 일대사 인연. 모든 게 드러났다.
대혜 스님이 『서장』을 통해 말하려 했던 메시지가 이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다. 조주의 무가, 대혜의 무가. 혜능의 일물이 육조사 선원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선지식을 만나기 어렵다 걱정한 사람들은 육조사 선원을 찾아 볼 일이다. 현웅 스님의 점검을 통한 후에는 분명 힘을 얻을 것이다.
spenshoot@beopbo.com
현웅 스님은
1967년 구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용화사 선원 등의 제방 선원을 거친 후 산중 토굴에서 6년 동안 정진했다. 1984년 스위스 제네바 불승사로부터 초청을 받은 스님은 유럽으로 건너가 현지에서 2년 동안 한국 선을 전파했다. 1986년 북미로 건너 간 스님은 시애틀에 돈오선원을, 버클리에 미국 버클리 육조사를 창건해 후학을 지도했다. 2005년에는 서울 성북동에 육조사를 창건, 간화선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묻지 않는 질문』(민족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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