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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녀의 마지막 소원

淸潭 2011. 1. 31. 14:59

 

어떤 소녀의 마지막 소원

 

어떤 소녀의 마지막 소원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서울을 수복하고 북상중이던 UN군과 국군이 일선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고 있던 1951 년 봄 나는 대전에서 미군 병기중대의 노무자로 일하다가 통역으로 발탁되어 일하고 있었다. 그때에 한 고등학교동창생이 찾아와서 자기 형이 대전 시내에서 타이피스트 학원을 시작하였는데 영어강사가 필요하니 협조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당시 대전지역에는 여러 미군부대와 UN 기관들이 주둔하고 있어서 한국인 영문 타이피스트의 일자리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학원에서는 타이핑과 함께 영어를 지도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야간반의 영어강사가 되었다. 초급반은 대부분이 소녀학생들로서 6 개월 코스였다. 수업시간에 영어노래도 같이 부르고 가끔 학생들과 딸기밭, 참외밭을 찾아가기도 하고 복숭아밭이나 연극으로 나를 초대하는 학생, 수료식이 끝나고 교무실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학생도 있는 등 나는 소녀학생들과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들을 가졌다. 순진하였던 나에게는 그때가 천사들을 만나는 낙원이었으리라. 그중에 수업시간 중에 유난히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동그란 눈을 가진 한 학생이 있었다. 가끔 시선이 마주칠 때면 내가 그 소녀의 눈길을 피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학생이 결석을 하기시작하였다. 나는 무슨 까닭일까 하고 혼자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반장학생이 교무실로 나를 찾아와서 “그 애가 지금 아픈데요, 선생님이 꼭 보고싶다고 하는데 한번 찾아가보시지요” 하고 말해주었다. “그래? 아프다가 낫겠지 머“ 하고 대답하고는 아무학생하고도 개인적인 친분을 맺지않는것이 여학생을 대하는 선생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생각하고 방문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애가 죽었어요” 하고 그 반장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아니 죽다니? 그렇게 위중하였었어? 무슨 병이었는데?” 하고 물으니 “페가 나빴어요“ 하고 만나주지 않은 나를 원망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몹시 아팠었다면 찾아가볼 것을!” 하고 나는 후회와 미안함으로 어찌할바를 몰랐다.

 

죽기 전 나를 꼭 만나고 싶다던 그 소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나는 과연 훌륭한 선생이었던가? 아니 선생이기전에 하나의 인간이었던가? 자괴하는 마음이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며칠 후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소녀의 모습을 꿈속에서 보았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소녀가 길지 못한 생을 사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졌었던 연분홍 순정은 아니었을까? 그런 순수한 그 소녀의 마음을 몰라준 나는 너머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아! 나는 그 때 그 소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였다!

                                                  인생이 무엇인지를 내가 몰라서였을까?

                                  가여운 그 소녀의 동그란 두 눈이 지금도 눈앞에 떠오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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