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사람이 죽어 새가 되고 나비가 되고
때로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는 환생.
믿을 수도 아니 믿을 수도 없는 환생.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어연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날은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아침에 산에 갈 약속이 있어 샤워하고 적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고 있을 때 어디선가 환청이 들렸다.
“나 ....간다..........”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면서 나비 한 마리가 날라가는
영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지도 환청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다.
꿈도 아니고 눈을 뜨고서 꿈속처럼 말이 들리고
머릿속에 보이는 영상은 어떤 과정으로 보이는 것인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아니...내가 잠이 덜 깬 것인가....’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좀 있다가 아버지가 변소에서 쓰러지셨다는
전화가 왔다.
놀라웠다.
아버지가 쓰러지신 것보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아니 그 순간에도 아버지는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셨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이 놀라운 사실이었다.
눈이 발목까지 올라오는 눈 속에
아버지는 평소에 성당을 다니시지는 않으셨지만
아들 종교를 따라서 성당묘지로 가셨다.
며칠 전 백중 기도하러 관악산 관음사로 향했다.
도심속에서 가까운 사찰로 불자들이 많이 오셨다.
사시예불에 간신히 맞추어서 왔으니 법당에 자리가
있을리는 없고 마당에 서 있었다.
비는 오락가락하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나비는
대웅전 앞에서 바라춤을 추시는 스님처럼 훨훨 빙빙
날아다니는 것을 본 순간에 나는 왜 ‘아부지다...’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직감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그냥 아버지가 찾아오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자리가 없어 종각역에 박스를 깔고 예불을 드리고
대웅전에 조상님께 절을 드리려고 길게 줄을 섰는데
또 다시 나비가 나타나서 내 앞에까지 날아와
춤을 춘다.
이것이 정말 아버지의 화신인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가?
장자의 호접몽처럼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나의 직감일 뿐이지만
나는 행복했다.
내 나이 여덟인가 아홉인가 그즈음에 동생은
마당에서 걸어 다니고 나는 거짓말로 배가 아프다고
아버지 등에 업혀 고추잠자리가 날라 다니던 마당을
왔다 갔다 하던 기억이 난다.
딸 다섯에 아들 하나뿐인 딸 부자집이었지만
아버지는 딸들을 하나같이 공주처럼 귀하게 사랑하셨다.
그 사랑스런 셋째딸이 얼마나 보고 싶으시면
비오는 한 여름날에 나비의 형상으로 오셨을까?
그리움 속에 콧마루가 찡해온다.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 살금 가을이 다가온다.
가을이 다가오면 마당에 노란 국화와 함께
아버지의 추억이 그립고
내 어린 시절이 꿈처럼 스쳐간다..
좋은 곳에 가셨는지
아버지는 꿈속에도 한 번 아니 오신다.
아마도 좋은 곳에서 노란 국화꽃에 막걸리 한 잔을
하시고 계실 것 같다.
아....아부지...
그 따사하던 아부지의 등이 오늘은 몹시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