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세종시 접고 4대강 바꾸되 천안함 지키라
- ▲ 강천석·主筆
날벼락은 없다. 적란운(積亂雲)이란 구름이 머금은 씨앗이 자라 커져 터지는 게 벼락이다. 구름 없이는 벼락도 없다. 대통령과 여당이 6·2 지방선거 결과를 날벼락으로 여긴다면, 그건 하늘 한편에서 엉켜가던 심상찮은 민심(民心)의 구름을 놓쳤다고 실토(實吐)하는 것일 뿐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6·2 지방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5개 항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강력한 대여(對與) 투쟁을 선언했다. 야당 요구 사항 5가지 가운데 3가지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첫째가 내각 총사퇴와 국정의 전면 쇄신이다. 사실은 야당이 요구할 필요도 없는 사항이다. 대통령은 입이 아니라 귀로 설득해야 한다고 그렇게 되풀이했건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자기네 속사정에 귀만 기울여주어도 울분과 설움을 절반은 삭이고 절반은 녹이는 게 국민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무시당한 작은 목소리들이 모이고 고여 이번의 벽력 소리를 만들었다. 이 소리에 시치미를 뗄 순 없다.
여성·인권·환경 문제에 상대적으로 더 늦게 눈 뜬 보수정당일수록 이 분야에 더 열심히 달려드는 게 세계의 흐름이다. 양성(兩性)평등의 개념, 인권의 범위, 환경보호의 정의(定義)를 좌파와 달리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보수정권인 프랑스 사르코지 내각의 여성장관 숫자나 육아·보육 정책은 좌파 정권보다 더 나갔으면 나갔지 덜한 게 없다. 미국에서 주요 환경법안을 더 많이 만들고 환경청이란 정부 기구를 설치하는 데 앞장섰던 것은 공화당 정권이었다. 젊은이 이마에 찍힌 백수(白手) 도장만큼 괴로운 형벌은 없다. 일자리가 바로 청춘의 인권이다. 그러나 이 나라 집권당은 이런 메뉴들을 몽땅 반대당 구장(球場)에 넘겨주고, 20대 30대가 투표장으로 몰린다는 소식만 들어도 벌벌 떠는 겁쟁이가 돼버렸다. 이래서는 오늘은 물론이고 내일도 없다.
야당의 둘째 요구 사항인 세종시 대안(代案) 철회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의 가장 가까운 당사자는 대전·충남·충북 사람들이다. 그들이 돌부처 돌아서듯 일제히 돌아서 버린 게 이번 선거 결과다. 이 정도가 됐으면 고집도 접을 때가 됐다. 본인들이 싫다는데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하려 해선 안 된다. 야당의 셋째 요구 사항인 4대강 공사 중단 문제도 유연(柔軟)하게 대처할 일이다. 어느 동네 강줄기가 어떤지는 그 동네 사람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그런데도 다른 동네 사람들이 남의 동네 강줄기에 대해서까지 이래라저래라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건 정권이 아직도 팡파르(fanfare) 소리 요란했던 70년대식 '동시 착공·동시 준공'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탓이 크다. 배불뚝이 강바닥 양편으로 구정물 냄새 풍기는 물줄기가 흐르듯 고여 있는 작은 강 하나 먼저 골라 강다운 강으로 바꿔 그 동네 사람들에게 돌려줘보라. 사정이 금방 달라질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넷째와 다섯째 요구 사항으로 내민 대결적 대북정책의 전면 폐기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국민 사과 및 군 책임자 문책(問責) 대목이다. 46명의 대한민국 장병 목숨을 앗아간 북한의 '북(北)' 자도 없다. 이 정권이 다시 벼락을 맞더라도 심지(心志)를 다져 먹을 대목이 여기다. 안보에도 여야(與野)가 있는 게 이 나라 현실이고 전쟁 중에도 당쟁(黨爭)은 그치지 않던 피가 우리 혈관(血管) 속을 흐르고 있다지만, 이건 아니다. 정부가 잘했다는 말이 아니다. 정부의 최대 사명은 나라의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이고 최고의 안보는 전쟁의 위협을 사전에 차단해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시장바닥 깡패에게 자릿세 뜯기지 않게 버릇을 고쳐 놓겠다더니 되레 테러를 당한 꼴이다. '비핵(非核) 개방 3000'을 비롯한 이 정권의 대북정책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권의 실패다.
그러나 정치적 득실(得失) 계산이 급하더라도 일의 선후(先後)는 가려야 한다. 불난 제 집 앞에 서서 방화범(放火犯)은 쳐다보지도 않고 제 식구 향해 으름장 놓으며 삿대질만 해대서야 우습지 않은가. 이 나라 제1야당의 그 모습을 보고 울타리 밖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겠는가. 10년 동안 나라를 책임졌던 집권세력의 흔적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불난 집이 이 지경인데 어느 누가 방화범을 잡는 데 힘을 보태려 하겠는가. 다시 가라앉는 천안함 뱃전에서 마흔여섯 젊은 장병들의 가슴이 얼마나 미어지겠는가를 떠올려만 봐도 알 일이다. 정치의 세계에선 어느 구름이 벼락의 씨앗을 머금고 있는지 모른다. 정권은 안보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痛感)해야 할 때이고 야당은 가벼운 입의 무거운 과보(果報)를 두려워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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