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美서 제빵안내서 펴내 베스트셀러 오른 김영모 회장
서울 강남구 도곡동 김영모과자점 도곡타워지점에서 직접 만든 빵 앞에 선 김영모 사장. 동네 빵집을 일류 브랜드로 키운 그는 “나는 빵을 만들었지만 빵도 나를 만들어 왔다”고 말한다. 변영욱 기자 |
《“한국 제과업계는 서양의 것을 베끼는 데 급급했지요. 이제는 한국의 빵을 세계에 알릴 때입니다.” ‘김영모과자점’ 대표이자 대한제과협회 회장인 김영모(52) 사장이 미국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제과제빵 안내서인 ‘A Collection of Fine Baking’(드림캐릭터 출판사)을 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동양인이 베이킹북(제과제빵 안내서)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7월에 나온 이 책은 발간 첫 주 미국 최대 서점인 ‘반스 앤드 노블’ 디저트북 신간 예약 판매순위 1위를 기록한 뒤 지금도 10위권 안을 지키고 있다. 한국에서는 ‘김영모의 행복한 빵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12월 발간될 예정.》
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카페 ‘살롱 드 테 김영모’에서 그를 만났다. 과로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지난달 31일 퇴원한 그는 파티시에(p^atissier) 가운을 입자 금세 기운을 되찾은 듯했다.
빵의 종주국이 아닌 동양인의 베이킹북이 미국 대형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일은 드문 사례다. 책을 기획했을 때 미국인들은 “동양인이 얼마나 빵을 알겠느냐”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책이 발간되자 “따라 하기 쉽고 흥미로운 레시피(recipe·조리법)로 가득하다”며 주문을 해 왔다.
미국 3대 요리전문지 ‘본 아페티’의 칼럼니스트 제니퍼 윅스 씨는 “녹차와 생강 같은 동양 재료를 섬세한 유러피안 터치로 풀어냈다”며 “특히 단호박 케이크는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라고 평가했다. 김 사장의 책은 10월 미국 출판사들이 경연을 벌인 ‘2005 골드리본 인터내셔널 요리책 경연대회’에서 특별 우수상을 받았다.
김 사장은 “참살이(웰빙)와 건강이 글로벌 화두가 되면서 자연 식재료를 많이 쓰는 한국식 기법에 현지인들이 매료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녹차 고구마 단호박 검정콩 검정깨 인삼 오가피 등 건강 식재료를 이용한 기능성 제품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진출할 계획이다.
김 사장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17세 때 제과점 보조로 빵을 만들기 시작한 뒤 ‘동네 빵집’을 제과업계 정상의 브랜드로 키웠다. 부의 상징으로 통하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사는 주민들이 그의 빵만 찾는다고 해서 ‘김영모과자점’은 ‘타워팰리스 빵집’으로도 불린다.
김 사장의 빵 사랑은 불우한 어린 시절에서 비롯됐다. 부모의 이혼으로 젖먹이 시절부터 친척 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더부살이 신세라 늘 배가 고팠고, 학교 앞 빵집에 앉아 유리 진열장을 구경하면서 눈으로 배를 채웠다. 그는 “빵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된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결국 친척 집을 나와 무작정 빵집 보조로 취직했다. 빵을 원 없이 먹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몰래 찹쌀떡을 급하게 먹다 질식사할 뻔한 적도 있다. 그는 지금도 찹쌀떡을 먹지 않는다.
그는 “어렸을 때는 빵으로 배를 채웠지만 지금은 빵으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채운다”며 “마지막 한 조각까지 감동을 주기 위해 독하게 빵을 만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모든 빵과 과자를 호주산 유기농 밀과 제주산 친환경 우리밀로 만든다. 발효 과정도 이스트를 쓰지 않고 천연 유산균을 이용한다. 이 덕분에 그의 빵은 위에 부담이 적고 풍미가 좋다는 평을 받는다. 만든 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지금까지 버린 빵이 몇 트럭은 넘을 겁니다.”
그는 제빵 철학을 기술과 지식, 인격으로 정의한다. 정상의 기술을 연마하고 끊임없이 공부해 변화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원들의 해외 연수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후진 양성을 위해 베이킹 스쿨도 만들 계획.
김영모과자점은 최근 로고를 바꿨다. ‘김영모&피스(fils).’ ‘김영모와 아들’이란 뜻이다. 둘째 아들 영훈(25) 씨가 가업을 이었다. 프랑스 리옹제과전문기술학교에서 공부한 아들은 프랑스 제과월드컵 개인전에서 우승했으며 스위스 국제기능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땄다. 영훈 씨는 그의 아들에게도 이 일을 대물림할 생각이다.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김 사장의 말이 유달리 길어졌다.
“언젠가 제 아들과 손자가 빵을 굽고 있는 가게에 제 빵을 먹었던 손님들이 찾아와 저와 나눴던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감회에 젖겠죠. 그렇게 특별한 빵집으로 남고 싶습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김영모 회장은
△1953년생
△17세 때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서 보조로 제과일 시작
△1982년 김영모과자점 서초본점 설립
△일본 도쿄제과학교, 프랑스 르노트르제과학교, 독일 하노버대 제과제빵과 연수
△1998년 대한민국 제과기능장
△2004∼2005년 월드페이스트리컵 세계대회 심사위원
△대한제과협회 회장(2003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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